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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Apr 16. 2023

One Size Bigger Hat 쓰기

 - 나와 다른 스타일의 리더 밑에서 일해야 할 때

 

“어머나 뒤통수에 흰머리가 확 늘었네요!”


회사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는데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시는 여사님께서 놀라면서 말씀하셨다.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던 나였다. 그런데 어느 해 갑자기 한 뭉터기의 흰머리가 솟아난 것이다. 그 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흰머리가 나기 바야흐로 몇 년 전 팀장으로 모셨던 A팀장님은 깐깐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업무도 완벽하고 인품도 성인군자 같은 리더였다. 그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잘 알았고 팀원들의 업무분장을 언제나 분명하게 정해주었다. 의사결정에 망설임이 없었고 업무 지시는 늘 명확했다. 팀원들에게 챌린지는 하되, 질책이나 비난은 하지 않았다. 항상 똑똑하고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해서 우리 같은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직장의 신 같아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몇 년간을 모셨던 A팀장님이 타지로 발령이 났다. 팀원들도 그를 따라 타지로 가서 그와  계속 함께 일할 수 있는 옵션이 주어졌다. 대부분의 팀원들은 이사하면서까지 그를  따라갔다. 그러나 가족들이나 개인사정 때문에 타지로 이사 갈 수 없는 소수의 팀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팀장님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슬퍼할 새도 없이 바로 새 팀장님을 모시게 되었다.


새 팀장으로 온 B팀장님은 이전 팀장님과는 너무나 달랐다. 우선 팀의 업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예전 A팀장님은 이 팀의 팀원으로 일하다가 팀장이 된 경우였다. 그래서 팀의  실무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새 팀장님은 이 팀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업무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발생했다. 당장 처리할 급한 사안이 있어서 정신없이 바삐 일하고 있는데,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업무를 먼저 하라고 채근했다. 기존에 오랫동안 진행해오던 업무 방식이 있는데 자꾸 기존 방식을 무시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시켰다. 팀원들 간 정해진 업무 분장이 엄연히 있는데도 다른 팀원들이 담당하는 일들을 자꾸 나에게 던졌다.


새 팀장님이 잘 모르셔서 그런가 싶어서, 그 일보다는 이 일이 더 중요하고 저 일은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매번 설명드렸다. 그러나 나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니 스트레스가 너무 쌓였다. 예전 팀장님과 달리 이 분은 도대체 왜 그러실까 하고 투덜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내 뒤통수를 뚫고 흰머리로 폭발해버렸다.


그렇게 몇 년간 고생하다가 개인사정으로 퇴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이 본인의 조직에서 리더로 승진했다. 이후 남편이 종종 해주는 회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접적으로 리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과거 일개 팀원일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리더의 깊은 생각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예전에 B팀장님의 깊은 생각을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왔다.


당시 B팀장님이 일의 우선순위를 모르고 아무거나 시킨다고 투덜댔었는데, 어쩌면 내가 모르던 회사의 큰 그림에 맞게 우선순위를 재정렬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존에 해오던 업무 방식을 무시한다고 여겼었는데, 고착되어 있던 업무방식에 변화를 주려고 그랬던가 싶다. 다른 팀원의 일을 나에게 던질 때 나를 미워하나보다 하며 한탄했는데, 오히려 업무의 확장을 통해 나를 육성하려 했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그때 몰랐던  팀장님의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것이.


한 회사에 천 명의 팀장이 있으면 천 개의 각기 다른 리더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러 리더십은 서로 다를 뿐 어느 것도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와 잘 맞는 스타일의 리더십만 옳은 것이고 다른 리더십은 틀렸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새 팀장님의 리더십을 바로 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전에 모셨던 분과 비교하며 비판만 했다. 당시 새 팀장님을 모시며 나만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사사건건 호락호락하지 않은 나같은 팀원을 거느린 그 팀장님도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미국 NASA의 국장보를 지낸 신재원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One Size Bigger Hat’을 쓰라고. 자신의 직급보다 한 직급 높은 시각으로 바라볼 때 역량이 향상된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그 당시 One Size Bigger Hat을 썼더라면 새 팀장님의 스타일을 좀 더 이해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에 맞춰드리며 팀의 성과를 내는 데에 더 공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 팀장님이 나와 다르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지 않고 그분의 스타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나의 뒤통수의 흰머리도 훨씬 줄었을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그림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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