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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an 26. 2018

[일기] 비자를 기다리는 일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하면서 비자를 기다려왔다. 내 나라 아닌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동경은 사라진 지 오래고, 대통령이 바뀌었을 땐 순진하게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지내는 게 좋냐는 질문에 어디서 살든지 영학이랑 같이 있으면 괜찮다고 말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친구의 자조 섞인 말에는 '부러울 게 있을까요, 명철씨는 명철씨 삶이 있는데', 같은 말을 했다.


 호주는 내 첫 워킹홀리데이 나라였다. 내가 살던 곳 반대편에서 영주권을 얻기 위해 분투해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한국이 싫었으므로, 다른 나라에 살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 일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쉽게 이뤄지는 일은 아닐거라 직감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워홀비자가 끝나갈 즈음 일하고 있던 카페에서 스폰 비자를 제안했다. 고마운 일이였고 좋은 사람들이였지만 내가 선택한 건 여행이였다. 그 때 나는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내 젊음이 아까웠다. 건강한 다리를 가졌을 때 많은 곳을 걸어야 한다고 맹신했던 때였다. 앞으로 다른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기회가 또 찾아왔다. 뉴질랜드에서 내가 일했던 곳은 오클랜드 시티 내의 한 아트 갤러리 카페. 그 곳에서도 내게 스폰 비자를 제안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이 놓치지 말아야할 기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영학이를 만나고 싶었다. 

 두 경우 모두에서 갸우뚱하는 나를 보스들은 설득했다.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 그것들은 가까이 왔다.


 영학이를 만나러 온 캐나다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나는 그의 부재를 절감했다. 멋진 삶을 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믿었고, 갈 수 있는 곳까지 여행하기로 마음 먹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홀로 간 뉴질랜드였다. 미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었다. 김영학이 아니라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내게 쉬운 일일 거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나 캘거리 공항에서 김영학을 다시 봤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생각이라곤 결국 그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 뿐이였다. 김영학 없이 오클랜드에 사는 것은 빛나는 Mission bay beach를 쳐다보면서 허전함을 달래는 나를 응시하는 외로움같은 것이였다. 전쟁이 나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논리없는 불안에 진지하게 잠겼었다 말해도 영학이는 믿지 않겠지.  


  그를 만났고, 삶은 다시 롤러코스터다. 아무것도 아닌 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영학이는 내 가시돋힘을 두고 실직상태가 불러온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나는 영학이가 신청한 워크 비자의 배우자 비자를 신청한 상태이고, 워크 비자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 카페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인색하게 되었고, 재즈 댄스 아카데미를 등록하는 일은 한참 미뤄뒀다. 몇 번이고 영학이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했다. 네가 안 가겠다면 나 혼자라도 어디든 가야겠다고 소리쳤지만, 묵묵히 일하러가는 영학이를 배웅하고 나선 그에게 미안해졌다. 

AINP, LMIA 같은 비자들은 너무 복잡하고, 에이전시는 사기꾼들 같고, 영주권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불확실한 기다림의 지속과 여러 변수들의 연속이다. 이미 거절된 비자와 거절될 가능성의 비자 사이에서 좀잡을 수 없는 앞 일에 대한 걱정에 휩싸이는 심리적 피로 속에서 부유할 때가 많다. 내가 시작한 일이고 나 혼자 해결해가야 할 일이였다면 난 진작 이 곳을 떠나 있을 것이다. 영학이가 시작한 일이고 그와 내가 함께 해결해가는 와중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나는 그에게 베이스캠프라는 말을 꺼냈다. 앞으로의 우리 여행에 이 곳이 베이스캠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비자를 기다리는 일은 미래를 기다리는 일. 오지 않을지도 모를 청사진의 미래를 기다리는 것을 한 번도 원해본 적 없다. 우연히 원하는 미래에 들어선다면 그건 행운이겠지만 삶에서 많은 행운을 바라는 것은 왠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과정들이 수포로 돌아간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가 진정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다면.


 영주권을 얻는 것이 이 여정을 시작한 목적이 아니다. 설사 세상에 '자유권'같은 게 있다하여도 그것을 얻기 위해 현재가 저당 잡힌 삶을 산다면, 결국 자유권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그는 자유를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다른 나라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획득한 한국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내가 받은 인상은, 그들에게 영주권은 한국에서의 좋은 대학, 좋은 직장과 다를 바 없는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였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주권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것이 있기보다는 최상의 가치라고 말해지는 뭔가를 맹목적으로 쫒는 것만 같았다. 나는 뭘 쫓아사는 것도 싫고, 그것이 모두에 의해 가치 있다고 해석되는 거라면 더더욱 청개구리처럼 굴고 싶다. 나는 아직도 건강한 다리를 가졌을 때 많은 곳을 걸어야 한다고 맹신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픔보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잘 만나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삶의 전개는 가혹하게 쉽고, 함부로 쓰이는 내 삶에 고개를 숙일 때가 많다. 입으로 어떤 다짐을 내뱉더라도, 다음으로 이어질 실제 이야기를 예측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예상가능한 삶은 비루하고) 그러나 적어도 내 이야기의 펜을 내가 잡아보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것의 실패는 다반사겠지만, 그것이 인생의 실패로 귀결될 수는 없다. 


 내가 진정 기다리는 것은 오늘 밤에도 너의 손을 잡고 잠드는 일, 내일 아침엔 네 이름을 불러 너를 깨우는 일, 네 앞에서 좀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일, 같은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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