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3N 서류 합격 후, 취준은 결국 1승이니까.
지난 이야기
졸업 작품 동지들과 하반기 취업을 하겠다고 야심 차게 다짐했지만, 어쩐지 쓰고 싶은 회사가 없어 취업 준비를 하는 척만 하던 중 '게임회사의 서비스 기획' 직무를 발견하게 되고... 우당탕탕 자소서와 테스트와 면접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넥슨 공채를 보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졸업 작품 동지 1과 스터디에 가던 중이었다.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나 넥슨 서비스 기획자 써볼까 봐.' 그 친구는 '엥? 갑자기?'라고 말하곤, '어 근데 좀 언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단 직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해온 프로젝트 시프리, 아름다운 가게 빅게임, Save Our Space 웹페이지 등등이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무 아래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에버노트에 이런 말을 남겨뒀다.
"9월 셋째 주. 넥슨의 채용공고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서비스 기획'이라는 걸 깨달았다. 개발도 하기 싫었던, 그냥 기획도 하기 싫었던 나는 내가 잘 맞는 직무가 '서비스 기획'인 건 아닐까 생각했고, 열심히 넥슨을 준비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내가 해온 진심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잘하는 건 글을 쌓아두는 능력, 정보 수집 능력이고, 그 정보를 잘 정리하고 파악해두는 것도 아주 잘한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잘하고, 특별히 사람들에게 질문을 잘 던진다. "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직무를 공부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모든 전형 과정을 준비하는 시간은 곧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재능과 능력을 하나씩 풀어놓는 일이었다. 도서관에서 대충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서류를 쓰고 엄마가 입원한 병실 조그만 베드에서 면접 준비를 하는 일이 모두 즐거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다시금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건 분명하다.
넥슨의 서비스 기획자 공고를 보고 나니, 넷마블, 엔씨소프트가 차례로 떴다. 당시에 게임 업계와 함께 이커머스에 관심이 많던 터라 11번가, SSG.COM, 데상트까지 총 6군데에 최종 서류를 냈다. 결과는 게임 업계 세 곳은 모두 서류를 합격했고 이커머스 세 곳은 모두 서류에서 불합격했다. 직무의 차이가 있긴 했겠지만, 게임 업계라는 산업과 내가 나름 fit이 맞았던 건 아닌가 싶다.
에버노트에 만들었던 취업 준비 보드를 한 칸씩 채워나가는 재미와 고통이 혼재했다.
맨 처음으로 서류를 쓴 회사가 넥슨이었는데, 서류 난이도가 정말 높았다. 2천 자씩 6문항을 써야 했고, 포트폴리오까지 제출해야 해서 2주를 꼬박 투자하고 마지막 제출일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핫식스를 3병씩 털어 넣으면서 밤을 새웠다. 넷마블은 1천 자씩 6문항이었는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하는 문항들도 있어서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엔씨소프트는 1천 자씩 3문항으로 가장 적었다. 엔씨소프트가 가장 마지막에 서류를 냈던 회사인 데다가, 자수와 문항도 제일 적어서 여러 번 소리 내서 읽어보며 문장을 고쳤다. 깔끔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인들에게 많이 보여주면서 문장을 가다듬기도 했다. 과장 좀 보태서 엔씨 서류는 문항당 10번은 넘게 읽어보고 제출했다.
제일 먼저 서류를 냈던, 그래서 어쩌면 제일 엉망이었을 넥슨에 1차 서류 합격을 했다. 넥슨은 다른 회사와는 달리 테스트 전형이 없어서 곧바로 면접이었다. 면접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정규직으로 면접을 보는 건 처음이다 보니 떨리고 긴장되었다. 실패했던 면접과 성공했던 면접의 경험을 차례로 떠올리면서, 하나씩 준비했다. 몇 주전에 취업 설명회를 들으러 왔던 넥슨코리아 본사 건물에 면접을 보기 위해 들어가면서 느낀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획안을 올렸는데 개발팀에서 구현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었는데, 당시 나는 만약 정말 기술적으로 구현이 안 돼서 기획단의 요청이 불가능한 거라면 인정하고 기획안을 수정해나갈 것. 하지만 진짜 안 되는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그런 거라면, 대화를 해야 한다. 밥을 먹든 술을 먹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네. 면접 천재 아니신지. 참 어려운 것을 쉽게도 대답했다 싶다. (이건 지금도 어려운 일..)
또 내가 면접에서 받았던 단골 질문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 왜 개발이 아니라 기획 직무를 지원하게 되었나요?'에는 '맨 처음 컴공 진학한 것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건 만드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하고 구체화해나가는 과정이더라. 그래서 철학을 공부했고, 기획을 지원했다.'라고 답변하기도.
이렇게 답변을 잘한 결과.. 1차 면접에서 합격했고, 2,3차 면접 일정을 받았다.
첫 서류 합격에 이어, 첫 면접 합격까지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니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정신을 놓지 않고, 다른 회사들도 계속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주에 전형만 두 개를 치르기도 했다. 수요일에는 넥슨의 2,3차 면접(장장 3시간에 걸친..)을 보고, 토요일에는 엔씨소프트 인적성+직무평가를 봤다. 이때의 기록은 3030 보드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수요일에는 넥슨 2,3차 면접을 봤고 토요일인 오늘은 엔씨 인적성+직무평가를 봤다. 숨이 차다. 그 말이 딱 맞는 표현이다. 숨이 차다.. 9월 둘째 주 즈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조금도 못 쉬고 계속해서 달려왔다. 아직도 끝나진 않았고. "
"넥슨에서 면접을 보면서 내가 준비해 간 답이나, 준비해 간 공부들은 물론 나의 뼈대였지만, 그보다 더, 내가 갖고 있는 나의 가치관과 일에 대한 생각. 사람들과 일을 할 때 나의 대처 방법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만약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면, 정말 그건 그 팀과 내가 맞지 않는 것일 테니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덤덤히 말은 했지만, 사실 넥민뽀가 절실하다.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을 이뤄내는 희열을 느끼고 싶고. 돈을 좀 벌고 싶고. 기왕에 일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회사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루는 일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조금은 덜 불행하지 않을까 싶어서. "
이렇게 절실했지만, 결국 이뤄지지는 않았다. 졸업작품 동지들이 모두 S 전자에 최종 합격한 날, 나는 넥슨에서 최종 탈락했다. 최종 탈락을 했을 때만 해도, 세상 모든 게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넷마블의 테스트 전형 결과와 엔씨의 1차 면접 전형 결과가 아직 남아있긴 했지만, 둘 다 별 희망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고 나도 금새 털고 일어났다. 당시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하고 있었고, 나는 나만의 우울에서 나를 건져낼 수 있는 단단한 힘이 있었으니까.
졸업작품 동지 친구들에게 축하한다고 연락을 해놓고, 조금 울다가 갑자기 번쩍 일어났다. 아이패드에 마미손의 소년 점프를 틀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내가 여기서 쓰러질 것 같냐 새끼들아! 넘어져도 쓰리고! 난 죽지 않아! 미친 듯이 춤을 추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내 인생 이래서 재밌는 거지. 나는 넷마블이든 엔씨소프트든 합격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대충 머리를 묶고 옷을 챙겨 입고 면접 준비를 위한 자료들을 대충 챙겨서 스타벅스로 내려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엔씨소프트에서 최종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