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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석 Aug 10. 2024

아아 자해를 하고 싶다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가 땡길까? 

출처 : pixabay

가명을 쓰고 나밖에 모르는 플랫폼에서조차도, 혹시라도 누군가 나를 알까 봐 싶어 솔직한 얘기를 쓰지 못한다. 내가 나의 감정을 오롯이 쓸 수 있는 공간은 비공개로 발행한 나의 블로그글과, 다이어리밖에 없는 듯하다.


나에게는 보기 싫은 흉터가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도 악착같이 가리고 다니는 게 바로 팔의 자해흉터다. 10대 시절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한 번 눈 딱 감고 그어봤는데,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쉬웠다. 첫 줄을 내기가 힘들었을 뿐, 붉은 혈액이 보이는 순간 눈이 돌아버려 몇 줄 긋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깊게 긋지도 않았는데도 차곡차곡 쌓여가 어느새 지워지지도 않는 수준이 되었다. 참.. 이건 훈장도 아니고 나의 각인이 되어버렸다. 내가 한 일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과거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있으니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머리가 커서 그렇다.) 첫째, 여기서 더 그어버리면 이젠 더 보기도 싫고 너덜거릴 것이다. 둘째, 할 때는 잠깐이지만 가리는 건 평생이다. 겨울 긴소매 옷을 입을 때는 상관 없지만,  짧은 옷을 입을 때는 너무나 보기 싫다. 시계라도 차지 않으면 혹여나 누가 볼까 봐 가리기 급급하다. 


그럼에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가 당긴다.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도 많지만, 어쩌면 일시적으로 가장 빠른 방법이 자해인 것 같다. 운동을 하라고? 밖을 나가야 되잖아. 안에서도 할 수 있다고? 그냥 움직이는 게 싫은 걸. 그리고 덥잖아. 사람을 만나라고? 그냥 무기력한걸. 하지만 가위를 드는 건 너무나도 쉽다. 그냥 손에 쥐는 걸 잡아서 차가운 쇠가 내 살에 닿는다. 그렇게 나는 울면서, 요동치는 마음처럼 뜨거운 액체와 조우한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실제로 행동에 옮길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위에도 적었지만, 순간의 선택으로 나를 잡아먹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누가 이렇게 말했어도 당신이 뭘 알아? 이러면서 시작했으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내가 자해를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정말 소수지만, 그 사실을 공유하고도 정말 후회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거라는 인식도 무서웠고, 괜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자해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비밀이다.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내 곁엔 누가 남아있을까 싶어서.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냥 여기까지인 삶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세계의 원석이는 하하호호 잘 살기를 바라며.. 모두 다 망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환기하기 위해 샤워나 하러 가야겠다. 누가 그러더라. 우울은 수용성이라서 샤워하면 씻겨 내려간다고. 사실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샤워하면서 펑펑 울고나면 머리가 좀 비워지더라. 스트레스로 미칠 것 같다면, 샤워 한 번은 가성비 좋은 치료법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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