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을 구할 수가 없어서 월마트에 산 LED 풍선을 한 손에 쥐어들고 밴쿠버 아트 갤러리로 향했다. 갤러리 앞에는 갤러리 건물만큼 키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을 사람들을 찾았다. 갑작스럽게 열린 집회인데 몇 명이나 왔을까. 트리 앞에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보였다. 대부분 이삼십대의 여성들 같았다. 이후로 나는 밴쿠버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에 두번 더 참가했는데, 그 모든 집회 현장에는 언제나 그녀들이 있었다.
보부아르는 <타자로서의 여성(Woman as Other)>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스스로를 타자로 규정함으로써, 남성을 주체로 만드는 게 아니다. 남성이 스스로를 주체로 규정하기 때문에 여성은 타자의 자리로 밀려나게 되고, 여성들은 이러한 남성들의 관점에 복종하게 된다(it is not the Other who, defining itself as Other, defines the One; the Other is posited as Other by the One positing itself as One, the Other has to submit to this foreign point of view)”
나는 윤석열 정권이 권력을 잡은 기저에 보부아르가 말하는 여성 타자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건강하지 못한(?) 페미니즘 탓으로 돌렸다. 남녀 간에 교제가 불가한 이유도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조적 성차별 같은 건 다 옛날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60명의 내각을 구성하는데에 있어 여성의원을 단 5명 선발하는 구조적 성차별을 시현했다. 남성 중심적인 인사등용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가 했던 변명은 뽑을 만한 여성이 없었다는 식이였다.
윤석열의 시선에서 여성은 단지 남성을 사랑하고 출산의 의무를 행하면 되는, 그러나 남성만큼 똑똑하지 못한 존재다. 그는 여성들을 객체의 자리로 밀어내는 전략을 통해 더욱 더 강력한 남성적 주체/군주가 되고자 했다. 대통령의 언행과 결정들이 그 나라의 규범과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윤석열의 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악마적인 무엇이 되었고, 여성을 비롯한 남성 아닌 성별들은 좀 더 열등하고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 당했다.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혐오가 범람하고 폭력이 용인되는 문화 속에서 한국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버렸다.
혹은,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요즘 페미니즘은 너무 극단적이서 문제’라는 남성 중심적 프레임을 곧이곧대로 답습하는 여성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녀들이 가부장의 성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기해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윤석열 탄핵 집회의 주체가 이삼십대 여성들이였다는 것을 전해들었을 때, 그래서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나의 오만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강남역 살인 사건 때에도 미투 운동이 일었을 때에도 N번방 사건 때에도 그곳에 있지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와 두려움과 좌절을 겪지 않아도 됐다. 그들이 부정의와 폭력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또 다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비극을 마주했을 때에도 나는 멀리 비껴 서있었다. 어쩌면 나는 윤석열이 부채질했던 여성 혐오와 여성을 향한 폭력 밖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종이 위에서 구김살 하나 가지지 않은 채 페미니즘을 외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집회에 나와 응원봉을 흔드는 그녀들을 보며, 그녀들은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어딘가에서는 계속해서 해왔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가 몰라봤던 것이다.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공적 기관과 언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강요받는 상황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여러 방식으로 호도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버텨왔었나보다. 긴 기다림의 끝에 이 미친 자가 국회와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만행마저 목격해야 했을 때, 상처낼 것 하나 가지지 못한 그녀들은 대신 응원봉을 치켜들고 그에 맞섰다. 포기한 자들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그들의 노래는 버텨온 자들의 노래였다.
자신을 술집 여자라고 소개했던 부산의 한 여성 시민은 자유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늘이 곳에 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께 한 가지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어서입니니다. 그건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들이였다. 그녀의 자유 발언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가 나는 구글 검색창에 ‘밴쿠버 윤석열 탄핵 집회’를 입력했다. 부산 여성 시민 덕분에 참여하게 된 밴쿠버 집회는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함께 외치며 시작됐다: “우리는 성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연령, 국적 등에 관계 없이 모두가 동등한 참여자 입니다. 서로를 존중해 주십시요.”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윤석열 탄핵이라는 대의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윤석열과 그 주변 권력들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농민들을 객체화할 때, 그녀들은 자신처럼 타자화 당하는 다른 소외받는 존재들의 주체성을 함께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들이 희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성 세대들의 외침과 다르다. 그들은 작은 것들이 모두 함께 모일 때에만 가장 큰 대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애초에 윤석열이 계엄령 따위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국민을 객체로 봤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탄핵을 가결시켜야 한다고 외침에도 탄핵을 부결시키고자 했던 국민의 힘 당원들의 행태 또한 국민들을 객체로 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민의 힘의 한 의원은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은 모든 걸 잊어버리기 때문에 괜찮다고,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은 우리 당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떠들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너무 주체라서, 그들의 시야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비춘다. 반면 응원봉을 든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불빛으로 소외 받는 다른 존재들을 함께 비춘다. 그것이 권력에 맞서는 자들과 권력에 취한 혹은 기생하는 자들의 가장 큰 차이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타자(Other)로 남는 대신 주체(One)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집단적인 투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객체였던 여성들이 주체성을 되찾을 때에만, 여성과 남성 모두가 서로를 주체로 인정하고 평등하게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에서 이삼십대 여성들이 이끌고 있는 집단적인 투쟁은 그러한 상호 호혜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투쟁은 보부아르의 이분법적 성인식을 넘어서는, 모든 억압 받는 자들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남성 자의식으로 가득한 무소불위 주체들이 짓밟아왔던 모든 타자들의 주체화를 위한 싸우고 있다. 엊그제 새벽, 남태령에 남아 농민들의 트랙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줬던 것도 바로 그녀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