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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eok Nov 26. 2023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서진영) 서평

내 삶의 테두리를 어떻게 두를 것인가?

알게 된 곳
:  안녕 시골 뉴스레터 에서 보고 관심이 생겼다.

구한 방법
 : 부산 여행에 갔다가, 수영구에 있는 '비 온 후 책방'에서 구입했다.

읽은 기간
 : 2023년 11월 5일 ~ 11월 26일




내 삶의 테두리를 어떻게 두를 것인가?


뉴스레터에서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고, 제목과 목차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크게 관심이 가진 않았다. 또 '로컬'에 대한 얘기인가 보네. 근데 지역이 춘천이구나. 이 정도의 감상이었다. 지역에 대해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정도의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지역 곳곳에 공연 보러 갈 일이 많이 생겼는데, 11월 초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 하늘연 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을 보러 부산에 갔다. 공연 보기 전 시간이 남기도 했고, 같이 간 친구에게 편지를 담은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 근처 책방에 갔다. 책방에 들어갔는데, 매대에 놓인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집어 프롤로그를 잠깐 읽어보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나는 책을 사기 전에 보통 프롤로그를 읽어보고, 책의 뒷부분의 아무 데나 펴서 1-2장 정도 읽어보고 흥미로운지를 살펴보는데 이 책은 둘 다 만족하는 책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책 제목에 담긴 '로컬'이라는 단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로컬은? 아마도 ‘지방’이라는 말에 담긴 제한적인 또는 기울어진 이미지를 털어내고, 긍정적이면서 세련된 기운을 담은 표현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하지만 그 말의 겉모습이 아무리 멋스러워도 사람들이 그 말의 속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입에 착 붙지도, 의미가 오롯이 전달되지도 않는다.(p.6)  내가 '로컬'이라는 단어에 갖는 찜찜한 마음을 명확한 언어로 짚고 있었다. 이런 책은 꼭 읽어봐야 해. 나에게 잘 맞는 책일 거란 감이 팍팍 왔다. 저자는 춘천문화재단과 출판사 온다 프레스의 제안을 받고 서울과 춘천을 오가며 춘천에서 '사는 것'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춘천은 춘천대로 ‘문화도시’와 ‘경쟁력 있는 로컬’을 만드는 데에 열심이고,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그 나름의 지역성을 좀 더 벼려보려는 듯했다. 아직은 모호한 개념을 향해 간다는 느낌, 종착역의 이름이 살짝 지워진 차표를 받아 든 느낌, 나는 그렇게 약간의 긴장을 품고 춘천을 오가기 시작했다. (p.9) 


책을 읽는 동안 춘천에 공연 보러 갈 일이 있었는데, 다음 일정 탓에 춘천에 짧게 머물러야 해서 책에 담긴 시각으로 찬찬히 춘천을 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책에서 가장 재미있던 부분이었던 춘천 사람들의 '기꺼이 수용하는 정서'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3장 <색깔을 만드는 일>에서는 춘천의 마임 축제에 대해 언급하며 춘천 사람들의 정서를 언급하는데, 춘천이 참 재미있어요. 뭐랄까요 좀 이상한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 좀 묘한 정서들까지도 잘 이해하고 좋게 봐준다고 할까요. (…) 시민들이 그걸 보면서 또 그래요. “여기 마임축제 하나 봐” (p.102)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라도 일단 좋게 바라보는 그 정서를 공연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춘천에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를 보러 갔는데, 사방지 역을 맡은 소리꾼 김수인의 팬으로서, 극 내용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그의 소리와 춤을 보고 싶었다. <내 이름은 사방지>는 세조 실록에 기록된 실존 인물인 간성(intersex)의 사방지의 삶을 다룬 창극이다. 그가 가진 생물학적 특징으로 인해 겪은 기구한 삶을 다루는데, 더쿠 렌즈를 장착하고 봐도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공연이 끝난 뒤 객석 반응이 좋았다. 물론 배우들과 음악의 힘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춘천의 '기꺼이 수용하는 정서'의 시선이 작용한 건 아니었을까?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22일이 걸렸다. 술술 읽히는 글이라, 3일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 22일 동안 나는 부산에 갔다가, 성남에 갔다가, 서천에 갔다가, 춘천에 갔다가, 대전에 갔다가, 다시 성남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책에서 저자가 춘천을 걸으며 독자들에게 묻는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 나는 어디에서 내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p.104) 

- 어쩌면 나는 내 삶의 속도와 리듬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p.193)

어디까지가 내 삶의 테두리일까?(p.223) 


작년 나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충청남도 서천의 집을 물려받았다. 작년 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그 집은 빈집이 되었고, 그 집이 자산이 아닌 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해서 그 집에 내려가서 무언가 활동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지금 그걸 내가 할 수 있나? 아니 그 집을 고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그게 가능한가? 나를 짓누르는 걱정과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많이 받았다. 


아직 나는 내가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명확히 잘 모르겠는데, 게다가 현재 내가 살고있는 삶이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었는데, 조급함에 매번 휘둘리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조급함, 어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다그침을 내려놓고, 저자가 천천히 춘천을 둘러봤듯,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나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나의 삶의 테두리를 어떻게 두를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답 없는 질문이 맴돌지만, 내년에는 나도 더 많은 지역을 길게 경험해 보고, 걸어보면서, 나의 세계를 더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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