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찾아왔다. 한동안은 이 녀석의 존재감을 느낄 겨를이 없어 그동안 잊고만 살았었는데, 그래서일까. 어느샌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기운을 직격탄으로 맞고야 말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인생노잼시기'로 뭘 하든 재미가 없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이다. 이건 번아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번아웃은 뭔가에 열두한 뒤 생기는 증상인데, 난 무언가에 미친 듯이 집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냥 뭘 하든 재미없는 시기가 맞는 듯하다.
이런 시기에 난 항상 당황한다. 그저 이런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대에 붙어있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찝찝하지만, 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충전해보겠어? 하는 안일한 마음이 날 안주하게 만든다. 여하튼 중요한 건 그래도 이 시기가 맘에만 들지는 않는다는 거다. 다시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에. 놀랍게도, 이 녀석은 나름의 주기가 있다. 몇 번 반복되는 패턴을 겪고 나니, 애증의 노잼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책 읽기
가장 접근성이 낮은 방법이다. 위에서 나는 침대에 한 몸이라고 썼다. 그래, 책 읽기는 침대에서도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침대에서 읽는 종이책은 언제나 내 맘을 편하게 만든다. 읽다가 졸리면 언제든 꿈을 꾸러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은 휴대폰, 탭 등으로 읽을 수 있지만 집중력면에서 덜 추천한다. 언제든 독서 어플을 끄고 다른 인터넷서핑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 짬 내서 책 읽기를 즐겨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막상 읽고 싶을 때는 정작 책 읽을 시간이 왜 이리도 없는지!(물론 변명인 거 나도 안다) 그렇기에 주말이나 휴무에 읽는, 내가 읽고 싶었던 책 읽기는 꽤나 소중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본인에게 어려운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가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적합했다. 자기 계발, 비문학은 어렵지는 않지만 어쩐지 내게 채찍질하는 것 같아 책을 덮고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다 읽으면 완독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내가 모르는 세계의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2. 카페 가서 멍 때리기
카페 가는 건 생각보다 많은 걸 투자한다. 먼저, 씻어야 한다. 둘째, 카페를 가야 한다. (가까워도 어쨌거나 침대 가는 것보다 더 많은 걸음을 걷게 된다!)셋째,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료를 주문한다. 넷째, 카페에서 멍 때린다.
평상시 멍 좀 때려본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멍 때리는 건 쉽지 않다. 음료를 받고 한 5분 정도만 가만히 쉴 수 있으면 양반이다. 나 같은 경우는 그새를 못 참고 또 휴대폰을 들어 영상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침대에서 마냥 누워 휴대폰을 하는 거랑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면, 나도 저렇게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때가 있었지-라고 하며 회상하기도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며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하고, 나도 집에서 읽겠다고 놔둔 책이 그제야 생각이 난다. 친구들과 열심히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약속 한 번 잡아 보고 싶은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뭐든, 카페는 옳다! 평일 일을 할 때는 그저 생존을 하기 위해 마시는 점심식사 이후 커피 한 잔이었다면, 주말 혹은 휴무에 가는 카페는 또 다른 휴식의 쉼터가 될 수 있다. 뭐든 마음이 편해야 하는 법이다.
3.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에 무뎌진 걸 수도 있다.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지만,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 하다. 특히 내가 시도하는 방법은 낯선 환경에 날 일부러 노출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평상시 배우고 싶었던 원데이클래스 신청하기라든가, 독서모임이나 런닝모임을 나간다든가, 취미 어플을 나가는 것이다.
원데이클래스의 경우, 사람과 대화할 일은 극도로 적다. 단체로 같이 수강을 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대화가 목적이 아닌, 배움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뭐든 상관없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독서모임, 취미 어플, 런닝모임 등은 사람들과 대화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평상시 나를 소개하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유독 이 때는 말도 적어지는 것 같다.(뭐든 에너지가 필요한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하지만 듣기만 해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듣고, 나도 그런 대화의 주제에 맞게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탑승하게 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의 좋은 점은,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하는 대화 주제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추억, 그간의 근황, 연애, 주식 얘기 등 나쁘지는 않지만, 언제나 얘기하다 보면 알맹이 없는 대화만 가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때로는 색다른 사람과, 색다른 곳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또 모르지! 나의 몰랐던 취향을 알게 될 수도!
4. 내가 약속은 잡지 않되 약속 한 번쯤은 나가기
이것도 케이스바이케이스인 방법인데, 한 번쯤 시도해 볼만도 하다. 노잼시기에는 유독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이유는 뻔하다. 만사가 다 귀찮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고, 시시콜콜한 얘기나 할 바에는 방콕 하는 게 훨씬 이로울 것이라 머리를 굴린다. 막상 또 만나면 재밌게 놀테지만, 집 가는 길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전함은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전부 해결될 리가 없다.
하지만 몇 번 이 노잼시기 녀석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약속까지 만들 에너지는 없지만, 있는 약속까지 구태여 거절할 필요는 없다. 모든 약속에 전부 "콜!"을 외치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약속 한 번쯤은 나가는 것도 이 시기를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자주 보는 친구들은 내겐 큰 영향은 주지 않았다. 인스타 등 SNS에서만 알았던 친구들의 근황을 좀 더 디테일하게 알 수 있는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만남이 내게는 좀 더 색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 이 방법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히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평상시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동시에 집에서 에너지 충전을 해야 하는 사람(E와 I가 반반 비율로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노잼시기+번아웃이 심하게 온 상태에선 침대에 누워 에너지 충전하는 걸 추천하고, 이 시기의 끝자락에 있는 분들에게는 추천한다.
그밖에도 산책하기, 좋아하는 노래 플레이리스트 듣기, 미친 듯이 운동하기, 글쓰기, 평상시 가보고 싶었던 맛집 도전하기,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 클립 정주 행하기 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뭐든, 노잼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글에 나와있는 방법을 정독한 당신에게 나도 그렇다는 공감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 아쉽게도 여전히 나는 방전 상태이고, 의욕도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며 내가 느낀 가장 중요한 본질은 다음과 같다.
이 시기에 조급함을 느끼지 않기
조급하게 뭘 하려고 하면 돼도 안 된다. 명심하자, 나는 지금 잠깐 노잼시기라는 역에 정착해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를 토닥거리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진정으로 살펴주지 않는다. 마냥 뭘 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솔직해져 보는 거다. 나는 나답게 살 시간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