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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Feb 13. 2018

[편지] 어떤 편지는 이렇게 생겼지

향림에게

 향림아 보고싶다. 


 너무 추워서 옷을 두겹씩 껴입었어. 파카 위에 조금 더 얇은 점퍼를 걸쳤고, 레깅스를 입은 다리에 영학이 바지도 빌려 입었어. 겨울 바지를 아직 안 샀거든. 비자를 받게 되면 웃도 사야지 하다가 이미 겨울이 반은 지나간 것 같아. 원래 패션 감각은 내게 먼 나라 단어였고 이곳에 온 이후로는 더욱이 생존을 위해서만 옷을 입어. 내 많은 시간과 관심은 생존을 위한 것들에 묶여 있지만, 'I don't feel nothing enough' 노래가 나오는 카페에 앉아서 밤을 쳐다보는 시간도 있으니까 이런 것들이 건조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1. Vegan cafe  

비건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어. 어떤 손님들은 cow milk는 없냐  what's this policy? 뾰루퉁하기도 하고, Vegan인 손님들은 한껏 들떠서 찾아와. 우리 카페에서는 흰 우유를 대신해 두유, 아몬드,코코넛 우유로 커피를 만들고, 모든 음식들은 100% Vegan이야. 가게가 세련되지도 않았고, GYM 건물 안에 위치한 작은 카페야. 나는 여기서 일하는 게 좋아. 

 Vera and Rose.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야. 

Rose는 비건 음식을 포스팅하는 유투버야. 구독자 수가 40만이 넘는. 그녀가 Vegan인 동시에 Korean-canadian이기 때문에 반가워하며 비디오를 봐왔는데,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Rose 엄마가 내가 사는 동네에 Vegan 카페를 연다는 포스팅을 보게 됐어. 이력서를 급하게 만들었어. 다행히 Rose가 내 이력서를 마음에 들어했고 나는 일을 구했지. 나랑 같이 채용된 여자 애는 3일 만에 그만뒀으니까 내가 첫 직원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Rose는 풀타임 유투버라 항상 바빠보여. 그래서 나는 주로 Rose 엄마, Vera랑 일해. 우리 둘은 주로 영어로 대화해. 내가 그렇게 부탁하기도 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더라. 많은 이야기를 했어. 손님이 많지 않거든. 

 

 위대한 말을 권력처럼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실제 삶에서 지키며 사는 사람을 내가 만나본 적 있던가.  

 

 Vera 나이가 57세니까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잖아. Vera는 순간적으로 하는 한국말에도 나를 존대해. 치킨집 여사장님이 날 본 첫 날, '네가 결혼했던 말던 나는 말 놓는다, 알겠제? 내가 나이가 몇갠데.'했던 것과는 너무나 상반되게 말이야. 

 Vera가 10분 쉴 때, 나는 15분을 쉬고 와. 무급인지 유급인지 묻지 않았는데 나중에 받은 주급을 보니 유급 휴식이더라. 지난 주 토요일에는, 눈도 그렇게 많이 왔는데 유달리 많이 바빴거든. 아무도 쉴 수가 없었어. 급한 대로 밥을 먹고 다시 Bar로 돌아가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려는데,  Vera가 좀 더 쉬고 오라고, 너 많이 못 쉬었다고 나를 밀쳐 내는거야. 그것이 그녀가 최소한 내게 지키고 싶은 예의라는 걸 느꼈어. 고마웠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나이가 많다는 무조건적인 이유로 존경하고 싶진 않아. 내 삶 스스로가 느끼듯 조금 더 살면서 조금 더 많은 더러움을 보고, 조금 더 자유와 멀어지며, 조금 더 계산적인 인간이 되는 것 같거든. 삶의 지혜란 시간과 함께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발휘해야 하는 용기같은 거라서, 그 마음먹음을 멈추게 될 때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좀 더 치사한 인간이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면서 그에 걸맞는 인간적인 성숙함을 갖춘 Vera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다른 무엇이 되지말고 나도 그처럼 시간을 먹고 자라나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Vera 고향이 포항이라고 했을 때는 곧장 이명박을 떠올렸어. Vera가 이명박을 두고 Evil이라며 한참 욕하고 나서야 속으로 다행이구나 했지. 

