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회사에서 입을 꽉 다물었다. 팀원들과 말을 섞기도 싫었다. 하루종일 팀원들과 조잘대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던 것일까.
이 일의 발단은 B팀장님이 새 팀장으로 오고 나서부터였다. 나 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 그가 새 팀장이 되고 나서 힘들어했다. 그는 이전 팀장과 다르게 여러 면에서 팀원들과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에 말했듯이 그는 그래서 리더십 평가(팀장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B팀장님의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
착하고 순한 팀원들은 팀장님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반면, 불의하다고 생각하면 참지 못하는 나는 새 팀장님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표명하곤 했다. 리더십 평가 결과가 낮게 나온 이유를 팀장님에게 전달한 것도 나였다. 그 이후로 마치 팀의 대변인처럼 팀원들을 대신해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팀장님에게 전달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팀장님과의 전쟁(?)에서 선봉에 서는 잔다르크 역할을 맡은 셈이라고나 할까.
새 팀장님의 특징 중 하나는 업무분장을 고려하지 않은 업무지시였다. 어느날 내가 맡은 업무 관련한 일을 최과장에게 시키는 것을 보았다. 그가 업무분장을 아직 잘 몰라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얼른 팀장님에게 달려가 그 일은 최과장이 아니라 내 담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팀장님은 그 일을 최과장이 아니라 나에게 할당했다. 얼마 후에 또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때도 나서서 내 일을 받아왔다. 팀장님의 실수 때문에 다른 팀원이 나의 일까지 떠맡는 모습을 뻔히 보고도 모른 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이번에는 최과장이 담당한 업무가 나에게 떨어졌다. 최과장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팀장님은 나에게 그 업무를 지시했다. 그 순간, 그전에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최과장이 나서서 그 일이 본인의 일이라고 말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최과장은 그냥 모른 척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이후로도 이런 경우가 몇 번 반복되었고 매번 최과장은 일언반구 없이 모른 척했다. 그 일이 오랫동안 최과장 고유의 업무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다른 팀원들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내가 직접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기 싫어서 남에게 그 일을 떠맡기는 모양새가 되는 것 같아서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일을 받아왔는데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 일들을 최과장이 하기 싫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과장이 ‘옳다구나, 이번이 기회구나.’라는 생각으로 그 일이 나에게 넘어오도록 가만히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남에게 갈 뻔한 내 일도 받아오고, 내 것이 아닌 남의 일도 받아오느라 업무량이 엄청 늘었다. 그 업무량을 소화하느라 그전에 비해 야근도 늘고 점점 힘들어졌다. 그럴수록 최과장에게 화가 났다. 이 상황에 가만히 있는 팀원들에게도 배신감이 느껴졌다. 팀원들을 위해 늘 앞장서서 나쁜 역할 도맡아가며 잔다르크 역할을 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화가 쌓이고 쌓이던 어느날 입을 다물었다. 팀원들과 한 마디 말도 나누기 싫어져서였다. 그깟 이 정도 일로 유치하게 입을 다물었냐고? 정말 유치했던 거 나도 안다. 하지만 사람이 한번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가 있다. 특히 그때가 이미 몸과 마음이 힘들 때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한동안 그렇게 침묵수행을 하면서도 분노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항상 말 많고 푼수같이 실실 웃던 나였는데 그렇게 있으니 마음도 안 좋고 아무것도 해결되지도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회사 내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에 찾아갔다. 심리상담사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분노 어린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상담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상담사는, 내가 팀원들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팀원들과 솔직히 대화해 볼 것을 권유했다. 처음엔 과연 무슨 오해가 있을까 싶었다. 사람이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하면 이렇게 상황판단을 못하는 법이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팀원들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것도 옳지 않기에 마음을 다잡고 최과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최과장과의 대화자리에서 최과장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팀장님이 제 일을 자꾸 임과장님께 주시는 것을 보고 너무 속상했어요. 팀장님 보시기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제 일을 임과장님께 주시는 것일 테니까요. 임과장님이 저보다 일 잘하시는 것을 저도 알기에, 그 일을 다시 달라고 얘기도 못 꺼내고 있었어요.”
이런..최과장은 최과장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팀장님은 별생각 없이 업무를 배당했는데, 두 명의 당사자가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속 썩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이 하던 일을 하기 싫어서 나에게 넘어가도록 최과장이 그냥 있었다는 것은 지독한 착각이었다. 그 상황을 바라보던 팀원들도 아무렇지 않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만큼 당황스러워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만 착하고 순한 팀원들은 팀장님의 업무지시에 담겨있을지 모를 깊은 뜻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부끄러웠다. 내 마음대로 오해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은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입 다물은 내 모습이 참으로 창피하고 미안했다. 그 일로 깨달았다. 회사에서든 어디서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이 따로 있다는 것을. 본인이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달리 보이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실체와 전혀 다른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은미 작가의 ‘인사의 다섯 가지 시선’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피드백하기, 갈등의 해결, 관계 맺기, 이 모든 것을 위한 좋은 전략 중의 하나는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읽어내려는 노력이라는 말. 나의 경우 최과장이 가만히 있었던 의도를 무조건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해서 혼자 오해하고 있었다. 최과장의 선한 의도까지는 읽지 못했더라도 그녀의 의도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애초부터 나 혼자 분노하고 침묵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들은 진즉에 깨달았을 이 평범한 사실들을 부끄러운 실패(?)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어찌하랴. 내 그릇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그릇인 것을. 그나마 실패를 통해 작은 그릇을 조금씩이라도 키워가기를 희망해 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