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애들 키우며 회사 다니던 워킹맘 시절 종종 했던 생각이었다.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다가 둘째가 5개월 된 아기였던 시절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다. 밤새 아기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느라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했다. 퇴근시간이 되면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 친정엄마에게 바통터치받아 큰애 숙제 봐주고 아기를 돌봐야 했다. 회사를 퇴근해도 집으로 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투잡을 뛰는 듯한 상황이랄까. 그런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갔다. 쉬고 싶어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쉴 수가 없었다. 제발 혼자 잠깐이라도 쉬고 싶다는 마음에 저렇게 입원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회사도 집도 가지 않을 명분이 생겨서 나 혼자 좀 쉴 수 있는 방법은 병원 입원 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있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던 어느 날, 화장실 거울 속에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거울 속에 내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지겹지 않니?라고. 지금 무엇인가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이 결정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가 되었다.
그날 퇴근길에 바로 집 앞에 있는 헬스장에 가보았다. 동네에 헬스장이 여러 개 있었지만 이곳 저곳 찾아가며 비교해 볼 에너지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순전히 거리 기준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는 난생 처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1:1 PT를 시작했다.
처음 운동 시작했을 때 트레이너가 정말 놀라워했다. 운동을 잘해서 그랬냐고? 천만의 말씀.
“이렇게 근육이 없어서 그동안 어떻게 걸어 다니셨나요? 이 몸은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기에도 힘든 몸이에요!”
그 당시 인바디를 찍어보니 온 몸에 근육량이 17kg이 채 안되었다. 얼마 후 TV에서 본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80대 할머니의 근육량이 19kg이었으니, 나의 몸뚱이는 80대 노인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늘 피곤하고 체력이 딸리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진짜 오로지 ‘살기 위해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몇 개월 운동을 하면서 몸에 근육이 붙는다거나 살이 빠진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효과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운동의 효과를 보려면 한참 더 해야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주말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 문득 운동의 효과를 느꼈다. 그전에는 가족여행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가족여행을 가면 운전하고 애들 챙기느라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하기만 했다. 좋은 경치를 두고도 전혀 감상할 수가 없었다. 애들한테 자꾸 짜증을 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짐도 풀지 못하고 쓰러져 누워야 했다. 그저 워킹맘으로서 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는 죄책감을 풀기 위해 숙제처럼 가족여행을 다녔을 뿐이었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고 난 몇 개월 뒤 떠난 가족여행에서, 어느 순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자연경관이었는데 너무나 여유롭게 감상을 하게 된 것이다. 옆에서 사고 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크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아! 운동을 통해 체력이 좋아지니 이렇게 가족여행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게 운동의 효용을 느끼고부터는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도 동료들에게 운동을 권하는 운동 전도사가 되었다. 저녁에 자꾸 야근, 회식 등이 생겨서 운동시간을 맞추기 어렵게 되자, 아예 1:1 PT시간을 새벽 6시로 잡아서 출근 전에 운동을 했다. 잠을 줄여 운동까지 하고 나서 출근하면 더 힘들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운동을 하고 출근한 날이 에너지가 훨씬 넘치고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다. 일하면서 집중력도 더 높아졌다.
한근태 작가의 저서 ‘몸이 먼저다’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몸 만이 현재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몸은 늘 현재에 머문다. 현재의 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늘 모든 것에 우선한다.”
투잡을 뛰는 듯이 바쁘고 여유 없게 사는 워킹맘일수록 꼭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면 회사일도, 가정일도 모두 잘 해내기 힘들다. 설사 잘 해낸다고 해도 그만큼 몸을 혹사시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기 쉽다. 워킹맘 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이 마찬가지다. 현재의 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몸을 챙기지 못하면 결국 그 바쁘고 중요하다던 회사일도 제대로 못하게 되는 날이 올 수 있다.
우리는 결국 행복해지고자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고 성공한다고 해도 건강을 해치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 늙어서 쓸 병원비를 미리 모으려는 목적만으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장생활의 보람, 돈, 자아실현, 네트워킹 등등 직장생활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젊어서는 건강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 다니고, 늙어서는 돈은 있는데 건강하지 못해서 여행을 못 다닌다는 말들을 한다. 늙어서도 쌩쌩하게 파리 에펠탑 계단을 올라가 멋진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운동을 한다. 이 글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여운을 준다면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스쿼트 몇 개라도, 아니 팔 뻗어 스트레칭이라도 해보시길 간곡히 권하는 바이다. 몸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