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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pr 30. 2022

끝과 두려움

4/29일의 다짐과 일기

기말고사가 끝났고 UBC에서의 1년도 무사히 끝났다. (시험 성적과 상관없이) 홀가분하다. 평소라면 시끌벅적했을 AMS nest building이 명상을 해도 좋을 만큼 조용해진 게 어색한 가운데 한 해를 되돌아보며 일기를 남긴다. 내 1년이 어땠고, 나는 무얼 배웠고, 앞으로도 이 여정은 계속될 가치가 있는가.


영어가 가장 두려웠다. 문학 토론 수업에서는 한마디 말을 내뱉는 것에조차 팔다리가 떨려와 청심환이라도 먹고 수업을 들어야 하나 고민한 적 있었다. 하나 끝내면 다른 하나가 찾아오는 식의 시험들도 두려웠다. 전쟁에 나가는 전사처럼 전투적으로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6시 반까지 학교에 도착하지 못하는 날에는 이렇게 게을러질 수는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훈계했다. 50/10 pomodoro를 켜놓고 봤던 걸 또 보고, 그만 봐도 되겠다 생각들 즈음에 하얀 백지에 머릿속에 있는 것을 옮겨 적는 식으로 시험공부를 했다. 거의 매주 끼여있는 읽기와 과제들도 두려웠다. 다른 친구들은 1시간에 끝마치는 과제들을 나는 몇 날 동안 수정하고 다시 썼다. 혹시라도 빠뜨리는 게 있을까 봐 읽어야 할 텍스트들을 세 번씩 읽었다. 가끔씩 악몽을 꾸고 헛것을 봤다. 이른 새벽 문을 열고 나서는데 늑대 같은 개가 내 앞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GRSJ 수업 중에 누군가 총을 들고 교실을 찾아올까 봐 두려워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지 고민했다고 영학이에게 말했을 때,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며 걱정했다.  때때로 이것 뭐 별 거 아니라고 고개를 쳐드는 연기를 했지만, 아주 자주 내가 잘 해낼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모든 게 너무 새로운 동시에 나 자신이 너무 취약해지는 세상에 놓였을 때, 나는 실패할 게 두려워서 자신을 한계점까지 몰아붙이는 쪽을 선택했다. 확실하고 안전한 미래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탄탄한 현재에 사는 것도 아닐 때 나는 페이퍼들을 읽고 쓰는 일에 매달렸다. 이거라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예상한 것보다 성적이 잘 나왔다. 두려움은 단기적으로 꽤 쓸모 있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두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두려움이 나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한 만큼 그것은 얼마만큼 내 몸과 정신을 해치는 것에 틀림없다.  


어떤 노력을 해서 인지(명상을 했다ㅋㅋ), 아니면 거듭되는 과제와 시험을 몇 차례 되풀이 한 끝에 자연스러워진 건지,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 두렵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거나 2500자의 영어 에세이를 써내는 일은 아직도 힘겨운 일이지만, 나는 이제 내가 '잘할' 수는 없더라도 '' 수는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어가 주는 장벽은 분명 존재하지만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그렇게 엉망진창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잘해보려고 애썼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쉽게 잘해지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용납하기로 했다. 아카데믹 글쓰기 수업이 그랬는데, 아무리 애써도 계속해서 내 한계만 드러나는 상황이 마지막 에세이를 제출할 때까지 계속되길래 나는 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그냥 하는 쪽을 택했고 무사히 과제를 제출했다. 두려움 때문에 뾰족해지는 내 자아를 뭉툭하게 갈아주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필요했다. 1년 과정의 모든 시험이 끝난 뒤 한 숨 돌리는 이 시점에서 나는 모서리 없이 물렁해진 내 자아를 다독이면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매일 영어로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다가 브런치에 쓰는 한글이 어색해서 다시 두렵고 마는 취약한 자아를  또 확인하면서.     


너무 잘하고 싶어서 너무 두려웠던 것 같다. UBC에서 배우는 것들이 대게 너무 좋았다.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복지국가의 몰락, 힘과 권력이 만들어 놓는 질서와 시민 사회의 가능성, 난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난민 문제, 동화(fairy tale) 속에 녹아있는 가부장적 메시지와 그 진부함을 뒤엎는 안젤라 카터의 글쓰기, 세계화라는 환상 속에 숨어 있는 폭력과 부정의, 언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규범적인(prescriptive) 태도와 판단 없이 언어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인 서술적인(descriptive) 태도의 차이, 기후 위기를 인류 전체 종의 문제로 진단하는 인류세적 (Anthropocene) 태도와 자본주의에 기생해 부를 축적해온 특정 계급에 주목하는 자본세적 (Capitalocene) 태도의 차이, 등등. 좀 더 알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충분히 파고들지 못한 것 같아서 항상 아쉬웠다. 좀 더 깊숙이 생각하고 싶었는데 겉만 핥고 마는 내 생각의 게으름에 화가 날 때가 많았다.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읽어내지 못하면 어쩌나.     


다음 가을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4개월이 남았는데, 이 4개월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계절 학기를 등록했다. 학비가 부담스러워서 계절 학기를 들을까 말까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영학이가 나를 부추겼다. 계속 공부를 지속하는 흐름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나 뭐라나. 계절 학기인 만큼 들어야 하는 수업이 아닌 듣고 싶은 수업을 듣기로 했다. 소비주의와 국제적 불평등에 대한 사회학 강의 2개와 심리학 한 과목. 신난다.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읽어내는 일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하는 일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뒷 켠에서 당장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 같은 글자들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이다. 나는 이것에 두렵고 신나고 잘하고 싶고 잘하지 못하고 헛됨을 느끼고 경배를 들고 싶다.   


UBC에서의 두 학기가 신나다가 화가 나고 불안하다가 불안을 잠재우는 식으로 흘러갔다. 앞으로의 학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는 대신 하고 싶은 것을 괴롭게 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을 괴롭게 계속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계절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2주가 남았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미뤄뒀던 브런치를 쓰고 영학이와 약속한 하이킹을 다녀오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오랫동안 미뤄뒀던 집 대청소도 한 번 해야 하겠군.


2주 동안 쓰고 싶은 이야기들.

- 왕이 되고 싶은 아버지(들)에게/ feat. 안젤라 카터 이야기 속 상호 의존 관계.

- 세계화라는 환상

- 이야기와 공감 능력 (이야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쓰일 수 있을까.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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