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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ug 07. 2016

여행을 하는 이유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부르려는데, 정선 언니가 가영이 또 이 노래냐고 핀잔이다. 그냥 불렀다 .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언니, 노래가 이런데 어떻게 또 부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봄날도 마찬가지다. 봄날은 지나간다고 말할 때는 이미 봄날이 다 지나간 뒤다. 어제 피었다가 오늘 저녁에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지나가는 봄날은 자취 없고 가뭇없다. 우리가 서로 만난 것은 우리가 서로 만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은 지나간다. 만약 우리가 행복했었다면 뭘 몰랐기 때문.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바람이 분다 봄날은 간다 중에서

 

  순간인 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모든 게 무심히 가버린다. 내가 그곳에 없는 이제서야 그 땐 맡을 수 없었던 모든 바람들이 감은 두 눈 속에서 분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그 아름다움이 영원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 차라리 아름다운만큼 금세 저버리는 듯하다. 


 영학이와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어젯밤엔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먹었던 마늘 수프와 돌 뒤에서 싼 똥얘기를 하다 잠들었다. 우리 롯지에서 새벽마다 먹던 그 수프들 생각난다. 오빠 나는 그 구릉빵들. 아.. 맛있었는데. 스파게티도 맛있었어. 그지? 응. 하이캠프에서는 우리 둘 다 머리 아파서 식겁했지. 나는 마낭에서부터 어질어질했어. 아 맞어 너 그랬다. 오빠 나는 마낭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 마낭이 어디였지? 왜 있잖아, 개들이 짝짓기하는 거 구경하면서 올라갔던 데. 내가 연습해보겠다고 너랑 가방 바꿔 메고.  큰 호수도 있어서 우리 호수 구경하러 가기도 했잖아. 아.. 거기. 영화보는 곳도 있고, 맞지? 응. 맞아 너 거기서 머리아프다고 했어. 마낭 좋았어. 너 그것도 기억나? 우리 MBC가는 길에 서로 번갈아 가며 똥 싼 거? ㅋㅋ 너가 먼저 싸고 그 다음에 내가 싸고ㅋㅋ. 응ㅋㅋ 기억나. 또 가고 싶다. 다음에는 우리 어디로 갈까?


 사랑을 할 때 사랑을 모르는 것처럼 여행을 할 때는 여행에 대해 생각치 않는다. 그저 여행을 하는 순간에 있다. 그 순간들은 어쩜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지.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내가 여행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가버린 것에 대하여 슬퍼하지 않는다. '봄날이 가고 꽃잎이 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바람에 머물 수 없는 것'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다보면, 다시 올 봄날과 필 꽃잎들, 불 바람들을 놓치기 쉽다. 

 삶은 유한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충분히 많은 봄날을 겪을 수 있다. 삶은 유한해서 우리는 그 안에서 충분히 많은 순간을 살아볼 수 있다. 그리고 아마 지나가버린 봄날 같은 순간들이 자꾸만 많이 생겨나버리는 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축복이지 않을까 싶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이렇게 메모해놓으면 꼭 하나는 얻어 걸리더라.)  

1) 유럽 자전거 여행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자전거 혹은 기차로 제한한 여행. 지금은 내 비록 기어가 고장나 오르막길을 씨름씨름 올라야하는 자전거로 살아가지만, 조만간 유럽쯤이야 후딱 내달릴 수 있는 멋쟁이 자전거를 장만할 생각. )

2) 미국 렌트카 여행 ( 적어도 두 달은 잡아야지. 미국이 얼마나 큰데. 운전은 김영학이. 재즈를 느끼고 싶어. 뉴올리언스,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곳.)    

3) 오래 오래 걷는 여행 ( 어디가 좋을지는 모르겠다. 이건 혼자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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