 Vera는 내 대학교 선배이기도 해. 졸업하자마자 선생님을 했는데, 재미는 없었지만 그 때만 해도 여자가 자기 일을 하는 것은 드물 때라 그래도 일을 했대. 그러면서 자기는 아무래도 지금처럼 몸쓰는 일이 제격인 사람같다고 말해. 내가 학교를 자퇴했다고 말했을 때, Vera는 잘한 선택같다고 말했어.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되물으니, '세상에 경험할 게 얼마나 많은데, 저는 한국 사회에서 선생님으로 사는 거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세상에 그것 말고도 할 게 많잖아요.' 

 

 한 번은 Vera 남편이 물건을 실어주러 카페에 들른 적이 있었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가영이에요.'  

내 소개에 아저씨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입니다.'라고 쑥쓰럽게 인사해주시더라. 

'Vera, why did you like him?'

'It was really enjoyable to talk with him. and he was really good at writing.'

Vera는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글을 잘 쓰는 남자가 멋있다고 생각했고, 아저씨랑은 말하는 것도 너무 즐거운 와중에 그가 글까지 잘 쓰는 걸 보고는 어쩌다 결혼하게 되셨대.

근데 복병은 따로 숨어 있었어. 홀로 계신 시어머니가 독실한 천주교신자이신데다가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여성이였던 거야. 결혼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시어머니가 Vera에게 일을 그만둘 것을 요구하더래. 시어머니 봉양을 이유로. 어처구니가 없던 Vera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대. '왜 제가 그만둬야 하죠?  당신이 그만 두세요.'

아직도 그녀의 시어머니는 Vera 때문에 자신 아들마저 성당을 안다니게 됐다고 생각하시고 분노하신대. 우리 둘 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어. Vera가 종교가 일으킨 전쟁들에 대해서 이어 말할 때, 나는 종교는 하나에 권력집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받아치면서 서로 고개를 끄덕였어. 수다 떨려고 일을 시작한 건 아닌데, Vera랑 쿵짝이 잘 맞아.

 

 Vera가 캐나다로 이민 온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였대. 그녀 스스로 충분히 그 속에서 숨막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까지 그 사회란 것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대. 

 Vera 남편 분이 한때 캐나다 이민 생활에 대한 책을 출판해볼 생각도 하셨는데,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어떤 주제라는 게 이민을 하나의 성공으로 포장해서 사람들을 고무시키려는 의도성이 너무 강해서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나봐. 그러면서 그녀가 말했어. 'What's the success in life? Is that about money?'

그녀가 돈같은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꼈어.  


'Karen, I'd like to explore  the world and feel my freedom.' 

Vera는 요즘 스페인어를  배우는 중이고, 3월이 오면 남편이랑 밴쿠버 아일랜드로 휴가를 갈거야. 그녀는 '자유'에 대해서 자주 말해. 전기세, 임대료, 재료비 등을 생각하면서 돈 낼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일을 해야한다는 그녀지만, 그러면서도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고 깨어있기 위해 꿈꾸는 Vera가 나는 멋있다.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캐나다에 온 이후로 친구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거든. 치킨집 사장님은 사람 좋은 척 웃으면서 연신 '내가 보스다'를 천명하시고, 내 또래의 워홀러는 자기가 역사 공부를 좀 해봐서 아는데 모든 대통령은 허와 실이 있는 법 전두환도 잘한 점과 못한 점이 있다는 중립 어쩌고저쩌고 포장지에 둘둘 말려 속이 뭉개진 이야기를 해대고, 많은 젊음들이 그린 카드를 꿈꾸며 미래를 위하여 지금의 수모쯤이야 꿀꺽 삼켜야지 다짐하고, 치킨집 여사장님은 하라 언니에게 가게 격 떨어뜨리는 짓 말라는 소리를 쳐대고, 하라 언니는 그것을 또 꿀꺽 삼키며 LMIA를 되뇌이고. 만불로 산 영주권을 가진 플랫메이트는 일하는 슈퍼마켓에서 음식들을 훔쳐 오는데 자신이 당한 것에 비교하면 도둑질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부끄러울 것 없이 말하고, 부모 덕에 영주권을 가진 치킨집 알바생은 100억을 준다면 할머니랑 잘 수도 있겠다는 시답잖은 소리를 하며 금요일 저녁엔 1차 술집 2차 노래방을 가. 


 권력이 소멸된, 그렇지만 살아있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어. Vera를 만난 이후로, 그녀가 겪어야했던 삶이 궁금해지면서 그녀의 선택들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졌어. 자신 덕분에 내 일상이 조금 더 생생해졌다는 것을 Vera는 모르겠지.    

