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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an 06. 2018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을 보고

 스카이프로 얼굴이라도 보자는 내 메일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너라서 편지를 써도 될까, 망설였어. 네가 연락하고 싶을 때 그 때 연락하겠지, 기다리지 뭐, 생각하다가, 편지를 써.


 오늘은 이른 오후에 치킨집 알바를 갔다 왔어. 치킨집에 손님이 없어서 30분 일찍 마치고, 집에 돌아왔어. 지난 주 체감온도가 -35도를 내리찍더니, 다행히 이번 주에는 그리 춥지 않아. 이제 -7도 정도야 레깅스 하나만 입고도 돌아다니겠다. 다음 주부터 또 다시 기온이 떨어진다는데 몇 번이고 더 몸을 움츠렸다 펴야할지. 나는 내가 더위를 추위보다 못 견디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캘거리 추위를 겪어서인지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추운 게 훨씬 무서워. 


 크로스핏을 갈까, 어젯밤부터 고민하다가 결국엔 집에서 엊그제 못다 본 영화를 봤어. 'I, Daniel blake'. 네가 아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오클랜드 아카데미 영화관에서 영화 포스터를 보고서 개봉하면 보러 와야겠다 생각만 하고 보러가지 않았거든. 엊그제 밤 11시에, 잘 시간인데, 김영학이 영화가 간절히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보다가 나 먼저 잠들었어. 다음 날 아침에 영학이한테 영화가 어땠냐고 물으니까, 대니얼한테 일어난 일들이 미래의 자신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대. 내가 결말도 말해달라고 했어. '다니엘이 항소를 앞두고화장실에서 심작발작으로 죽게 되고, 장례식장에서 케이티가 그의 항소글을 읽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 나는 케이티가 그렇게 안쓰럽더라.' 영학이가 진짜 안쓰러운 표정으로 결말을 말해주길래, 덕분에 마저 본 영화야.


 

 (줄거리는 얘기 안한다.) 케이티는 돈이 없어서 몸을 팔기로 해. 자식이 둘이나 있거든. 어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은 케이티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 어서 가라고 떠미는 케이티를 다니엘이 이건 아니라며 설득하는데, 케이티를 바라보는 다니엘 눈이 정말 슬펐어. 둘은 사실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오래 알아온 친구도, 가족도, 이웃도 아니야.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한 쪽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입장들도 못 돼. 존중받지 못한 채, 부당한 일을 겪는 케이티와, 그러한 처지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소리쳐 옹호했을 뿐인 다니엘일 뿐이거든. 매번 무너지는 케이티를 옆에서 돕는(객관적으로 누굴 도울 처지가 아니면서) 다니엘과, 마지막 그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케이티. 

 영화를 보면, 영국의 허울 뿐인 복지 시스템을 배경으로 한 몰인정한 관료주의에 얼굴을 찌푸리게 되면서도, 그래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따뜻함을 지키려는 몇몇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누군가의 어려움, 슬픔을 보았을 때 과연 나는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나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아마 언젠가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믿어왔던 것 같아. 근데 어쩌면 그건 숨막히는 신앙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좋은 사람 신앙. 천국 신앙같은.

그러니까, Jo,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믿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냥 있지, 세상에는 많은 슬픔과 비극과 눈물과 배고픔, 불공정함, 절망들이 있는데, 내가 슬퍼지는 것에 같이 슬퍼하는 것만 해도 되지 않을까? 그게 이기적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고. 공감되지 않는 슬픔에 공감하는 척 하는 게 이기적인 것보다 더 나쁜 거니까.


 그렇지만 네가 힘들 때 내가 같이 힘들어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해. 네 마지막 메일을 받고 나서, 네가 슬플 때 나는 같이 슬퍼해주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어. 너한테 많은 말들을 했지만, 그 희망에 가득찬 내 말뿐인 말들이 너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해. 

 또 말을 덧붙이는 대신에 조용히 네 연락을 기다리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냐. 편지라도 쓰고 싶은 걸. 



 2018년.

 이번이 영학이랑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같이 보내는 새해였어. 따져보니까 그렇더라. 다행히 영학이 일이 12시 전에 끝나서, 둘이서 난로를 쬐며 침대에 기댄 채로 새해를 맞았어. 영학이가 새해에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묻길래, 지금 이렇게만 지내도 좋겠다 오빠, 라고 말했어. 진심이야. 지금처럼 아프지 않고, 싸우더라도 또 웃으면서, 잘 되지 않더라도 뭐라도 해보면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친구들, 가족들, honest people. 생산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만약 내게 예술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만 부지런해졌으면 좋겠어. 어떤 삶의 선고에서도, 내 삶의 중요한 가치들만이 등대가 되길 바라. 죽음을, 내가 결국 죽을 거라는 것을 못본 척하지 않길 바라. 

 글자로 보니 너무 욕심 넘치는 새해 소망인가 싶다.

 

 너는? 네 새해 소망은 뭐야?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있으면 부탁해. 

 그렇다고 예의상 답장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안녕, Jo.

 A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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