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오만하거나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 정도면 충분히 착하고, 예의 바르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이 내게 “착하다”, “예의 바르다”고 해주는 말, 그 말이 좋아서 더 듣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나의 실제 모습이라고 착각했다. 한두 번의 립서비스를 마치 나의 본질처럼 받아들였다.
"착하고 예의 바른 사람." 그게 나라고 나 자신조차 속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모든 게 다 오만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내 안에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구분 짓고, 내 존재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눈웃음, 사근사근한 말투, 예의 바른 태도로 감췄다. 나는 잘 숨기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뻔히 보였을 것이다.
사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당신은 연기하고 있고, 오만한 태도가 느껴집니다”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고, 얻는 이득은 없으니까. 부모님이나 상사 정도가 그런 말을 해줬을지 모르지만, 나는 흘려들었을 것이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사진 속 나의 위치, 식사를 할 때의 매너, 대화 속 말투, 표정 등 그 모든 순간에 나의 오만함이 묻어있는 포인트가 있었다. 누군가 그 포인트를 정확하기 짚어주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혼자서는 알아차리는 게 너무 힘든 영역이다. 자기 자신에게 과몰입되어 있으면 스스로를 메타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려우니까.
그래서 나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오만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마주했다. 어두운 방에 불이 밝게 켜지듯, 지금까지 내가 무심히 흘려보낸 내 모습이 다 보였다.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냥 얼른 오만함을 털어버리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살면서 가장 심한 목감기에 걸렸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매일 오만을 실어 날랐던 입과 목이, 갑자기 잠겨버린 것이다. 말 한마디 내뱉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이주일 동안은 사실상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가래를 뱉어냈다. 검은 가래가 나왔다. 아마 약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 내 눈으로 검은 가래를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에 가득 쌓여 있던 오만 덩어리들이 빠져나오는구나."
밤이 되면 증상이 심해졌다. 목이 아프고, 열이 오르고, 가래가 계속 나왔다. 그 순간마다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오만하게 굴었던 순간들. 쓸데없이 고고한 척, 내 의도를 숨기고 상대에게 거짓말했던 기억들.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선명하게 장면들이 스쳐갔다.
프로그램에서 나는 그 순간들의 맥락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때 내가 어떤 상태였고, 어떤 신념과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그러자 눈가가 떨리더니, 얼굴이 비대칭으로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마치 전기 자극이 오는 것처럼, 지잉 울렸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몰아넣으려는 신호가 보이자 코치 선생님이 빠르게 잡아주셨다.
“나는 나빴다, 벌 받아야 한다”가 아니라,
“그때 나는 이런 생각과 신념 속에 있었고, 그래서 이런 행동을 했다. 그것이 오만이었다.”
이렇게 명확하게 있는 그대로를 마주했다.
물론 그 과정 중에는 가슴을 퍽퍽 치며 울기도 했고 스스로를 못 봐주겠다는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폭풍이 다 지나가고 난 후 용기를 내고 나를 다시 마주했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 알았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야. 달라질 거야."
다짐하고 앞으로 한 발 내딛기로 했을 때, 그 순간 마음이 아주 고요해졌다.
말로만 “나는 오만하지 않겠다” 다짐하는 건 쉽다. 정말로 내가 오만함을 뒤로하고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그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할 것이고 현실에서 그 결과가 직접 나타난다. 정직성은 결국 그 사람의 현실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나의 현실에 책임을 지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정성을 들이기로 했다. 막상 그렇게 하려니까 지금까지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긴 하다.
말하거나 메시지를 쓸 때 자체 필터링을 거치면서 딜레이가 생기는데, 웃긴 건, 그렇게 걸러낸 말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말이 오히려 더 힘이 있고 정직성의 순도가 높은 것 같다. 필터링한 결과는 막 썩 대단히 정직하거나 그러진 않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오만은 지금도 숨 쉬듯이 올라온다. 대화 속에서, 사소한 행동 속에서, 여전히 내 안의 오만이 고개를 든다. 그럴 때 "어? 뭔가 이상한데?" 하며 마음속에서 신호가 올라온다.
요즘은 그 신호를 더 잘 감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내가 언제든 오만함으로 타인을 부정직하게 대할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멈추고, 돌아보고, 다시 회복한다. 정직하게 삶과 현실을 마주하려 한다.
나는 내가 머리로 생각하고 조작한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정직성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그리고 어느 날엔가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도 정직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