 

     

 2. En선생과 글쓰기

 한국 문학계로도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는 중인가봐.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여성들을 지좆대로 주물렀다는 그 En선생의 파렴치함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문학사의 편집위원은 은을 옹호하며, '이번 사건으로 그의 위대한 문학마저 훼손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더라. En은 원래부터가 술자리에서 난잡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해줘야 하며, 그런 그의 욕망에 대한 자기 반성으로 탄생되는 위대한 시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사회는 이 사건을 좀 덜 매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개소리. 시를 먹고 시간을 먹고 괴물이 되는 인간들.

 시는 소설과 달리 허구가 아니며, 한 편의 시는 시인의 삶 자체가 연필이 되어 쓰이는 것이라고 믿는 나같은 독자들에게 En선생의 들춰진 이면성은 말과 글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진실은 삶의 순간들에 있을 뿐, 그 어떤 다짐과 활자도 누군가의 삶을 변호해줄 수 없어. 

권력의 이름표를 달고 인간은 얼마나 뻔뻔해질 수 있는가. En이 마귀같은 손을 거둬들일 수 없었다면, 그 손으로 시는 쓰지 말았어야지. 부끄러운 줄 알았어야지. 그가 부끄러움을 몰라도 좋을 세상을 함께 만든 저 편집위원같은 인간들도 함께 추락하길 빌어.  


  '-- 종이 위의 문장들은 일종의 평행우주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실제하는 현실과 무척 닮아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글을 쓰는 사람은 종이 위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고 가보지 못한 길을 상상할 수 있다. 픽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우리는 글 속에서 새로운 우리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인 척 할 수 있다. 더 현명하거나 더 세련된 사람인 척 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나 그럴 수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더 나은 사람인 척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글쓰기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글쓰기는 혼자해서 좋은 것이지만 혼자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다. 지금 수많은 블로그에서, sns에서, 책에서, 글쓰기는 자기 합리화의 좋은 도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정확하게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말은 뱉으면 그만이지만 글을 발표하기까지 수십 번 수백 번 고칠 수 있다.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쳐낼 수 있다. 말에 비해 글은 훨씬 더 전략적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김중혁 에세이 '무엇이든 쓰게 된다' 중에서 



3. 나무를 심는 사람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 된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통해 듣게 됐어. 1시간이면 충분히 듣는 짧은 책인데, 다 듣고 나서도 부피에가 생각나서 한 번 더 들었어.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여행하는 중,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나게 돼. 부피에는 아들을 잃은 지 얼마되지 않아 아내마저 잃게 된 후로, 황무지에 집을 짓고 양을 키우고 나무를 심으며 살고 있었어. '나'는 부피에 옆에서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고 그가 궁금해져. 부피에는 도토리 나무가 될 도토리알들을 고르는 일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야. 도토리 나무를 심는 땅이 누구의 땅인지는 전혀 관심없다는 듯이 그는 묵묵히 도토리를 심어. 부피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에 차 나무를 심어. 

 땅은 더 척박해지고 사람들은 더 포악해져가는 시기였어. 세계 제 1차 대전이 일어나고 '나'는 전쟁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 봤어. 5년이 흘러 '나'는 다시 부피에를 떠올리게 돼. 너무 많은 죽은 사람들을 봤기 때문에, '나'는 부피에도 죽었을지 모를 일이라 생각했어. 그러나 부피에는 전보다 더 활력있는 모습으로 나무를 심고 있었어. 이제 나무들은 숲이 되었지. 사람들은 그 많은 나무들이 저절로 자라났다는 듯 부피에가 한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지. 산림원이 생겨났고, 그는 부피에에게 나무를 해칠 일을 만들지 말라, 주의를 주고 가. 말없는 부피에는 그저 나무를 심을 뿐이야. 심은 대로 태어나는 나무가 아닐진대, '나'는 말없는 부피에가 겪어야 했던 고독과 절망이란 것은 하느님만이 아실 거라고 생각해.  

 부피에는 전쟁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산 탓에 전쟁을 모른 채 살았다고 해. 그 후로 '나'는 1년에 한 번씩 부피에를 방문해. 그는 이제 양을 키우지 않고 계속해서 나무만을 심어. 그리고 또 다시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뗄감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부피에가 심은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어. 숲이 도로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거야. 전쟁과는 무관하게 부피에는 언제나 그가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갔지.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나무를 심는 사람은 계속해서 나무를 심고, 척박했던 땅은 자라나는 나무들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어가. 그 곳에서 사람들은 터전을 만들고 공동체를 만들며 살기 시작해. 예전에 포악했던 사람들은 이제 함께 일하며, 서로 나누며 살기 시작한거야. 

