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좀 사는 게 어때? 별일 없지?"
취업이 되고 나서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게, 술자리를 갖는 게 한결 편해졌다. 사실 언제든 만나도 상관은 없었지만, 내 안의 어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는 게 한편으로는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 때. 주변 친구들도 한두 명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런 상황들을 아니, 어쩌다 시간이 맞아 술자리를 갖게 되면 서로 안부인사를 하는 게 기본 절차가 된 것만 같다.
그리고 친구들과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항상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듣는 말이 있다.
너 되게 조용해졌다. 역시 직장인이 되면 사람이 좀 바뀌나 봐
"뭐?" 처음에는 친구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호탕하게 웃으며 들었다. 그래, 내가 힘들어서 그런 게 은연중에 다 드러나는구나. 역시, 나는 티를 안 낸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알아봐 주는구나. 이래서 말을 안 해도 알아주는 친구들이 소중하다 느꼈다. 조금 더 오버를 더하자면, 이래서 사람은 사교생활을 해야 되는구나-라고 깨달았다.
하지만 계속 시원하게 넘기기에는 이런 느낌류의 말이 지속되니, 뭔가 찝찝함이 생겼다. 처음에야 신입시절 힘들어서 그런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이제 좀 회사생활에 익숙해져 내 딴에는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이런 얘기를 듣다니? 이건 또 나름대로 마음 한편에 이상한 반항심을 들게 했다. 내가? 직장인이 되어 차분해진 거라고?
그래서 조목조목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했다. 진상을 밝히기로 했다. 내가 회사를 다녀서 내 색들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원래 난 이런 놈이었던 건지.
바뀐 것들
여유로워지다.
확실히 내 밥벌이를 하기 시작하니, 여유로워진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용돈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기는 했었다. 하지만, 자고로 학생의 기본은 공부를 하는 거라 직장인과는 결이 다르다. 직장인이 돼서는 내가 내 노동력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번다. 1달의 1번, 월급날만 기다리며 사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가끔 기분전환으로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싶은 걸 사고, 남 눈치를 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유로움이 생긴 듯하다. 이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톡톡 튀었던 아이디어와 실행력. 남 얘기인 줄
확실히 학창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지쳐서 실행력이 전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번 맘먹어 1번 해도 셀프칭찬을 해야 할 정도가 된 것이다.
봉사활동을 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든지, 공모전에 나가 내 이름 석자를 알리고 싶었다든지, 이도 저도 아니면 유튜브를 시작해 유명해져 내 이름으로 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든지. 지금에서 보면 귀여운 행보였을지라도, 당시에는 진지하게 접근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지금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도 벅차다.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특히 회사에 다니면서 많이 바뀐 부분이다. 회사에 다니면 왜 그토록 자기소개서에 협업했던 일들을 물었는지 알 수 있는 상황들이 많이 나타난다. 기획부서에서 오더가 내려오면, 마케팅 부서에서 셋업을 하고, it 부 등 다른 부서에서 협조를 구할 때도 왕왕 많다. 그뿐이랴? 내 나름대로 기획안을 짜도, 상사들에게 갈수록 그들의 입맛에 따라 엎어지기도 부지 부수다. 처음에는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엎어질 거 일말의 기대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날 마주하게 되었다.
이래서 여실히 느꼈다. 내 마음대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회사에서 많지 않구나. 내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인생뿐이었구나.
나이가 먹을수록 책임감과 두려움이 커진다
위의 여유로운 부분과는 상충되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자유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에는 오히려 순수했기 때문에 파이팅이 넘쳤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속담만큼 적절하게 얘기하는 말도 없다. 하지만, 오히려 더 알아서 문제다. 한 번 가봤던 길이기에,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지금도 어린 나이는 아닌데, 괜히 충동적으로 질렀다가 실패하면 회복하지 못할까 봐. 내 선택으로 인해 바뀐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정의하는 것들
언제 튈지 모르는 내면의 아이
각자가 가진 꿈은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꿈들이 있을 것이다. 카페 창업, 프리랜서, 여행 작가, 귀농 생활 등 가까운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도 정말 많다.
최근에 나도 퇴사를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 것을 함으로써 퇴사를 하는 목표가 생겼다.
절대 성급하게 퇴사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어서 얘기하자면, 브런치 말고도 다른 소셜미디어의 계정이 많은데, 하나로 온전히 통합해 나를 브랜딩 하는 일이다. 전체를 10점으로 본다면, 아직 2점 정도 온 듯하다.
'나 29살에 퇴사할 거야'
'원석아 이제 우리 앞자리 3까지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어떤 친구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의도가 뭐였던 간에)
'아직 어리니까 해봐. 20대는 시간이 빨리 가더라. 하루라도 어릴 때 도전해'
어떤 친구는 나를 긍정적으로 몰아붙인다.
그래도 남들의 말에 휘말려, 시선이 무서워 도망치는 일은 더 이상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내면의 아이가 그렇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며 목소리가 작아질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이루지 못한 꿈이 더 커지고만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작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나니까.
나를 소개하는 키워드, 취향
20대 초반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나만의 이상한 집착이 있었다. 아마도 재수를 실패했기 때문에,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취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어떤 사람이 멋있는 건지 잘 몰랐다. 이직에 성공한 사람들, 포털에 검색하면 이름이 나오는 사람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참으로 다양했지만, 이제는 알 것만도 같다.
바로 내 wow point는 '본인의 취향이 뭔지 아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것을 경험한 걸 바탕으로 분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취향으로 좋다 싫다를 나누는 것도 충분하지만, 난 이것에 빠져서 여기까지 해봤어- 와 같은 류는 특히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상대방에게 열정을 느끼고, 매력을 느낀다. 전문성을 뽐내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들기까지도 하다.
최근 취미로 시작한 모임에서 여러 직종에 일하는 분들을 만났다. 위에서도 썼듯, 최근 나의 색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외적으로는 활발할지라도 내적으로는 속이 상해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니 여전히 나의 취향은 존재했었고, 그것이 바로 나였다. 즐겨 듣는 음악, 최근에 시작한 배움, 여행을 다닌 경험들이 나를 증명하는 키워드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나의 색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가족 얼굴보다 회사 사람들 얼굴을 더 자주 보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회사 안의 나도 나지만, 밖에서의 나와 온전히 같다고 볼 수 없다. 내가 일을 하는 건지, 통상적으로 일 때문에 그냥 시간을 죽이는 건지-
내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자유 시간에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