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 정산과 지출 컨트롤의 한 해..그리고 회계..?
2020년은 결연한 마음으로 밀린 카드대금을 갚고 신용카드를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며 시작했다. 더 이상 흥청망청 돈을 어디에 썼는지도 모른 채로 살고 싶지 않았고, 더 많은 돈을 모으고 싶었다. 얼렁뚱땅 입사 첫 해에 천만 원을 모았지만, 돈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서 2020년 경제 목표 키워드를 '지출 컨트롤'로 잡고 세부 계획을 세웠다. 결과는? 대성공! 작년보다 더 많은 돈을 모았을 뿐 아니라, 적절하게 소비도 했고, 학자금 대출잔액의 약 40%를 상환했다.
지출 컨트롤을 도와준 가장 유용한 도구는 뱅크 샐러드 앱과 나의 월말 정산 시트였다. 매일 뱅크 샐러드로 가계부를 쓰고, 매 달 가계부의 행간을 읽는 월말 정산 시트를 작업했다. 이에 관해서는 <디렉토리>8호 '루틴은 아름다워'에서 진행한 인터뷰 '매달 가계부의 행간을 읽는 일'에 자세히 실려있다. 인터뷰에 내가 뱅크 샐러드 앱을 사용하는 방법과 월말 정산을 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 잘 소개되어있다. 혹시 궁금하시다면 인터뷰 전문에서 확인하시길!
뱅크 샐러드, 토스, 위플 등 금융 앱이 소비 패턴 데이터를 알아서 기록해주거든요. 이걸 쓰면 더 간단한데 왜 일일이 따로 써서 관리해야 하는 걸까요?
-저도 ‘뱅크 샐러드’를 가장 유용하게 써요. 말 그대로 데이터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데 이마트에서 뭔가를 결제했을 때, 진짜 필요한 생필품을 산 경우가 있고 또 어떤 때에는 충동적으로 갖고 싶은 걸 살 수도 있잖아요. 생활비였는지 단순 용돈이었는지, 이런 건 앱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해요. 그냥 ‘이마트’가 찍혔으니 생활비겠구나, 하고 정리하더라고요. 그래서 라벨링을 다시 정확하게 나누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 카테고라이징이 왜 중요하냐면 이걸 읽고 해석해야 낭비와 새어 나가는 돈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월말 정산을 하는 과정이 궁금해졌어요.
-일단 뱅크 샐러드에 모든 계좌, 신용카드, 현금 영수증 등이 다 연동돼 있다는 전제 아래 말씀드릴게요. 첫 번째, 매일 밤 뱅크 샐러드의 기록을 보고 라벨링을 다시 해요. 알맞은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정리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그 주 주말에 일주일 치의 가계부를 작성해요. 이건 그냥 메모장에 쓰는 정도로 간단하게 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4주간 모은 기록을 보고 월말 정산하는 거예요. 이건 엑셀로 정리하는데 가장 크게 수입, 고정 지출, 변동 지출, 금융 상품, 대출, 월말 로드맵, 다음 달 목표로 나누어요.
디렉토리 매거진 인터뷰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이 인터뷰는 빌라 선샤인에서 진행한 '월급날엔 월말 정산' 소셜클럽 활동을 본 이자연 에디터님께서 제안을 주셔서 하게 된 인터뷰였다. 돈 관리 방법뿐 아니라, 돈을 관리하며 내가 느끼는 감각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고 이를 정리된 언어의 결과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경험이었다.
지출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분명 '돈을 아끼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않고, 쓸데 있는 곳에만 돈을 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주 소비 내역을 나누던 월급날엔 월말 정산 소셜클럽 멤버들이 나에게 'theora님은 딱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시는 것 같아요'라고 해주실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건, 내가 지출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감각을 인정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년 동안 쓴 월말 정산 시트를 결산하면서 이런저런 데이터를 뽑아봤는데, 그중에서 '변동 지출 그래프'와 '올해 번 돈 어떻게 썼나 순위'를 보다 보니, '쓸데 있는 곳에만 돈을 쓴다'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꽤 발견했다.
변동 지출 항목 그래프는, 1년 간의 지출 항목 중에서 변동 지출만 모아서 카테고리 별로 합산한 후, 총 변동 지출 금액 대비 비율을 따져본 그래프였다. 1위는 문화/자기 계발이었다. 자전거를 새로 사고, 요가를 하는 등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소비 덕에 올해를 잘 견뎌낼 수 있었구나 싶었다. 2위는 미용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괜히 올리브영에 가서 필요도 없는 화장품을 이것저것 사는 몹쓸 소비 습관이 있었다. 딱히 피부에 잘 맞는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어서, 맞지 않는 걸 바르고 얼굴에 난 뾰루지를 위해 또 올리브영에서 패치를 사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올해 4월, 동네에서 나에게 딱 맞는 개인 피부관리숍을 만나게 되었고!(올해의 행운) 전보다 미용 카테고리의 비용은 늘어났지만 쓸데없이 올리브영에서 물건을 사는 일이 없어졌고, 스킨-로션-선크림만으로도 충분한 피부를 갖게 되었다. 3위는 생활비, 4위는 식비였고, 5위는 술(^^)이 차지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중간중간 쏘다니며 술을 잘도 마시고 다녔다. 의료, 카페, 엔시티+다이노스에도 간간히 소비를 했다.