 나무를 심은 사람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어.

 

 부피에가 실존 인물이 아니였다는 것이 내게 적잖은 실망감을 줬지만(소설인지 모르고 들었어;),  이 이야기는여전히 내게 좋은 기운을 선물해.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그의 확신과 그것을 지속하는 그의 힘에 대하여. 한 사람의 작고 긴 움직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엄청난 변화에 대하여. 그래서 결국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란 것은 누군가의 말없는 걸음들에 빚지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도 말과 글을 아낄지라도 좋은 행동들을..  됐고, 나쁜 인간은 되지 말자고. 

 

 모든 진실은 우리가 사는 삶의 작은 순간들에만 있으며, 결국 그의 삶이 어떤 삶이였는지에 대한 판단은 그가 산 그 작은 순간들의 총합에 있을 뿐이다. 위대한 말과 글도 실제 삶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면, 그것은 숨길 것이 많아 색칠이 필요한, 혹은 열등하기에 우월하고픈 인간의 허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거짓된 말과 글을 멈출 수 없는 인간 중에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로 나를 증명하려 들지는 않아야지.        

 자유에 대해서 떠드는 것과 자유를 사는 것이 다르고, 옳은 일에 대해 열내는 사람들과 옳을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다르고, 사랑한다 믿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삶은 말과 글로 언제나 각색가능하고, 미화된 평행우주를 스스로도 믿기 시작할 때 이제 그는 블랙홀에 빠져 찾을 수가 없게 된다.

 

 내가 하는 일과 사는 삶에 대해 부서지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작고 긴 여행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아. 쓸데없을 욕심들이 끼어들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조급함에 시달리는 나를 발견해. 나무를 심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것을 자꾸만 잊어버리고, 백만번은 넘게 되찾기 중인 내 자신이 싫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누구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닌 '나'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가야할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부피에같은 사람을 떠올리면서. 

    


4. 82년생 김지영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가 '82년생 김지영'도 잠깐 읽어주더라. 네가 많이 공감했을 것 같아. 한국에서, 여자로서, 너는 취업 활동을 경험했고, 그래서 일을 구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나도 한국에서, 여자아이로, 태어나 20년을 넘게 그 사회의 교육을 받았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회가 가하는 치졸한 성차별을 경험하고 인식하기 시작할 시기에 한국을 떠났고 그 이후로도 이 방황을 지속하게 되면서, 김지영이 겪어야했던 세상으로부터 조금은 비껴서 있는 것 같아. 

 그러나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엄마를 보면서, 큰엄마를 보면서, 할머니를 보면서 뼛 속으로 기억해. 우리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때려도 그냥 맞았고, 아빠가 술에 취해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면 엄마는 발악했지만 그래도 맞아야했고, 엄마와 큰엄마는 박씨집 핏줄은 하나같이 폭력적이라며 아빠 큰아빠 욕을 번갈아 씹어대며 다시 제사상을 준비해야 했어. 아빠는 일을 하고 집에 오면 벌러덩 누워 텔러비전이나 보다가 일을 하고 집에 온 엄마가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또 밥을 하면 밥상 앞에 앉아 국이 짜다고 씨발 짜증을 내도 엄마는 가만히 듣고 있고 나는 속이 터질 것 같은데 밥을 구겨 넣었어. 아빠는 내게 여자는 조신해야하며 애교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본인은 조신하게 가슴 큰 여자들을 관음했겠지. 

 살만 빼면 넌 정말 예쁘겠다는 말을 미친 놈들은 칭찬인지 알고 해댔는데, 나는 내가 정말 살만 빼면 예뻐질 줄 알고 언제나 살을 빼고 예뻐지고 싶었어. 내가 살을 빼고 예뻐지면 지들 거시기가 마구 꽂고 싶어서 발정난 것들이 하는 소린 줄도 모르고 말이야. 여자는 항상 대상화되고, 주체는 남자인 사회.


 자유에도 차례가 있나보다. 이제서야 여성의 이야기가 여성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해. 무딘 나는 내가 경험해야했던 성추행 아닌 듯 성추행이였던 말들과, 내가 목격했던 내 윗세대 여성들의 과묵한 슬픔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하다 파르르 몇 번이고 몸을 떨어댄다. 


네 덕분에 들은 책, 한국에 가면 꼭 다 읽어봐야지.


이제 집에 가야겠다, 향림아. 

또 보자.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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