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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Jul 19. 2023

출장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 가는 것

- 출장을 대하는 자세

회사를 다니다 보면 업무 목적으로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이를 ‘출장’이라고 한다.


대덕연구단지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의 본사는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로 출장 갈 일이 종종 있었다. 또한 지방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공장으로도 출장 갈 일이 가끔 있었다. 그 당시는 온라인 화상회의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회의를 위해서는 꼭 물리적으로 참석하는 출장을 가야만 했다.


어느 날 여수에 있는 공장으로 출장 갈 일이 있었다. 총 4명의 출장자들이 차를 타고 대전에서 여수로 출발했다. 4명 모두 여수라는 도시에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출장계획을 짜면서 우리는 야심차게 맛집 탐방 계획까지 세웠다. 원래 여수에서 진행되는 회의는 오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라남도 여수는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니, 오전에 일찌감치 출발해서 여수 시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공장으로 가자고 작당모의(?)한 것이다. 차에서 들을 음악까지 세팅하고 나서 신나게 출발했다. 차 타고 이동하면서 점심 메뉴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수에서 유명한 음식인 하모(갯장어) 샤브샤브를 먹자며 신나게 의견 통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메뉴에 대해 너무 집중한 바람에 운전하던 직원이 길을 잘못 들어버렸다. 대전에서 여수 쪽으로, 즉 남쪽으로 똑바로 내려가는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탔어야 했는데 그 길을 놓쳐버린 것이다. 길을 놓쳐서 어떡하냐고 우왕좌왕했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에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차를 돌릴 수가 없었다. 결국 남쪽으로 내려갔어야 할 우리는 동쪽에 있는 대구까지 가버렸다. 대구를 찍고 부랴부랴 여수 쪽으로 차를 돌렸다. 하지만 대구에서 진주, 사천을 지나 여수까지 멀리 돌아가는 바람에, 원래 계획보다 두 시간 이상 늦게 도착했다. 결국 우리는 하모 샤브샤브는 커녕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회의에 들어가야만 했다.


출장 가면서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은 그 때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본사로 출장 갈 때면 본사 근처 맛집 어디서 밥을 먹을까 찾아보는 재미로 출장을 갔다.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과 관계없는 회의시간, 즉 아침 일찍 예정된 회의나 오후 늦게 예정된 회의를 위해 출장가는 길은 즐겁지가 않았다. 그런 회의는 아예 참석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밥에만 관심 있던 출장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우리 팀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였다. 사람에게 위기에 닥치면 그전에 가지고 있던 마음가짐이 모두 리셋된다. 그리고 위기 대응을 위한 정신무장을 새롭게 하게 된다. 그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우리 팀이 그동안 해오던 업무에 대해서 상부에서 챌린지가 들어왔다. 당시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다분히 정치적 보복과 같은 태클이었다.  우리가 업무를 잘 해왔음을 증명하는 보고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비단 우리 팀 뿐만 아니라 팀장님과 그 위로 줄줄이 상사들의 목숨과 자존심이 걸린 보고였다. 그런 중차대한 보고서 작성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에서 회의가 여러 번 개최되었다. 당시 보고서 담당자였던 나도 그 회의들에 참석해야 했다.


이렇게 위기 상황이 닥쳐오니, 출장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마치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독립투사 같은 비장함으로 출장을 다니게 되었다. 그러자, 예전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 억울했는데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능한 일찍 서울로 출발했다. 빨리 서울에 도착해서 중대한 회의를 준비하고 보고서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종일 서울에서 회의하고, 보고서 작성하고, 작성한 내용 피드백받고 하느라 밤 늦게야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다.


서울 간 김에 맛있는 것 먹자는 생각 따위도 들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급히 산 김밥으로 기차 안에서 대충 끼니를 때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출장을 다녀오면 보람있게 하루를 썼다는 뿌듯함까지 들었다. 젯밥에만 관심 있던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출장에 대한 마음가짐이 왜 그렇게 달라졌을까에 대해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았다. 핵심은 출장의 의미에 대한 나 스스로의 정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예전에 출장 다닐 때는 출장의 목적이 '출장을 통한 소기의 업무 성과 달성'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타 지역에서의 맛집 탐방' 등의 개인적인 욕심이 주 목적이었다. 하지만 팀에 위기상황이 오고 나자 출장의 목적은  '회의를 통해 좋은 보고서를 써서 팀을 방어한다'는 숭고한 목적으로 세팅되었다. 그러자 맛집 탐방이든 뭐든 그 외의 것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출장’을 한자로 쓰면 ‘出張’ 이다. 나갈 출出에 베풀 장張이다. 말 그대로 출장은 ‘나가서 베푸는 것’이다. 즉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여 회사에 ‘베풀기’ 위해 나가는 것이 출장이라고 이해된다. 내가 원하는 것(=맛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에 베풀기 위해 가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보고서를 열심히 만들며 출장 다니던 때는 팀을 위해 나의 시간과 능력을 베푸는 출장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 있고 보람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앞으로 또 출장의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그렇게 베푸는 마음으로 기쁘게 떠나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쩝쩝.




그림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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