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여자 사장님이 홀로 가게를 운영하며 겪은 일
가게를 오픈한 지 어느덧 10개월이 되어간다. 아빠와 함께 으쌰으쌰 차린 가게지만 오랜 기간 안정적인 공직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아빠는 육체적 노동과 온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자영업에는 전혀 적성이 맞지 않아서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아빠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오로지 홀로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다. 영업 시작부터 마감까지 가게에 상주하며 식자재 발주, 재료 준비, 조리, 매장 청소, 주문받기, SNS 마케팅, 배달 플랫폼 관리까지 한 명 이상의 몫을 맡고 있다.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체구에 2명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지만 주변 사람들 눈에는 안쓰러운지 가게 맞은편 편의점 이모는 나를 볼 때마다 여린 애가 고생한다며 혀를 끌끌 차신다. 장사라는 게 미친 듯이 잘되다가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날도 있다. 지난주에는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오는 주문을 감당하기 벅차서 엉엉 울면서 일했는데 이번주는 영 주문이 시원치 않은 게 지난주에 흘렸던 눈물이 민망할 정도다. 나는 주문 알림이 잠잠해지면 얼씨구나 하고 책을 잡고 늘어진다. 사장 마인드가 이렇게 게을러서는 갑부 되기는 글렀다(?)
맑.눈.광은 처음 보는데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여러 유형의 진상 고객 썰들을 많이 읽었다. 손님들의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인해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장님들의 고충을 보며 오픈 초반에는 내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나는 과연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까 생각했지만 운 좋게도 우리 가게에 방문하시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매너가 좋아서 큰 탈 없이 운영을 잘해왔다. 이것도 크다면 아주 큰 복이다! 아무래도 젊은 아가씨 혼자 19평짜리 음식점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를 기특하게 보시는 듯했다. "예쁜 아가씨가 만들어주는 게 맛있어!"라고 눈웃음을 보내는 아주머니 손님들 덕분에 비록 버거운 날이 있어도 잘 버텨냈다.
하지만, 대다수의 매너 좋은 손님들 속에서 몇 번의 불편한 손님들을 마주했다.
사건 #1
오후 4시, 홀로 의자에 앉아 텅 빈 매장의 고요를 만끽하던 중 40대의 두 남자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샐러드는 처음 먹어본다며 국밥을 먹고 싶은데 지나가다 그냥 들어온 것이니 밥을 가득 달라고 요청했다. 듬뿍 담은 샐러드와 토핑, 한 스쿱 가득 뜬 귀리현미밥을 얹어 메뉴를 손님께 내드리니 검은색 올리브가 싫다고 하신다. 밥은 싱겁다고 하신다. 야채는 너무 많다고 하신다. 사람들이 이곳에 뭘 보고 오냐고 하신다. 샐러드를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하신다. 국밥이 계속 먹고 싶다고 하신다. 그리고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이 느닷없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설교를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눈빛. 소위말하는 맑눈광을 실제로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나는 눈싸움에서 단숨에 지고 말았다.
"나는 천사를 봤어요. 처음에는 귀신인지 알았는데 하얀 옷을 입은 천사였어.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니까."
"하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 구원받아야 돼. "
"나중에 아저씨 말 안 듣고 지옥 가서 후회하지 말고..~"
나는 설교를 들으며 테이블에서 세발자국 정도 떨어져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동행하신 남자분이 "너 그러다 블랙리스트 오른다~"라며 말리는 시늉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흘러 저녁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샐러드가 영 입맛에 맞지 않은지 국밥이 먹고 싶다며 이런저런 소리를 남기고 나가셨다.
나는 무교일 뿐 무신론자는 아니다. 그렇기에 신앙을 하는 이들을 존중한다. 그러나 구원을 받으라는 것,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은 발언들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무교인으로써 불편한 부분은 늘 이런 부분이다. 나의 삶은 간절하게 구원을 받아야 할 만큼 엉망이지 않다. 타인에게 연민의 시선을 받는 것은 불쾌하다. 기도를 할 때 자신의 두 손을 꽉 지고 빌듯이 결국 내 손을 잡아주는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기에 지금의 역경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또한 나는 사후 세계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대를 모르고 그대도 나를 모른다.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개개인의 삶이 단순히 지옥행, 천국행 열차를 타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는 안된다. (ISTP 무먼트 : 그건 그렇고 현실도 벅찬데 왜 피곤하게 사후세계까지 생각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함) 어쨌거나 서비스직에서 손님은 갑, 주인은 을이기에 더군다나 덩치 큰 남자 두 명에게 대항할 수 없는 나약한 여자 사장님이라 멀뚱히 서서 그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개탄스러웠다.
