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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Nov 21. 2019

모든 첫 순간은 어설프다.

좌충우돌 첫 운전연수



내 취향에 맞춰 집에 있던 피규어로 바꿔달았다.


 16년 된 중고차를 첫차로 구입했다. 3만 4천 킬로 정도로 짧게 탄 출퇴근용 전용차라서 그런지 외관이 아주 깔끔했다. 차를 탁송으로 받자마자 자동차정비사인 아빠가 꼼꼼하게 살펴봐주었다. 그 사이 나는 레고 피규어가 달린 주차 번호판을 주문하는 것으로 운전준비를 마쳤다.


 첫 운전연수를 앞두고, 깨톡 가족 채팅방에서 언니와 엄마가 걱정을 내 비췄다.


[시에나 운전 잘할 수 있겠어? 안 떨림?]

[아빠랑 언니가 베스트 드라이버이니까 시에나도 잘 할 거야.]


 정작 본인인 나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막연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운전면허를 땄을 때의 기억 때문이다. 누군가 급한 상황에서 1종 차량밖에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던 것을 계기로 겁 없이 1종 면허를 선택했다. 강사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운전면허증이 손에 쥐어져있었다.


 드디어 아빠와의 첫 운전 연수 날이 왔다.

 아빠는 카센터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나보고 운전석에 앉아 이것저것 하고 싶은 대로 조작해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아빠에게 티는 못냈지만 브레이크와 엑셀 위치가 헷갈려 전날 언니에게 개인 톡으로 살짝 물어봤었다. 소심하게 깜빡이를 켜보고 와이퍼를 작동시켜봤다.


 ‘어떻게 클러치를 밟으면서 시험을 봤던 걸까?’

 아빠는 안위가 걱정된 건지 보조석에 타지도 않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에게 브레이크와 엑셀을 살살 밟으면서 천천히 앞뒤로 왔다갔다 해보라고 했다. 30번쯤 전진과 후진만 반복하니 이미 한계령을 운전해서 다녀온 듯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아빠! 나 이제 도로에 나가면 안 돼?”

“안 돼. 이대로 나가면 뒷 차 난리난다.”


 결국 아빠가 운전대를 잡고, 우리는 집에 들려 엄마가 크레파스로 알록달록하게 쓴 <초.보.운.전> 표지판부터 붙였다. 신호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 도착해서야 다시 운전대에 앉을 수 있었다.


 드디어 도로에서의 첫 운전!

아빠는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보조석에 앉았다. 룸미러로 돌아본 뒷자리에는 안전벨트가 끊어질 듯 꼭 쥔 채 불안한 표정으로 떨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슬슬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도로의 정중앙에 차 위치를 맞춰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엑셀을 밟는 건 사치였다. 슬금슬금 길 위를 굴러갔다. 차츰 핸들조작에 안정감이 붙어서 엑셀도 살짝 밟아봤다.


 양 옆이 나무로 우거진 초록 터널 사이로 진입했다. 숲속을 차를 타고 걸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느린 움직임이었다. 멀리서 까만 무리가 종종걸음으로 도로를 건너는 것이 보였다. 회갈색의 야생 오리 떼였다. 엄마로 보이는 큰 오리를 따라 아기오리 서너 마리가 잰걸음으로 부지런히 쫒아가고 있었다.


“아빠! 어떻게 해!!!! 내가 쟤네 치면 어떡해?”

 처음으로 만난 돌발 상황에 대형사고가 난 듯 극성을 부렸다. 브레이크를 밟지도 못하고 동동 굴렸다. 아빠는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했다. 속도가 차츰 줄여졌다. 당황스럽게도 차가 다가가기도 훨씬 전에, 이미 오리 떼는 길을 건너갔다.


 ‘어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시골길을 달리는데, 이번에는 회전 구간이 나타났다. 가뜩이나 운전대를 휙휙 돌려서 아빠한테 혼나고 있었던 때 회전구간이 나타나다니! 얼마나 운전대를 꺾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지. 더 꺽어야지. 더. 아니! 멈춰!!”

 아빠의 다급한 외침에 차를 멈췄다. 하마터면 가드레일에 박을 뻔 했다. 아빠가 핸들을 꺾어주면서 위기를 겨우 탈출했다.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달리며 차츰차츰 하나씩 잘못된 것을 고쳐나갔다. 금세 다섯 시간이 지났다.

