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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eok Feb 02. 2022

나도 바라는,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고

알게 된 곳
: 트위터에서 우연히 책 제목을 보고, 요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 관심 도서로 찍어두었다.

구한 방법
 : 서현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두었다가 빌려왔다.

읽은 기간
 : 2022년 1월 29일 ~ 2022년 2월 2일




7년 전에는 장강명 작가의 책을 좋아했다. <표백>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고, <한국이 싫어서>, <열광 금지 에바로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5년 만의 신혼여행>을 읽었다. 장강명 작가가 한국 소설을 추천하는 서평을 모아 무료로 배포했던 <한국 소설이 좋아서>에서 추천한 책을 읽는 책모임 '장강명이 시켰어요'도 참여했다. 당시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물으면 장강명 작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의 책을 마냥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가장 좋아했던 <표백>은 이제 다시 읽을 수 없게 됐다. 그가 여성 청년과 남성 청년을 그리는 방식을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불편한 마음이 가장 두드러졌던 소설이 <댓글부대> 였는데, 대학로에서 열렸던 작가와의 대화에서 왜 여성을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그렸냐고 물었을 때, 불편하셨냐고 물으며 관찰의 결과였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대답이 이해는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이 작가의 책을 읽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장강명의 최근 작품인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또 재밌었다. 게다가 유익하기까지 했다. 책 앞장 친필 싸인에 적힌 문구부터 마지막 부록의 비유 가득한 글까지 대부분의 글이 좋았다.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좋았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즈음에는, 단행본 작업에 대한 용기가 샘솟기도 했고, 어서 지금 작업 중인 첫 책을 마무리하고 다음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끔은 나 조차도 나의 모든 면을 좋아하지 못하는데, 텍스트로만 만나는 작가의 모든 면을 좋아한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게다가 단행본은 한번 세상에 나온 후로는 수정도 어렵고, 그 책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가 닿았을 때 다른 부연 설명조차 건넬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의 관점에 대해 가졌던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 마음 때문에 작가가 하는 다른 이야기를 거부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원하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는 내가 동일하게 상상했던 사회라는 걸 발견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 말이다.

얼마 전 문체부에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만 19세 이상 성인의 비율이 52.5%라고 했다. 책이 아니더라도 빠르고 쉽게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났다. 그만큼 사람의 집중 시간은 줄어들었고, 들인 노력이 줄어든 만큼, 생각의 깊이와 길이도 짧아졌다. 말도 안 되는 이분법적 선동에 들썩이고, 누군가를 쉽게 매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새로운 정보로 가득 찬다.


책을 읽고 쓰는 것만이 시끄러운 세상을 해결하는 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작은 될 수 있다. 상식을 기반으로 대화하고,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는 시작은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건지 의심가지만. 적어도 나는 이 시작을 꿋꿋이 지켜보고 싶어졌다.



* 다섯 개의 문장

그렇다면 책 중심 사회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헛소리일까? 이루기 어려우니 그쪽으로 방향을 잡을 이유조차 없는 건가? 우리의 미래는 자전거와 책을 버리고 무인 자동차 안에서 최신 유튜브 영상을 감상하는 것인가? 그렇게 고정된 것인가? (17쪽)
그런데 왜 유독 책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그거 써서 뭐 하려고?" 하고 스스로 묻고 "내가 그런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며 자기검열에 빠지는 걸까. 그냥 내가 좋아서 쓴다는 이유로 부족한 걸까. 책 쓰기의 목적이 나 자신이어서는 안되는 걸까. (48쪽)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당신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작품을 몇 편 발표하기 전에는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욕망을 마주하고 풀어내면 분명히 통쾌할 거다. 가끔은 고생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고생에는 의미가 있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자. 의미를, 실존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 앞에 있다. (60쪽)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뭘까. 나는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대상을 유심히 헤아리게 된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좋은 에세이는 그렇게 삶에 대한 남다른 관찰과 애정이 담긴다. (124쪽)
독서 공동체라는 게 별게 아니다. 책을 성실히 읽고, 길지 않은 감상을 인터넷 서점이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책 추천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데 일조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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