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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May 23. 2023

'상사와 일하기'보다 어려운 '후배와 일하기'

  - 후배가 가진 능력만큼 일해주지 않을 때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어려운 관계를 나에게 꼽으라 묻는다면 윗분들과의 관계보다는 후배사원들과의 관계를 꼽고 싶다. 윗분들이야, 좋든 싫든 그분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하여 만족시켜 드리면 일하는데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후배사원에게는 마냥 그렇게 맞춰주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일을 지시하고 가르쳐야 했다. 그냥 가르친다고 다들 잘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옛날 식으로 무조건 내 말을 들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후배사원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대략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후배를 이끄는 나의 능력이 부족한 경우였다.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았다던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산출물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내가 더 신경 쓰고 챙기고 노력해서 해결해야 했다.


두 번째는 후배사원이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였다. 그것은 괜찮다. 잘 가르치고 반복시켜서 업무 능력을 습득시키면 된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후배라면 실수를 반복해도 밉지 않았다. 능력보다는 잘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제일 어려웠던 경우는, 후배사원이 똑똑하고 능력도 있는데도 일을 열심히 할 의지가 없는 경우였다. 이런 경우 아무리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명해도,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해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격려해도 별 반응이 없었다. 일이 진척이 되질 않았다.  


어느 날 우리 팀으로 새로 발령받아 온 후배사원이 앞서 말한 세 번째 케이스였다. 처음 왔을 때는 기대가 컸다. 학벌도 좋고 밝고 성격 좋고 유머도 있었다. 연구원 생활만 하다가 기획팀으로 처음 온 팀원이어서 가르쳐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일을 하나씩 가르치다 보니 말귀도 잘 알아듣고 엄청 똑똑했다. 좋은 팀원이 들어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그는 일을 할 때 아주 최소한의 일만 했다. 그것도 마감 직전까지 기다리다가 마지막에야 간신히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최소한의 일도 하지 않아서 마감을 넘겨 펑크 내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지시하지 않은 나의 탓인가 싶었다. 그래서 한번 설명하고 다시 설명하고 기한도 여러 번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매번 반복하고 챙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차라리 나 혼자 일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능률적일 것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신경 쓰면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팀 전체가 공동의 일을 해야 하는 경우였다. 예를 들면, 매년 팀 전체가 힘을 합해 진행해야 하는 전사차원의 큰 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에서는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서  팀원들 각자가 역할을 분담해서 진행했다. 그런데 그 후배사원은 본인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해놓지 않아서-기한을 넘기거나 정확히 처리하지 않거나- 행사 준비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  그가 펑크 낸 일을 다른 팀원들이 대신 처리하느라 분주히 뛰어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대한 팀원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하지만 조용하고 착한 팀원들은 속으로는 불만이 있을지언정, 아무도 그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도 그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모른 척 가만히 있는 것이 팀을 위한 것도, 그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웠다. 분명 똑똑한 친구인데..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열심히 하면 개인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고 팀에도 더 공헌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잘 끌어주기만 하면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에게 1:1 면담을 요청했다.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그에게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가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하지 않는 것 같다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기대만큼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혹시 일하는 데 있어서 불만이 있는지, 아니면 어떤 어려움이 있는 건지 물었다. 지난번에 진급 심사 탈락해서 속상하지 않았냐고, 올해에는 열심히 해서 진급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때 상황을 되돌아보니 그의 상사(팀장)도 아니면서 그를 불러내서 그런 말을 했던 내 모습이 참 우습다. 꼰대도 아주 심한 꼰대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진급 얘기까지 운운하면서 말했으니 그로서는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빴겠는가.


그날 이후로 그가 변화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예상하듯이 결과는 이러하다.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눈 몇 개월 뒤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공부를 더 하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진짜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만두었는지, 나같이 꼰대 선배가 싫어서 그만두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퇴사하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참 심란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그런 후배사원을 잘 이끌며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끝내 배우지 못한 채 얼마 뒤 나도 퇴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에게 동기부여 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를 움직이지 못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동기부여’와 관련된 책들을 뒤져보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저서 '동기부여 불변의 법칙'을 보면 '직원에게 처음부터 일을 가득 안기라'는 내용이 나온다. 30년간 딜로이트 앤 투쉬 사가 연구한 내용을 보면, 첫날부터 일을 많이 받은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하고 기여하고 실적을 올리는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안 한 것이 아니라 ‘똑똑했기 때문에’ 열심히 안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의 능력에 비해 그가 맡은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쉬운 일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그에게는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일들이 전혀 도전적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잘 해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연구원 생활만 하다가 기획팀에 처음 왔다는 이유로 그에게 처음부터 쉬운 일만 맡기며 천천히 가르쳤다. 수학으로 비유하자면, 어려운 함수 문제를 풀 수 있는 똑똑한 후배에게 배려랍시고 덧셈, 뺄셈만 하게 시켰던 것이다. 그랬으니 열심히 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을 리가. 책의 내용대로 그에게 처음부터 도전적인 함수 문제를 잔뜩 안기며 가르쳤더라면 새 일에 적응하느라 더 힘들었겠지만 더 열심히 일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는 아직도 가끔씩 연락을 하고 지낸다. 조만간 연락해서 물어보고 싶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어려운 함수를 공부하게 되어 이제라도 행복해졌냐고 말이다. 최고급 사양의 컴퓨터를 사놓고도 전자계산기 프로그램만 사용하듯이, 최고의 인재를 데려다 놓고 덧셈, 뺄셈만 시켜서 미안했다고, 이제라도 사과하고 싶다. 앞으로는 사람이든 기계든 그 능력을 잘 파악해서 활용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림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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