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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Apr 04. 2023

정말로 둘 중 하나만 이기고 하나는 지는 상황인걸까

 - 직장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대덕연구단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연구단지이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외부 손님들이 자주 견학오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일하던 연구소는 외부 손님들의 방문이 정말 잦았다. 그런 연구소의 전략기획팀에 입사해서 처음 맡았던 업무 중 하나는 방문하는 외부 손님들을 의전하는 일이었다. 즉 프레젠테이션으로  회사에 대해 소개하고, 전시실로 이동해서 전시물들을 보여주며 연구 분야에 대해 설명하는 업무였다.(편의상 이하 ‘소개업무’라고 칭한다.) 회사를 대표해서 소개하는 만큼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소개업무가 주는 보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연구소를 방문하는 수많은 손님 수에 비해(예전 기억으로 일 년에 100건 이상)이 업무를 하는 직원은 나를 포함하여 딱 두 명 뿐이었다. 둘째, 소개업무를 요청/접수하는 시스템이 없어서 그냥 불시에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당장 소개 업무를 해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달려가야 했다. 끝으로, 소개업무를 하러 갔는데 손님들의 앞선 일정이 끝나지 않았거나 연구소 도착이 지연되어 무작정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연구소의 한 임원분이다. 전화를 받으니, 고객이 방문했는데 예상치 않게 앞선 일정이 일찍 끝나서 시간이 붕 뜬다고 한다. 그래서 당장 그쪽으로 와서 소개업무로 시간을 좀 때워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전화를 끊자마자 원래 하고 있던 회의 중간에 빠져나와  바로 달려가야 한다. 내가 참석했던 회의는 갑자기 나 때문에 중단되어 버린다. 혹은 나를 빼고 계속 진행하여 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거나 추후 번거롭게 내용을 따로 전달받아야만 한다. 그렇게 달려가보면, 막상 그사이를 못 참고 고객이 다른 미팅을 시작했으니 잠시 기다리리라고 한다. 그런데 잠시라던 고객의 미팅은 한 시간이 되도록 끝나지 않는다. 그러면 기약없이 대기만 하다가 결국 소개업무가 취소되어 시간만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의 예일 뿐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 일의 중요성과 보람에도 불구하고 이 업무는 그닥 즐거운 업무는 아니었다.


당시 나 말고도 소개업무를 맡은 다른 직원은 총무팀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A대리였다. 그런데 이 업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A대리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이 업무를 내키지 않아하니 서로 눈치보며 상대에게 미루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안 하면 그녀가 더 해야하고 그녀가 안 하면 그만큼 내가 더 해야하는 상황이다보니, 자연스레 그녀와 나 사이에 미묘한 눈치작전과 텐션이 형성되었다.


성격상 누구와든 갈등상황을 길게 가져가지 못한다. 갈등이 생기면 바로 대화해서 풀어버려야 속이 편해서, 부부싸움도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A대리와도 이러한 갈등상황에 놓여있는 게 불편했다. 그래서 A대리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대리님, 저희 전략기획팀은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대외 손님을 상대하는 소개업무는 엄연히 홍보업무이니 홍보를 담당하는 총무팀이 이 업무를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랬더니 A대리는 반론을 펼쳤다.


“홍보업무는 총무팀이 맡고 있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그중에서 소개업무는 원래 옛날부터 전략기획팀이 해오던 것이니 전략기획팀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제야 알고 보니, 오래전 총무팀에서 소개업무 담당하던 직원이 팀장과의 갈등을 못견디고 전략기획팀으로 옮겨오면서 그 일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랬다가 퇴사하는 바람에 전략기획팀에 그 업무가 남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히스토리를 두고도, 나는 그러니까 총무팀이 다시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고, 그녀는 그러니까 전략기획팀이 계속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둘 다 각자의 입장이 완고하여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대화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더욱 그녀가 이 업무를 가져가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 불만이 더 커졌다. 불만이 쌓여갈수록 해당 업무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보람도 사라져갔다. 보람이 사라지니 그 업무를 더욱 하기 싫어지고 A대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상황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이 악순환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기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A대리는 어떤 기분일까  떠올려보았다. 생각해보니, 소개업무를 하기 싫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나의 어려움을 100% 이해하고 공감할 사람도 그녀 뿐이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 이해가 상충된 관계가 아니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속좁게도 이기적으로 나만 편하겠다고 그녀에게 업무를 떠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다시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 업무로 힘든 것은 우리의 잘못도 아니고, 업무를 서로 떠넘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녀와 같은 편이라며 따뜻하게 다가가니 고맙게 그녀도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이 업무의 고충을 해결할 방법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서로 만족할 만한 방법을 찾아냈다. 한국어로 진행하는 소개업무는 모두 그녀가 하고 영어로 진행하는 건은 모두 내가 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부담스러운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다. 나는 한국어보다 영어 소개업무 횟수가 훨씬 적어서 좋았다. 앞으로는 최소 하루 전 이메일로 요청하는 건에 대해서만 해주겠다고 연구소 전체에 공지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그러면 다른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전화받고 불려나가 무작정 대기할 일이 없어져서 좋을 터였다. 서로 다른 편에 서서 폭탄 돌리듯 업무를 떠넘기려 했다면 이런 해결책들을 결코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로는 그녀와 갈등 없이 수월하고 편안하게 소개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데일 카네기는 저서 ‘인간관계론’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공의 유일한 비결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라는 헨리 포드의 말도 공유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고 당연한 말로 여겨왔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이 걸려있고 어려움에 처해있으니 이 클리셰를 바로 적용하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A대리의 입장에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가 원하는 바인 소개업무의 효율화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도 태도를 바꾸어 움직인 것이다. 그 덕분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에서 서로 윈윈(Win-Win)하는 게임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


한 명은 이기고 다른 한 명은 지는 방식만이 아니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경험은 추후 회사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갈등상황이 와도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만족할만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그러자 불필요한 감정싸움도 피할 수 있고, 언성 높이지 않고도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나란 사람은 늘 부족한 인간이라서 이렇게 직접 경험하고 부딪쳐봐야 비로소 깨닫고 배우게 된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이 제자리걸음 하기 보다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라도 성장하고 싶다. 그때 그 일이 나 뿐만 아니라 A대리 그녀에게도 성장하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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