사건 #2
사건 #2는 #1에 나온 기독교 손님이 아닌 그 옆의 동행인이 주인공이다. 이 날도 오후 4시였다. 한창 책에 몰입한 순간 낯익은 얼굴의 손님이 매장에 들어온다.
"약 먹으려는데 물이 없어서 물 마시러 왔어요~"
놀란 나는 그러시라고 셀프바에 비치된 보리차를 가리키고서는 우리 가게 앞에 있는 편의점을 응시했다.
손님은 보리차와 함께 약을 복용하고 바로 내가 앉은자리 뒤 의자에 앉아 대화를 시도했다. 그 기독교 친구는 부모님이 땅이 있다는 이야기, 자신은 소싯적 서울에서 헬스트레이너였다는 이야기, 몸이 좋았다는 이야기, 지금은 작은 사업 여러 개를 한다는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잇달아 부산 해운대 출신이라고 하시더니 대뜸 물으셨다.
"부산 해운대 모텔촌 아시죠?"
"아니요.. 부산 많이 안 가봐서 잘 몰라요."
"에이 그 모텔 많은데 있잖아요~ 좀 가보셔야겠네."
하며 해운대 도시 전경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고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여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이 올라 엄마에게 빨리 와달라고 요청을 했고 한참 동안 나를 기다리던 남자 손님은 결국 다음에 기독교 친구와 오겠다며 인사를 하고 나가셨다. 대뜸 들어와 물을 마시고 메뉴 주문은 하지 않고 옆에서 모텔을 언급하며 말을 거는 40대의 남자 손님이라니. 내가 남자였다면? 물 마시러 들어오지도 않았겠지.
사건 #3
단골이라고 하시는 한 손님께 인스타그램으로 항상 잘 먹고 있다는 DM을 받아 감사 인사 답장을 보냈다. 매일 점심에 들르는데 다리 절고 들어가는 남자 기억하시냐는 말에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은 유독 다리를 심하게 절며 들어오셨다. 4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대면으로는 대화가 없었다. 다시 DM이 왔다. "사장님이 젊으시네요~"를 시작으로 사적인 대화를 시도하기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 뒤, A회사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이 우리 가게 계정을 팔로우하더니 바로 DM이 왔다. 출장 가느라 그동안 주문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남자친구가 있는지 묻는다. 있다고 대답하였더니 아쉽다며 알겠다고 하신다. 여러 정황상 유추해 보니 다리를 저는 단골손님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곧장 또 다른 신규 계정이 팔로우하더니 내 모든 게시물에 좋아요 를 눌렀다. 분명 그 사람인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신규 계정의 팔로잉 목록에는 나와 A회사 인스타그램만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나는 스토킹을 당하는 것 같은 위험을 느끼고 계정 차단에 비공개로 돌리고 팔다리를 후들거리며 카운터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온갖 망상을 떠올렸다. ‘기술 전문직이던데 장비 들고 때리러 오면 어떡하지.......’ 험한 뉴스 기사들을 너무 접한 탓이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이기에 나는 벌벌 떨며 부모님께 SOS를 보냈고 한 주 내내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방문하여 가게를 봐주셨다.
몇 차례의 불청객에 극대노한 아빠는 가게를 들어오며 외쳤다.
"어느 O만 한 OO들이 내 딸 건드리노!!!!!!!!!!!!!!"
여자 사장님 혼자 매장을 운영하는데 이런 일들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종종 가는 카페도 젊은 여자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데 하루는 빵과 커피를 주문하여 먹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대낮부터 진탕 취한 아저씨 한 분이 자리를 뜨지 않고 사장님에게 주정을 부리며 늘어졌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카페 사장님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며 서로를 달래며 우리 힘내보아요 -라고 나지막이 외쳤다. 그럼에도 이럴 때마다 무력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참, 어렵다.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