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후드티

그리고 비둘기들

by 그 오브제

나는 회색 후드티가 좋다. 자다 눌린 머리카락과 초췌한 몰골을 언제든 가릴 수 모자가 있기도 하지만 회색이라서 좋은 게 더 크다. 회색빛 도시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색을 가진 것 같아서, 마치 비둘기들처럼. 때가 탄 듯, 타지 않은 듯, 똑같은 듯, 똑같지 않은 듯.


깔끔한 하얀 옷을 입고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보다, 시크한 까만 옷을 입고 먼지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회색은 오염과 순결로부터 자유로움을 주기에 삶에서 어떠한 편안함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회색을 좋아하면서도 언제부턴가는 사람들이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파란색’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 색을 왜 좋아하냐 되묻는 회색보다는 평범해 보이는 ‘파란색’을 말하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는 막상 파란 옷을 입거나 파란 물건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는데, 신기하고도 모순적인 부분이다.


출근길 아침, 지하철 계단의 인파 속에서 떠밀려 움직이며 생각했다. 저 앞에 서있는 역무원에게 나는 수많은 회색들 중 한 가지로 보이겠지, 어쩌면 한 가지가 아니라 옆에 바짝 붙어있는 사람들과 뭉뚱그려져 회색 덩어리로 보일지도 모르지. 울퉁불퉁 덩어리의 볼록 튀어나온 굴곡 하나쯤 정도. 내가 왕십리역 광장에 있는 회색빛깔 비둘기 떼 중 하나하나를 구분할 수 없듯이. 얘도 회색, 쟤도 회색, 모두모두 회색이니까.



‘회색 너의 정체는 뭐니?’



회색이 궁금해져 뜬금없이 인터넷 사전을 뒤적거렸다. 회색의 ‘灰(회)’자 옆에는 재, 재 빛, 먼지, 재로 만들다, 실망하다, 낙심하다, 의기소침하다, 맥이 탁 풀리다... 같은 기분 좋을 것 없는 의미들이 줄지어있었다. ‘회색’의 사전적 의미도 다를 바는 없었다. 정치적, 사상적 경향이 뚜렷하지 아니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회사를 다니다 보면 뚜렷하지 아니한 중립상태가 좋은 선택지이기는 하다. 그리고 실망, 낙심, 의기소침 같은 이 단어들은 회사 생활과 매우 잘 어울리기까지 하다. 그 순간 회사의 ‘회’ 자도 혹시 같은 ‘회’ 자인가 하여 사전을 찾아보았다. 물론 아니긴 했지만, 나는 이제부터 그렇게 믿기로 했다.





일요일 늦은 아침, 빵을 사러 가는 길에 광장을 지나갔다. 비둘기 떼도 누군가 준 빵을 뜯고 있었다. ‘니들도 빵 좋아하는군 흠.’ 애매모호한 동질감이 형성된 후 회색 후드티를 입은 나는 그 무리에 조심스레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전부 다르게 생겼다. 쟤는 약간 보랏빛이 도는 회색, 쟤는 푸른빛 도는 회색, 쟤는 다크그레이... 5분여의 관찰을 통해 비둘기 이십여 마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한 덩어리의 똑같이 생긴 비둘기 떼, 닭둘기떼들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쯤 증명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불현듯 잊고 살았던 대학시절에 들은 교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진짜 하얀색, 검은색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저기 어떤 여자가 들고 가는 ‘나 고급스러워요.’라고 말하는 럭셔리 블랙 명품백도 사실 비둘기와 같은 계열의 회색이라는 진실. 빛을 99.9% 흡수한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검은 반타블랙은 존재하지만, 100% 순순한 블랙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어두운 그레이를 대충 블랙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화이트라고 칭하는 순수한 백색도 아주 아주 연한 회색일 뿐이다. 결국 알고 보면 회색은 어떠한 색도 담아내는 포용력 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변하는 신비로운 색이었다.


회색은 회색이라는 단조로우면서도 무조건적인 편견, 언어적 정의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 안일함,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무관심과 귀찮음까지. 그래서 나는 회색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하나하나 다른 비둘기와 작별을 하고, 주변에 사람이 없을 확인한 후 비둘기색 후드티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조심스레 부끄럽지만 첫 날개 짓을 한 번 해본다.


푸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