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앤온리 May 16. 2023

직장생활에 측은지심 한 스푼 얹기

 - 직장에서 타인때문에 내 마음이 힘들 때



회사에서는 팀장이 팀원들을 평가할 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팀장을 평가하기도 한다. 이름하야 ‘리더십 평가’. 어느 해 우리 팀에 새로 부임한 팀장님은 이전의 팀장님과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팀원들이 팀장님의 스타일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해 팀장님에 대한 첫 리더십 평가가 이루어졌다.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팀원들의 리더십 평가는 익명으로 이루어지며 평가한 내용은 서로에게 비밀이었다. 그런데 평가가 끝나고 얼마 뒤 팀장님이 팀원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번 리더십 평가 결과, 저의 평가 점수가 굉장히 낮게 나왔습니다. 이에, 평가 점수가 낮게 나온 원인을 파악해 보라는 상사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평가를 왜 그렇게 주었는지 오늘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주기 바랍니다.”


오 마이 갓! 익명으로 평가할 때야 솔직하게 할 수 있었지만, 팀장님 면전에 대고 평가를 그렇게 준 이유를 말하라고?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지?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알고보니, 팀원들 대부분이 팀장님의 리더십에 대해 낮은 점수를 주었다. 팀장님의 평가 점수는 예전 팀장님보다 낮았고, 조직 내 전체 팀장들의 평균 점수보다도 낮았다. 팀장님의 리더십 평가 결과를 받아본 그의 상사는 낮은 점수의 원인을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본인이 왜 점수를 낮게 받았는지 직접 들어보려고 팀장님이 팀원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그러나 팀장님과 얼굴을 마주한 채로 어떻게 솔직히 말할 수가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이러하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익명으로 담임선생님 평가를 했는데 점수가 낮게 나왔다. 교장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을 불러 왜 평가 점수가 낮은지 파악하라고 한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왜 점수를 낮게 주었는지 내 얼굴 보고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 이런 상황과 유사한 것이다. 정말 ‘허걱’할만한 당황스러운 상황이지 않은가.


회의실에는 그저 어색한 적막만 흘렀다. 팀장님과 팀원들은 마치 치열한 전쟁 중 평화협상을 위해 만난 사람들처럼 경직된 얼굴로 앉아있었다. 팀원들이 말을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팀장님과,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절부절 하고있는 팀원들의 침묵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고문과 같던 그 어색함을 못 참은 내가 결국 나섰다. (나는 그전에도 팀원을 대표해서 총대 멜 일이 생기면 앞장서곤 했었다.)


“팀장님, 이렇게 팀장님 얼굴을 보고 직접 말씀드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팀장님 대신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의견을 모아서 정리한 뒤 대표로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제서야 팀장님은 그럼 그렇게 하자며 우리를 풀어(?) 주었다. 


이후로 며칠 동안 팀장님 없이 팀원들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리더십 평가를 낮게 준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더니 다들 나에게는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팀장님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점들은 서로 비슷했다. 왜 평가를 낮게 주었는지 이곳에 시시콜콜히 적기는 어렵지만 그 내용들이 비슷했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팀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모아서 정리했다. 


사실 팀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팀장님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터라 처음에는 이것이 좋은 기회구나 싶었다. 이번참에 팀장님이 모르는 본인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날 것 그대로의 팀원들 의견이 정리된 종이를 보고 있자니 착잡했다. 팀장님께 그대로 전달하기에는 내용들이 너무나 적나라했다. 


당시 정리했던 팀원들의 의견들을 다시 비유하자면 이러하다. 담임선생님이 수업 시 뭐가 중요한 내용인지도 모른다거나, 그래서 중요한 건 설명않고 쓸데없는 설명에 시간만 낭비한다던가, 설명을 하면서도 본인도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던가, 교장선생님의 학교운영방침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식의 내용들이었다. 


이것을 그대로 팀장님에게 전달하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내용 그대로 전달받는 팀장님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팀장님을 안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상처를 주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팀장님이 마음의 상처만 받고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 이후 팀장님과 팀원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겠는가. 담임선생님의 단점을 줄줄이 목록으로 정리해서 선생님께 전달하면 그것을 읽고 난 뒤 선생님이 학급 아이들과 마주할 때 어떠한 감정이 들겠는가. 또한 아이들이라고 해서 속 편히 선생님을 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실 팀장님은 이미 평가결과만으로도 상처를 받았는데 겉으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있는 그대로 내용을 전달하면 그 이후로 무언가 개선되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적나라한 의견들을 그대로 전달하면 팀장님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자신에 대한 비난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지 않은가. 때문에 그런 내용을 듣자마자 오히려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비난에 대한 부정이나 해명을 앞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즉 비난의 내용을 듣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바로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결과만 얻게 된다면 리더십 평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고민할수록 팀장님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살짝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직접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을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뉘앙스로 바꾸어서 전달하기로.  


정리된 팀원들의 의견을 부드러운 방식으로 재정리했다. 비유하자면 “수업 내용의 중요도를 파악 좀 하셔라.”는 의견은 “수업 시작시 어느 내용이 중요한지 먼저 콕 집어주면 좋겠다.”로 바꾸었다. “교장선생님의 운영방침과 다른 내용으로 지도한다.”는 의견은 “학생 지도방향에 대해 교장선생님과 사전에 좀 더 논의하셨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바꾸었다. 


이렇게 내용을 재정리해서 팀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내용을 하나씩 전달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종이에 글씨로 쓰여있는 내용들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내 마음가짐과 태도도 바뀐 것이다. 팀장님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대고 불평하던 것이 평소의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막상 팀장님과 대면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어느새 팀장님 반대편이 아니라 팀장님과 같은 편에 서서 팀장님을 도우려는 입장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물론 일개 팀원이 팀장님에게 “팀장님은 이런 이런 점이 잘못되었어요!”라고 대놓고 건방지게 말하는 것이 어렵긴 하다. 하지만 겉으로는 공손히 말하더라도 속마음으로는 여전히 불평불만을 삭히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날은 불평불만보다는 진심으로 팀장님이 크게 상처받지 않고 내용을 잘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어떻게 말씀드릴지 고민하고, 팀장님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해 보며, 긍정적 언어로 전환하려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에서 편의점 사장 염여사는 노숙자 독고에게 측은지심을 가져 그를 직원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독고는 삶을 내려놓았던 연약한 모습에서 삶에 책임감을 갖는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한다. 또한 독고는 편의점과 얽힌 여러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보이며 그들까지 변화하게 만든다. 


그 당시 팀장님에게 측은지심으로 그런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팀장님이 실제로 변화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 자신의 마음은 분명 변하였다. 그 전에는 팀장님에 대한 불만으로 내 마음이 항상 힘들었었다. 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팀장님에 대한 부정적 마음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내 마음이 덜 힘들어진 것이다. (안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바꿀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라해도 나 자신이다. 직장에서 누군가 이유 없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행동 때문에 당신의 마음에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가? 그럼 억지로라도 그에게 측은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 사람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그만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 그런 이유가 없다면 그 사람은 무엇엔가 결핍이 있는 불쌍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힘든 부분 때문에 당신에게 그런 모습과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측은지심을 가져보자. 상대가 결핍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런다고 해서 상대방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당신의 마음은 덜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우린 결국 행복해지려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므로 행복해지는 방법에 측은지심 한 스푼을 살포시 얹어보길 권한다. 힘든 직장생활을 하는 이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측은지심 가지며 제안하는 바이다. 




사진출처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One Size Bigger Hat 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