올해 번 돈 어떻게 썼나 순위 그래프는 조금 더 흥미로웠다. 고정지출(주거, 통신, 구독 서비스 등)과 저축, 학자금 대출 상환까지 모두 포함한 '비용'을 카테고리 별로 합산한 후, 올해 총수입 대비 비율을 계산하여 줄을 세워봤다. 저축이 가장 높았고, 그 뒤로는 학자금 대출 상환이 2위를 차지했다. 올 해부터 취업 후 학자금 대출 의무상환이 개시되었는데, 고지된 금액에 약 2배 정도를 일시 납부했다. 월급에서 원천징수당하기 싫기도 했고, 미리 대출 상환을 위해 모아둔 돈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년에도 미리 의무 상환액을 파악해서 의무 상환액만큼의 대출금을 갚을 계획이다. 4위는 주거비인 월세와 관리비가 차지했다. 내년에는 보증금을 조금 더 올리고, 월세를 낮추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집주인님을 마주칠 때마다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그 이하로 몇 가지 흥미로운 순위는 교통비와 통신비였다. 올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코로나 때문에 어딜 많이 다니질 못해서 교통비가 줄었고, 5월에 u+알뜰폰 요금제로 바꾸면서 통신비가 확 낮아진 효과가 있었다. 내년 고정 비용 절약 계획을 몇 가지 세워뒀는데 꼭 지켜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외에도 교통비 추이 그래프, 총수입과 급여를 기준으로 한 수입 그래프, 총 변동지출과 실 생활비를 기준으로 한 변동 지출 그래프 등을 만들었다. 정신없이 데이터 시각화를 하다 보니 재미있긴 한데, 더 체계적인 방법이 없는지 생각했다. 이게 맞는 방법인가 싶기도 했고. 그 순간 갑자기 '회계' 두 글자가 떠올랐다.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 할 때, '계정 과목'이니, '회계 연도'니 하는 것들을 들어본 기억은 희미하게 있는데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었다. 회계를 알면, 내 돈을 관리하는 방식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배울 수 있는 곳은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오픈튜토리얼스의 회계 1 강의를 정주행하고 복식부기 가계부인 '후잉'까지 다다르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월말정산이나 뱅크샐러드로 가계부를 쓰면서 숫자가 미세하게 맞지 않거나 한눈에 자산 확인이 안될 때 내적 화가 치밀었다. 반면, 숫자가 딱 떨어질 때의 희열도 엄청났다. 그동안 나의 성격 때문인 줄 알았는데, (물론 그것도 맞지만) 단식 부기 가계부의 한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복식 부기 가계부 서비스 후잉의 도움말 중 1. 왜 후잉인가 - 우아한 복식부기 를 정독하면서 그동안 월말정산 시트를 작업하며 했던 생각과 후잉 서비스가 추구하는 방향이 일치한다는 걸 깨닫고 오랜만에 서비스를 보며 두근두근 설레이는 기분이 들었다.
단식부기는 별도로 배울 필요도 없이 그냥 꾸준히 기록하면 되기에 가장 보편적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단식부기로는 현대사회처럼 나의 금융자산이 유/무형의 다양한 형태로 분산되어 있는 것을 관리할 수가 없습니다.
복식부기에서의 중요한 포인트는, 산재되어 있는 자산/부채를 관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모든 돈의 흐름을 빈틈없이 기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계부는 쓰고 있는 현재도 중요하지만, 보통의 경우 과거부터 현재의 기록을 중심으로 미래도 예측합니다. 또 과거의 기록은 기록으로써 그 자체가 유용한 정보가 됩니다.
회계1 강의 정주행 -> 후잉 도움말 정주행을 거쳐 후잉에 계정과 항목을 등록하고 기초 잔액을 셋팅하는 일까지 단숨에 해내고 나니, 이제 좀 정리가 되었다 싶었다. 회계1에서 이고잉님이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 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느낌도 들었고. 교양 지식의 중요성을 또 한번 느끼게 되는..
아무튼 이렇게 한 해 목표 점검을 하고, 결산을 마쳤더니, 자연스럽게 2021년 경제 목표까지 이어졌다.
2021년 목표 키워드는, '후잉 정착하기'와 '부동산 투자 발 들이기' 다.
그동안 뱅크 샐러드와 월말정산 시트로 해오던 지출 컨트롤 프로세스를 후잉으로 옮겨와서 또 나만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정착하고 싶고, 어제 등록한 부동산 투자 기초 강의를 시작으로 부동산 투자에 발을 들이고 싶다. 좀 더 상세하게 계획을 세워봐야겠지만 어쨌든. 크게는 이렇게 두 가지! 올 한해 잘 해낸 것처럼, 내년도 잘 해내볼 것. 2020 연말결산 <경제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