“회전구간만 빼면 그래도 잘 했어.” 아빠의 값비싼 칭찬으로 첫 운전 연수는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드디어 두 번째 운전 연수의 날!

 눈에 잘 보이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블루투스 페어링을 돕는 무선 카팩도 달았다. 이번 운전연수 장소는 시 외곽에 위치한 도예마을이었다.

 동네 한 바퀴를 가볍게 도는 것으로 운전 연수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첫 코너링부터 삐그덕 거렸다. 아빠는 급하게 장소를 주차장으로 바꿨고 이때부터 스파르타 운전연수가 시작되었다. 텅 빈 주차장의 주차라인을 따라 코너를 도는 연습을 시켰다.


 “아니지, 다시..다시! 다시!”


아빠의 입에서 ‘다시’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나온 건 지금껏 살면서 처음이었다. 내 위장이 방향에 따라 오른쪽에 쏠렸다가, 왼쪽에 쏠렸다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지켜보던 아빠의 안색이 점점 까매졌다. 답답한 마음이 들 법한데 소리도, 짜증 한번 부리지 않아서 더 미안했다. 2시간 30분 만에야 겨우 지겨운 주차장을 벗어났다.


 편의점에서 얼음 컵 커피를 한잔씩 들이켰다. 차를 빨리 끌어보고 싶은 마음에 동네를 돌아보자고 아빠를 꼬셨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아주 느리게 동네를 누볐다.

 회전교차로에서는 뒤 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반복해서 10번쯤 돌았다. 가까운 카페테라스에서 내 차를 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차 왜 저래?! 미쳤나?” 하고 욕할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하면서 즐겁게 회전교차로를 빙빙 돌았다. 한 시간쯤 반복된 마을 풍경이 지겨워질 때 쯤 아빠가 말했다.


“다시, 주차장으로!”

“왜? 나 이제 좀 재미있는데.” 하지만 수강생에게는 권한이 없었다.

“이번에는 주차 연습을 한번 해보자.”


 아빠가 아무 칸에나 차를 넣어보라고 주문했다. 정성껏 핸들을 돌렸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전진할 때와 후진할 때의 방향이 반대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방향을 조작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한숨이 나오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아빠 너무 어려워. 힘들어.”

 초여름 땡볕에 그늘도 없는 주차장 한 가운데서 주차하는 모습을 보던 아빠가 물었다.


 “그래서 안할 거야? 포기 할 거야?”

더위에도 아랑곳없는 아빠의 모습에 차마 응! 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천천히 다시 시도했다. 드디어 사선으로 치우쳤지만 칸 안으로 들어갔다. 한번 칸 안에 들어가보니 점점 성공 횟수가 늘어갔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아빠는 차를 반듯하게 넣는 것으로 박차를 가했고 주차 연습까지 알차게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는 직접 집까지 운전을 하며 돌아왔다.


 세 번째 운전 연수를 앞두고 있다. 빨리 마무리 짓고, 혼자서도 차를 잘 끌고 싶다. 저녁을 먹으며, 세 번째 주의 커리큘럼을 강사님께 여쭤봤다.


“이번에는 빈 박스를 몇개 챙겨가서, 주차 칸 좌우로 세워두고 건드리지 않고 주차하는 걸 마스터해야지.”

“도로 주행은?”

“도로 나가는 거야. 지금이라도 슬슬 나가면 되지. 주차가 문제지. 너 시내에서 차 어떻게 세워두게?”

“아...”


 큰 이변이 없으면 아빠와 세 번째 연수를 무사히 마치고 운전 홀로서기에 나설 것이다. 부디 그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아빠에게 운전연수를 받은 건 불과 6개월 전의 일이다. 그 후 매일 출퇴근을 하며 운전이 익숙해졌다. 남한산성 꼬불길을 타보거나 고속도로도 운전해보니, 운전연수를 받던 어설픔은 잊어 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왜 운전을 더 잘하지 못하는 지 자책하며, 당연히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의 운전연수를 받던 그때의 마음과 태도를 기억하고 싶다. 어려움을 극복했던 것처럼,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일을 하든, 처음의 어설픔과 첫 순간의 낯선 감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싶다.






PS.

 32년을 살며, 이제는 처음 해보는 일보다 익숙한 일이 더 많습니다. 그동안 만나온 모든 처음의 순간과 앞으로의 첫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연재입니다. 기억에 남은 지난 첫 순간과 앞으로 다가올 처음을 글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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