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갔다. 얏호! 오늘은 하루 종일 엄마가 집에 안 계신다.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해방이라는 소리다.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 눈 나빠진다고 엄마가 못하게 했던 게임을 신나게 해야겠다. 학교 가기 전부터 컴퓨터도 핸드폰도 미리 충전해 놓았다. 오늘따라 학교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엄마
집을 나왔다. 야호! 오늘은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친구와 만날 계획이다. 집안일로부터 해방이라는 소리다. 오늘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들과 함께 갈 수 없었던 미술관 나들이를 할 예정이다. 서울 가기 한참 전부터 전시회 예매하고 가방도 미리 싸놓았다. 오늘따라 기차타러 가는 길이 즐겁다.
오후
아들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 눈치 안 보고 게임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쿠키런 킹덤’이라는 이 게임에는 귀여운 모양에 화려한 의상을 입은 캐릭터(쿠키)와 보물들이 수십 개씩 있다. 여러 쿠키들과 보물들 중 정해진 수를 선택하여 나만의 팀을 짜서 다른 팀과 배틀(battle)을 하는 게임이다. 각 쿠키와 보물 고유의 강점, 기술, 확률 등을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팀을 짜서 배틀에서 이겼을 때 나는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스트레스가 얼마나 풀리는지 엄마도 아시면 좋으련만, 게임은 눈만 나빠진다며 잔소리만 하신다. 안타까운 일이다.
엄마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와 만나 미술관으로 향했다. 아들과 게임 시간으로 실랑이할 필요 없이 전시회 보러 향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번 전시는 안드레아 거스키라는 독일 사진작가의 작품전이다. 거스키는 원거리로 촬영한 이미지를 조합하고 편집하여 새로운 하나의 사진으로 구성하는 현대 작가다. 작품의 크기가 일반 가정집 벽면을 가득 채울만한 대형 사진들로서, 앞에 섰을 때 그 웅장함에 압도된다. 이런 예술작품이 얼마나 새로운 영감을 주는지 아들도 알면 좋으련만, 미술관은 너무 지루하다고 짜증만 낸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들
이 게임에서 이번에 새로운 쿠키가 출시되었다. ‘크런치초코칩쿠키’라는 이름의 이 캐릭터는 반백의 머리카락에 흰 망토를 휘날리며, 크림 색깔의 늑대를 타고 상대를 공격한다. 힘 세고 강인해 보이는 이 쿠키는 자신이 타고 있는 늑대를 닮아 거칠고 야성적으로 보이는 것이 첫눈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크런치초코칩쿠키 출시 이벤트로 나온 패키지를 사고 싶어 가격을 알아보니 무려 만 이천 원이나 한다. 용돈으로 사기는 아깝고 엄마가 사줄리는 절대 없다. 정말 아쉽다.
엄마
이번 전시회에서 유명한 작품은 ‘라인강III(2018)’이었다. 독일의 라인강을 찍은 이 작품은 은빛으로 영롱이는 강이 작품을 가로지르며, 노르스름한 잔디가 강을 둘러싸고 있다. 오롯이 강의 원초적인 모습만을 담아놓은 이 사진은 평화로우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것이 첫눈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작품을 하나 집에 걸어두고 싶어 가격을 검색해보니 최근에 48억에 팔렸다고 한다. 내 돈 주고 살 수도 없고 남편한테도 그런 돈은 절대 없다. 아쉽지도 않다.
저녁/밤
엄마
관람 마치고 친구네로 와서 내가 좋아하는 이태리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그리고는 친구와 밀린 수다를 떨었다. 피곤이 몰려와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2시다. 다음날 일찍 기차타고 집에 가야해서 자려고 누웠다. 누워있으려니 희한하게도 아들 생각이 계속 난다. 아들은 저녁을 잘 먹었을까, 게임은 쉬엄쉬엄 하고 있을까. 그래도 오랜만에 미술관 나들이도 하고 친구와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어서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늘은 나에게 완벽한 하루다.
아들
저녁밥 차려주실 엄마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배달시켜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게임에 열중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4시다. 그래도 이 황금 같은 시간이 아까워서 잠 안 자고 게임을 더 했다. 게임을 하니 신기하게도 엄마 생각은 하나도 안 난다. 엄마가 오늘 어디 간다고 했었는지 들은 것 같은데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래도 피자도 먹고 방해없이 게임도 마음껏 해서 완전 신나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나에게 완벽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