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롯된 경험과 기억들이 있다.
덕분에 배웠고 성장했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힘을 얻었다.
나를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이제 부모님이 나를 낳으셨을 때의 나이가 되어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지 아주 조금은 알겠다. 분명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에도, 부모님께선 날 사랑했고 그 일은 나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수많은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나의 부모님은 신념과 생각을 다루는 법을 몰랐고, 부모님 역시 당신들의 부모님으로 받은 불필요한 경험들이 있었으며,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패턴을 가지고 계셨다. 그랬기에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를 키우셨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서 때로는 미숙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겪지 않아도 될, 혹은 겪지 않아야 할 경험을 나는 겪었고, 그때 불필요한 신념과 생각들이 내게 심어졌다.
나는 어린 시절 겪은 기억들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갑자기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들을 자주 겪었다.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회피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했고, 때로는 깊은 우울과 불안에 빠졌다.
내 안에는 늘 날카로운 돌덩이 같은 것이 굴러다니며 마음을 긁곤 했다.
조금이라도 갈등 상황이 올 것 같으면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피했고,
모든 일에 과하게 책임을 지려 했으며,
한 번 실패나 갈등이 생기면 “앞으로도 똑같을 거야”라고 단정 짓고 미래 전체를 부정적으로 덮어버렸다.
안 좋은 결과가 생기면 전부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벌을 주며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날을 보냈다.
그래서 조별과제는 자료조사, 발표준비, 발표까지 도맡으려 했다. 그럼 갈등도 없고 결과는 모두 내가 책임질 수 있으니까. 일 년간 준비한 영화 제작 공모전에 모두 떨어졌을 때는 함께 한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 그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져서 사람들이 어떻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지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원했다.
이 패턴을 제발 그만하고 싶었다.
내게 상처라고 굳게 믿고 있던 기억을 마주하는 날이었다. 그날은 내 안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갔다.
이전 수업에서 배운 테크닉을 일상에 한두 번 적용하면서, ‘생각을 관리한다’는 개념이 점점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한 때였다.
그래서 이후 수업에서는 내가 외면하고 애써 덮어두었던 기억, 꺼내기를 주저했던 감정까지 직면할 수 있는 단계까지 깊어졌다. 마치 시스템이 백업 파일까지 탐색해 내듯, 내 깊숙한 곳까지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뇌를 말랑말랑하게 생각이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일종의 스트레칭 과정을 하고 바로 들어갔다.
'오우 뭐야 이렇게 쉽게 들어간다고' 하는 느낌과 함께 단번에.
익숙한 느낌의 마음속 돌덩어리를 지나 더 깊이 더 깊이 뿌리를 찾아 내려갔다. 전자제품의 세부 생산 공정을 들여다보듯 하나하나 내 마음과 기억을 거슬러 가자, 내 안에 숨어있던 신념 한 줄이 정체를 드러냈다.
“아, 이게 이거였구나.”
그 깨달음이 올라오자,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더니 눈물이 터졌다. 몸이 다 무너지고 말 그대로 구르면서 방 안에서 혼자 엉엉 울었다. 시원하게 울어제꼈다. 개운하게 샤워하는 것 같았다.
울음이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 마음속에서 날카롭게 돌아가던 돌덩이들이 사라져 있었다.
“뭐야, 이거?”
멋쩍게 웃으며 혼잣말했다.
몸도 느꼈는지 가볍고 산뜻했다.
내가 상처라고 믿어왔던 기억은 사실 내 해석이 덧씌운 왜곡된 기억이었고,
그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자, 나는 희생자도, 피해자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밧줄은 한 번 끊어지면 매듭이 남는다고들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상처도 평생 흔적으로 남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으며 끊어질 수도 없는 존재였다.
과거의 기억과 그로 인한 의미, 감상, 잔상들은 더 이상 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실이 이전보다 더 깊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제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