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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석 Sep 10. 2022

커피를 매일 마셔서 돈을 못 모으는 건가요?

아침마다 커피수혈을 하는 K직딩의 고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직장에 다니는데 돈이 모이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거지? 입사 초에는 월급 외에도 각종 수당이 들어와 돈이 빈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1년이 지나니 뭔가 이상했다. 그렇다고 크게 씀씀이가 커진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도 명품 가방, 시계, 지갑 하나 없고, 큰 여행비가 따로 나간 적도 없다.


그래서 카드 내역을 조회하기 위해 S사 어플을 들어간다. 로그인- 카드내역 조회- 월내역 보기


1일 -3,500원 2일 -4,000원 3일 없음 4일 -2,000원... 커피값만 전부 뽑아 계속 더하기 시작했다. 중반부로 갈수록 내가 어디서 이렇게 커피를 자주 마시는 인간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마지막 말일에는 다행히 과장님이 커피를 사주신 건지, 아니면 탕비실의 원두커피로 때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역이 없었다. 다 더하고 나니 9만 원이다.

그렇다.  좀좀따리 쓴 것들이 월에 약 10만 원을 상회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카페라테 효과'가 떠오른다.


카페라테 효과
약 4천 원 정도의 커피값을 매일 아껴서 저축을 한다면, 한 달에 약 12만 원 정도를 아낄 수 있고, 1년 치는 약 144만 원이다. 푼돈이라도 장기적으로 꾸준히 투자하면 목돈이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는 커피광이다. 커피를 좋아해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 볼까 생각했지만, 귀차니즘이 내 발목을 잡았다(아직까지 프랜차이즈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한 몫하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친구들이 커피를 마시기보다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밤을 새우곤 했었다. 뭔가 커피는 어른의 영역이라 느껴졌다. 왜 저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거야? 무슨 맛으로 마시는 거야? 처음 소주를 접하고 나서 저 쓰디쓴 알코올은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이해를 못 했을 때처럼, 아메리카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건 무슨 맛으로 먹는 걸까?


확실히 대학교에 입학하고서 커피를 마시는 빈도가 확연히 늘었다. 아침 강의가 시작하기 전, 피곤하니까 잠에서 깨려고 한 잔. 점심 먹고 나른하니까 습관적으로 한 잔. 친구들이랑 간단히 대화라도 하려면 제일 만만한 곳이 카페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대학가 상권에는 개인 카페만큼이나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이 입점해있었다. A사는 양이 적지만, 이 시간에는 사람이 많아- B사는 원두가 좀 신건지 평상시 내가 커피를 마시는 속도보다 뭔가 자꾸 손이 안 가네. 등등, 나름 나의 입맛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기곤 했다.




그리고 이제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침에도 커피를 찾고, 점심에도 커피를 마시고, 오후 당이 떨어질 때는 단 커피를 찾는 K직딩이 되어버렸다. 출근길 역에서 내리면, 오늘은 카페 가서 커피를 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어느샌가 어플을 켜 주문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피곤하니까 마셔도 돼. 화요일에는 왜 아직 화요일밖에 안 됐는지, 화가 나서 한 잔. 수요일은 이제 중반까지는 왔다는 생각에 한 잔. 목요일은 이제 지쳐서 주말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위로의 커피 한 잔. 금요일은 안 마셔도 되지만, 중식이 특히 맛있어서 이 흐름을 이어가고 싶어 마시자.


커피 한 잔 주문하는 데 이렇게 많은 핑계와 이유가 필요한 가 싶을 수도 있다. 나도 안다. 그냥 이럴 거면 차라리 죄책감을 갖지 말고 마시면 될 것을. 하지만 한 잔의 커피 값이 한 달에 얼마나 많은 소비 금액을 차지하는지 알아버려서 문제다. 차라리 몰랐으면 더 편하게 마실 수도 있을 것을.


그래서 커피 출혈을 방어하고자 탕비실 커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아이스 원두커피를, 겨울에는 따뜻한 믹스 커피를 즐겨 마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타마시는 단순한 커피 맛과 카페에서 직접 내린 다양한 에스프레소 커피와 혹은 달달한 에이드와는 차원이 다른 법.


카페라테 효과에서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높은지! 를 외치며 그 정당성을 외치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막 돈의 지출을 통제하라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혼자 고민한다. 내게 있어 커피는 불필요한 소비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하지만 내가 내린 답은 NO이다. 내가 커피를 사서 마시는 순간, 출근길을 회상해본다면 답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오늘의 기분을 결정짓는 커피를 고를 때의 설렘이 있다. 피곤한 날에는 아메리카노로 커피 수혈을, 단 게 당기는 날에는 카페 모카를, 적당한 에스프레소가 필요한 날에는 아샷추를. 아메리카노 맛을 알아버린 직장인이 되었지만, 마냥 아메리카노만 마시지는 않는다. 다양한 선택지에서 고르는 재미가 있는 커피가 좋다. 두 번째로, 그 설렘을 갖고 출근하기 때문이다. 출근하고 바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볼 수 있지만, 커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르는 게 내가 약간의 위안이 된다. 그래, 이게 진정한 커피 수혈이지.


그래도 지출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상, 자각하면서 마시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답은 간단하다. 커피를 줄이거나, 다른 소비를 줄이거나 둘 중 하나지 뭐. 그래도 글을 쓰며 내게 떠오른 생각은 이거 하나.

쯤 되면 출근을 해서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시려고 출근을 하려는 게 아닐까.

아, 그리고 이 글도 카페에서 쓰고 있는 건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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