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나 Jan 22. 2020

오래 전의 내 친구에게


며칠  울다가 잠이 깼어. 꿈에서 억울한 마음에 울고있었는데...일어나보니 정말 펑펑 울고있더라고.  꿈에 네가 나왔어. 꿈속에서도 너는  차갑더라. 너와 내가 멀어진 것처럼 꿈속의 우리도 그랬어.



 우리가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였어. 조금 쌀쌀 맞지만 어른스럽고 차가운 성격의 너와 순하고 모질지 못하지만 고집이 셌던 나는 의외의 단짝이 되었지.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나오며 더없는 절친이 된 것도 당연했어.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함께 입시학원에 가거나 집에 갔어. 대학생이 되며 잠시 멀어지기도 했었어. 대학 졸업반이 되기 전, 서둘러 취업한 너와 편입과 휴학으로 여전히 대학생이었던 나. 나는 그때부터 우리를 비교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서울 자취집에 남아 취업을 준비하던 나와 이직하며 서울로 상경했던 너. 우리의 간극은 더 벌어졌지. 바로 출근을 해야하는 데 당장 지낼 곳이 없다는 너는 내게 조심스레 내 자취집에서 잠시 지내도 되냐고 물었지. 나는 괜찮다 했고 그렇게 이주일쯤 넌 내 곁에 머물렀지.


 너는 급하게 집을 알아봤어. 네가 살 집을 찾으러 여러 고시원과 원룸을 함께 둘러보며 방황했던 밤이 생각나. 조금 추웠고 네가 지내게 될 낯선 동네가 으슥해서 조금 걱정하기도 했어.

 금방 너는 새로운 집을 구했어. 직장과 가깝고, 근처에는 꽤 긴 하천이 흘렸지. 봄이 되면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아직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꽃이 만연했던 풍경이 보이는 것 같아.


 그때쯤 난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 이제 내가 너의 신세를 지게 되었어. 서울에서 볼일이 아주 이르거나 늦게 끝났을 때, 난 네 집을 내 집 드나들듯 드나들었고. 'ㅇㅇ이네서 자고 갈꺼야!'라고 말하면 엄마의 외박 프리패스가 주어질 정도로 가장 가깝고, 믿음직스러운 내 친구였어.




 내 첫 연애가 끝났을 때, 울던 내 목소리에 너도 따라 울었던 거 기억나?

“왜 내가 눈물이 나지?” 라며 넌 같이 울고 말았어. 생각해보니 중학교 2학년 내 첫사랑이 끝났을 때도 넌 함께였지. 그때의 추억은 우리의 술안주가 되었고, 종종 넌 "너 나중에 결혼할 때 네 신랑한테 내가 다 이를꺼야!" 라며 날 떨게 만들기도 했지.




친구야 잘 지내니?

20년 지기 친구였지만, 이제는 연락도 안 하는 우리가 참 낯설다.


맏이인 넌 언니처럼 항상 날 잘 보살펴줬고 먼저 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늘 나에게 밥을 사줬지. 나는 그게 고마운 만큼 미안했어. 까칠한 네가 가끔 나에게 짜증을 부려도 그냥 받아줘야겠다 마음먹었던 이유이기도 했을 만큼 말이야.


 우리의 연락이 끊긴 뒤, 늦은 첫 연애를 시작한 너의 프로필 사진이 바뀔 때면 걱정이 됐어. 좋은 사람 같았지만, 언제나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혹시나 상처받고 혼자 울까봐. 이제 우리 주변이 연애보다 결혼한 사람이 더 많을 나이니까... 연애나 이별 푸념 들어줄 사람이 없어 혼자 우는 건 아닌지. 함께 울어주지 못하는 마음에 카톡 친구목록을 혼자 서성거렸어. 문득 사라진 너의 프로필 사진에 망설이다 안부를 물었지만, 너에게서는 따갑도록 차가운 답장이 왔어.






 맥주 맛도 잘 모르던 나와 달리 넌 아저씨처럼 맥주를 좋아했어. 우린 건어물과자를 앞에 두고 맥주 캔을 부딪혔지. 그럴 때면 난 맥주보다 과자를 축냈고, 넌 나를 건어물녀라 부르며 놀리곤 했어. 이제야 맥주 맛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없어. 건어물과자에 대한 글을 쓰면서 네가 참 많이 생각났어. 몇 번인가 메시지 창을 열었다 닫았지.



  그 후 몇 달이 지나 갑자기 너에게 전화가 왔지만. 넌 여전히 직장일과 이직준비에 대한 하소연만 말했어. 여전히 ‘우리’는 없었어.

 그때 난 “그래. 힘들면 또 편하게 연락해.”라고 말했지만..이런 연락이라면 받고 싶지 않았어. 미안하지만 난 그때 우리의 관계를 놓았던 것 같아. 너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참 힘들었어. 그때 난 오전 편의점 알바에 오후부터 초저녁까지 투잡을 시작했고,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쓰고 있었어. 몸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더 힘들었지.




 서로의 달라진 환경과 그동안 쌓인 수많은 상처들을 난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우리는 멀어졌어. 요즘 종종 남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난 다른 고민들보다도 결혼을 한다면 너에게 청첩장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하나? 라는 고민이 가장 크게 떠올라. 이 고민을 하다 잠든 꿈속에서 널 만난 것 같아.



 친구야. 이제는 멀어진 너지만, 늘 잘 지내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는 볼 수 없는 나의 별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