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본인이 휘두른 폭력에 이의는 없으셔야할 겁니다
지난 금요일, 편의점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고 말았다.
"운동 좀 하세요!"
"네?"
운동 좀 하시라는 말을 선명하게 들었음에도, 되물어본 것은 '너 정말로 그말 한거니?' 라는 의미였다. 나와 친분이 있는 단골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떠돌이 손님이었고, 그는 물건 진열을 마치고 계산대로 돌아온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저 말을 한 것이었다.
말도 말이지만, 시선에서 이미 기분이 더러워졌다.
"운동 좀 하시라고요."
"제가 왜요?"
"운동 좀 하셔야 할것 같아요."
"네?"
상처받은 표정으로 노려보며 응답하니 아차 싶었나보다.
"아니. 운동을 잘하실것 같,"
"그게 아니잖아요. 왜요? 저 운동해야할 것 같아요?"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 선회하는 말을 끊어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살 쪘는데 뭐 도와주신거 있으세요? 왜 그런말을 하세요? 저한테 왜 상처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그런 뜻은,"
"됐어요. 가세요. "
참던 눈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꾸역꾸역 거우 말을 이었다. 사과를 하는 손님에게 나가라는 의미로 손짓했다. 그가 나가고, 혼자가 되자 참았던 눈물이 줄줄 흘렸다.
무방비 상태에 한대 얻어맞은 기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끊임없이 다가왔고, 얼얼하게 나를 아프게 했다. 나름의 반격은 했지만, 이대로 충분하지 않다. 맘같아서는 나가는 뒤통수를 쎄게 한대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슬프게도 나는 직원이었다. 감정노동을 하는 근로자를 위한 '고객응대보호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느껴질만한 큰 변화는 없다. 개인의 인성에 기대야하는 시민의식, 과연 시민의식이라고 평균치를 잡아도 되는 것일까?
여전히 뇌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끼칠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 야, 너를 기본 호칭으로 반말하는 손놈들, 애석하게도 그런 손놈들의 대부분은 왜 개저씨일까? 중년 남성 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개쌍마이웨이로 세상을 막나가기 시작한 것일까? 누가 연구좀 해줬으면 좋겠다.
집에서는 부인이랑 자식들에게 치여, 회사에서는 상사와 후배들에게 치여 눈치밥 먹는다는 개소리일랑 댓글로 달지 말길. 자신이 힘들고, 상처받는 것만큼이나 타인도 연약한 존재라는 걸 제발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친한 사람이 해도 정색할 말을 1도 모르는 타인에게 듣는 건 정말 최악이다. "난 아가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라는 핑계일랑 더더욱 집어 넣길. '왜 우리 아빠도 걱정 안하는 걸 아저씨가 해요?'라고 따기기 전에 말이다. 세상에서 '오지랖(유사어, 라떼는 말이야..)'이라는 단어가 제발 사라줘졌으면 좋겠다고 바랄만큼, 내 감정이나 기분을 침해받고 싶지 않다.
아무리 이렇게 울부짖어도 상처는 반복될 것이다. 입장의 상하관계에서 난 약자니까. 상황이 변화리란 기대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좌절하고 싶지 않다. 쉽게 단정짓고 싶지 않다. 그저 무시하라는, 듣고 웃어 넘기라는 여러 사람들의 조언에 따르고 쉽지만. 왜 나는 그게 잘 안될까. 어렵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렇게 대처해볼까 싶은 상상도 해본다.
"운동 좀 하세요!"
"네? 잠시만요."
"...?"
스마트폰 녹음기 어플을 켠다.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운동 좀 하시라고요."
"녹음은 선명하게 잘 되었구요. 성함과 연락처 남겨주세요."
"네?! 왜요?"
"제가 지금 기분이 매우 불쾌하니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의거 고소장 접수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적어도 본인이 휘두른 폭력에 이의는 없으셔야할 겁니다."
상상 속의 나는 끝도 없이 강해진다. 현실 속의 나도 강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