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이미 익숙할 수는 없으니까
알게 된 곳
: 작년 내내 주변에서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궁금했다.
구한 방법
: 알라딘 중고서점 서현점에 가서 최상 상태의 책으로 샀다.
읽은 기간
: 2022년 1월 9일~2022년 1월 13일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김소영 님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가, 눈물이 났다가, 웃음이 났다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어린이의 반대말은 어른이라고 여겨지고, 어린이가 크면 어른이 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기준을 잘 모르겠다. 어떤 지점에서는 '무엇인가에 미숙한 상태'를 어린이라고 이름 짓기도 하니까. 그런데 어린이는 정말 미숙한 상태이기만 할까?
모버실은 어린이가 나보다 훨씬 잘 안다. 마인크래프트도, 틱톡도,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잘한다. 내가 모르는 범위와 세계에 있을 뿐, 어린이가 나보다 훨씬 깊이 알고 있는 것은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어린이 었던 때에는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신세계 백화점 문화센터로 하모니카를 배우러 다녔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잘 탔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몇 바퀴씩 집 앞 공원을 돌았다. 친구 집에서, 놀이터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훨씬 더 자주 놀았다. 성당에서 기도를 더 열심히 했다. 종이 접기로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만들 수도 있었다.
어른이 되고나서 할 수 있게 된 것도 있다.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자전거를 타고 두 시간 넘게 달릴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린이 었던 나와 어른이 된 나는 그저 할 수 있는 것이 다른 것뿐이다. 그때는 잘했던 것을 지금은 못하기도 하고,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을 그때는 못했던 것뿐이다.
아직 해보지 않은 것에 미숙한 것은 그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익숙해지고 성숙해지는 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사회가 될까 두렵다. 미숙하거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회. 그래서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 실수나 잘못이 조금이라도 나의 것을 망가뜨리거나 흠집 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떼어내는 사회. 그런 상황을 당연하다고 보는 시선. 그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르는 것은 알려주고, 실수한 것은 바로잡아 주면서 살고 싶다. 가림막을 치고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혼을 내면서 주눅 들게 하거나, 잘못한 것을 전시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꼭 우리가 어린이 었던 때가 있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든 것에 이미 익숙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모든 것을 언제나 해왔던 것처럼 잘 해낼 수는 없으니까.
* 다섯 개의 문장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는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지금도 할 수는 있는데. 아까 현성이가 분명히 ‘연습했다’고 했는데.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18쪽)
자람이가 가고 보니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이 책엔’ 자람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도 마음을 담아 읽을 것이다. 그러니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책이다. 자람이 말이 완전히 맞다. (72쪽)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91쪽)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그때는 지금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 있을 텐데 그때 가서 문제가 발견되면 어떡해요? 좋은 점만 알고 대비를 못 했다가 ‘아, 이건 아니다’하고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때 가서는 저희가 해결해야 될 텐데, 왜 어린이한테는 의견을 안 물어봐요?” (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