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 (2)
DAY1
06/23 - 월요일
현지시간 18시 즈음해서 독일 뮌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장으로 향하는 길이 통창으로 된 구역이 많아 바깥 날씨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장시간의 비행이 힘들었는지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나도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물을 보며 앞에 선 사람들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곳은 시끌벅적했다. 나처럼 Automatica 전시회 참관으로 온 사람들이 많은지 한국인들도 많이 보였고, 일행들과 하는 얘기를 엿들어 보니 로봇 쪽 업계 관계자처럼 들렸다.
입국심사는 정말 간단했다. “Destination?”, “Um.. Automatica”/ “How long?”, “4 days” 이 것이 질문과 대답 전부였다. 이 기간 동안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 대다수가 Automatica를 목적으로 오는지 다른 질문은 일절 없이 아주 간단히 입국절차를 마무리했다.
캐리어까지 찾아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공항 로비로 나가려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일정에 가지고 간 캐리어는 무료 위탁수화물 규정의 최대 사이즈다. 정확하지 않지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예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며 사둔 캐리어인데, 그 당시 호주산불과 코로나로 비자만 받고 떠나진 못했지만 캐리어는 남아 유용하게 활용 중인 아이템이다. 다만 사이즈가 좀 크다 보니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고 이사할 때나 해외여행과 같은 일이 있을 때 아주 잘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큰 사이즈가 문제였는지 로비로 나가는 마지막 문을 통과하기 직전, 그 앞에서 있던 공항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붙잡혀 안쪽 짐검사하는 사무실로 안내당했다. 캐리어와 백팩 모두 열어 보여주었고, 왜 왔는지, 독일에서 만날 사람은 누구인지, 인천공항에서 구매한 시계를 보며 왜 샀는지 이런 질문들을 퍼부었다. 특히 시계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시계를 많이 산 것도, 비싼 시계를 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미 뜯어서 포장지가 충분히 망가진 상태인데도 이 시계를 독일에 들여와서 팔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질문들을 이어갔다. 꼬투리 잡히기 싫어서 최대한 친절하게 차근차근 다 설명했고 결국 본인도 흥미가 떨어졌는지 가보라고 했다. 어디 가서 붙잡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붙잡혔을 때는 아주 조금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냥 처음이라서 신기했고 그러니까 설렜다고 표현하는 게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문을 열고 나가 공항 로비로 나섰다. 바로 앞에 이번 일정을 함께 할 가이드께서 팻말을 들고 서 계셨다. 나포함 총 4명이 이번일정을 같이 하는 것으로 전달받았는데 부녀로 보이는 두 분이 가이드 뒤쪽에 서 계셨고, 다 왔는지 여쭤보니 아직 한분이 안 오셨다고 했다. 짐검사 때문에 꼴찌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속으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도착하고 밖으로 나가 차를 타고 출발했다. 아우토반(고속도로)을 타고 쭉쭉 내달렸다. 역시 독일이라 그런지 도로 위의 차들 대부분이 벤츠, BMW였다. 심지어 택시조차도 그랬다. 그리고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차(Van)도 벤츠다.
다행히도 도착하자 보인 비는 그쳐 날씨가 개기 시작했다. 숙소는 공항에서 차 타고 40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했지만 바깥구경하며 독일에 온 실감이 한껏 느껴지자 시간은 금세 흘러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이드는 예상시간보다 늦어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은 못 갈 거 같다고 호텔 근처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에서 우리는 각자 메뉴를 주문하며 본인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부녀로 보이던 두 분은 내 예상이 맞았다. 아버지는 A기업이라는 곳에서 신상품 기획 쪽 업무를 맡고 계시는데 이번에 독일 뮌헨 바로 근처에서 유학 중인 딸을 볼 겸 해서 이번 일정에 함께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따님은 뮌헨 근처 대학에서 나노 소재 쪽 석사과정 중이며 독일에 온 지 10개월 정도 되었다며 메뉴 주문할 때 궁금한 게 있으면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다른 한분은 로봇제조사 B기업의 책임 연구원이셨다. 여성분이셨는데 원래 L사의 모바일 사업 관련 중책을 맡으시다 로봇 쪽 사업부로 옮기셨고, 은퇴 후에 L사의 자회사인 B기업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커리어 소개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으로 보였다.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남달랐다. 나는 가이드의 추천으로 독일은 돈까스, 학센이 유명하다고 하시길래 돈까스를 독일어로 뭐라고 하냐고 물었고 슈니첼이라고 그 따님이 답해 주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어감에 슈니첼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분은 메뉴를 번역기로 하나하나 찍어가며 한글로 메뉴를 읽고 어떤 음식인지 질문을 하고 계셨다. 정말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다. 다만 조금 웃겼던 건, 그리고선 선택하신 메뉴가 다들 하나씩 해서 나눠 먹자며 그냥 남은 메뉴였다.
모두가 메뉴를 고르고 독일에 왔으니 맥주는 마셔야 되지 않겠냐며 한잔씩 하자고 각자 취향의 맥주들을 골랐다. 나는 어딜 가나 항상 처음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대게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마시는 걸 즐기지 않아서이지만 지금 이런 선택을 한건 맥주이기 때문이다. 맥주는 특히 내 입맛에 안 맞다. 아주 가끔 얼어있는 잔으로 마시는 생맥주는 시원한 느낌에 마시긴 하지만, 맥주 자체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독일에서 사랑받는 콜라와 환타를 섞은 맛의 제로 음료가 있다길래 그게 궁금해서 이기도 했다. 나중에 다 마시고 한병 더 달라고 해서 마셨다. 오묘한 게 내 입맛에 맞았다.
내가 주문한 건 슈니첼, 돈까스다. 하지만 입안에서 씹히고 있는건 소금에 절이고 소금에 튀긴 돼지고기였다. 짜다는 표현만으로는 이 맛을 표현하는데 매우 부족한 느낌이다. 다들 음식이 짜다며 맥주를 계속해서 마실 수 밖에 없다고 웃었다. 분위기는 만점 맛은 10점이다. 안타깝지만 원수가 이곳을 간다고해도 말리고 싶을 정도다.
한참 입을 오물거리며 시계를 보니 시간은 9시를 넘어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밖을 보이 이제야 어두워지고 있었다. 신기한 게 독일은 여름에 해가 떠있는 시간이 아주 길어 10시나 돼야 해가 진다고 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다음날 새벽인데 아직 정신이 멀쩡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는 한참 떠들다 10시가 다되어서야 식당을 나설 수 있었다.
원래 숙소는 2인 1실이었다. 추가금을 내면 1인 1실로 변경이 가능했지만 금액이 굉장했기 때문에 1인 1실은 일찍이 접었었다. 하지만 이번 일정에 등록한 사람이 줄어 정말 운이 좋게도 혼자 방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부녀 두 분이서 한방을 쓰고, 나 그리고 책임연구원님이 각각 방 하나씩을 쓰게 되었다. 이것도 정말 행운과 축복이 내 뒤를 따라 독일 뮌헨의 이곳까지 왔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방에 들어와 방안의 어색한 공기를 마시며 두근거리는 기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심한 소리를 질러 보았다. 내일은 또 얼마나 좋은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기분이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다음날이 기대될 정도로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