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다시 일을 하고 싶을 때

엄마의 커리어

by 수아

" 소망아, 엄마 일하러 가도 돼?"

" 그럼! 앗싸~ 그럼 영상도 마음대로 보고, 간식도 먹고, 사고 싶은 장난감도 사달라고 해야지!"


택도 없는 소리. 유치원 때 엄마가 회사를 잠시 다니던 때, 밤마다 울면서 내일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되냐고 눈물로 호소하며 가슴을 아프게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많이 컸구나 싶다. 너 분명히 된다고 했다. 나중에 딴 소리하거나 후회하지 말거라.


그럼 한번 알아봐 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채용공고 사이트를 클릭해 본다. 일단 아이의 등하교 시간을 확보한 생활 반경 내에서 알아보려면 집 근처로 봐야 할 텐데.. 역시나 해당 직무공고가 많지도 않고 제약도 많다. 이런 것쯤에 의기소침해질 내가 아니지. 이리저리 부지런히 눈을 크게 뜨고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세상에나. 아이의 미술학원 근처 신축 아파트에 올해 초 이주한 공공 기관에서 내가 가진 자격 조건에 부합한 채용공고가 나온 것이 아닌가!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원서 접수일과 필요 서류들을 체크해 본다. 생각보다 연봉은 적고 스펙도 좀 더 낮은 상태로 가야 하는 지루하기 뻔한 사무실 업무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어 꼼꼼히 공고를 살펴본다. 관련된 서류들을 언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 아 맞다! 방학이 있었지.


방학이 있다고 해도 여기저기 뺑뺑이 도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적당한 학원 스케줄 믹스를 통해 시간을 보낼 수는 있지 않나? 그래 다시 힘을 내보자. 아! 그럼 밥은 어쩌지? 식사를 미리 준비해 두고 챙겨준다고는 해도 과연 아직은 어린아이가 혼자서 밥을 꺼내서 차려 먹을 수 있을까? 밥이랑 국은 데워서 먹어야 하고 반찬 몇 가지는 꺼내서 차려서 먹어야 하는데.. 혹시라도 퇴근이 늦어지거나 준비해 둔 반찬류가 없으면 어쩌지. 배고프다면 라면을 먹고 싶어 할 텐데 뜨거운 물이 너무 위험하지는 않을까? 식사대신 손쉽고 입이 즐거운 과자나 젤리로 식사를 때워버리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과 착잡한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하교길에 학교 내 같은 학년 다른 반에서 독감의 유행으로 한 학급의 반이 넘는 학생들이 등교를 못했다는 소식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옆 집 엄마가 말해주었다. 초등학교 초기에 비해서는 소아과를 갈 일이 훨씬 적어지고 아파도 금세 낫기는 하지만 여전히 독감이나 전염병의 소식에는 긴장과 걱정이 된다. 아. 방학 말고도 한 가지를 더 잊고 있었네.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누가 돌봐주지? 병원은 어쩌지? 결국 이 대목에서 나는 포기하고 만다.




아이가 5살 즈음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니 뭔가 시간이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치원에 가니 어린이집 다닐 때보다 아픈 횟수도 줄고 시간적 여유도 생겨서 당장 나가서 일해도 될 것 같았다. 열심히 원서를 내고 시험과 면접을 보면서 구직활동을 해서 다시금 일을 시작했었다.생각해 보면 그때는 어린이집이나 사립 유치원은 방학기간이 짧아서 가능했나 싶다.


주변의 도움이 전혀 없이 혼자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조직 내에서 풀타임 근무를 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이모님이 아프시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조직의 일정 변경과 환경변화에 내 입장만 운운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을 몇 년간 하다가 그만두고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훨씬 좋아했고,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행복해했다. 지금 돌이켜 살펴보면, 2-3년을 주기로 내게는 '일하고 싶다 병(?)'이 찾아오는 것 같아 보인다.


일을 통해서 나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예쁘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많지는 않아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의 엄마'가 아닌 내 자신의 이름과 직함으로 불리는 사회적 위치와 인정의 욕구, 그 동안 공부하고 일했던 경력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다시금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 등 여러 가지 마음이 혼재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기대와는 달리, 실제로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이른 아침 간신히 머리는 감고 잘 말리지도 못한 채로 구겨진 정장 바지를 탈탈 털어입고 대충 로션을 묻힌 얼굴에 화장 도구를 파우치에 넣고 간신히 뛰쳐나온다는 것을 안다. 영상을 보느라 넋이 나간 아이에게 소리를 치면서 그만 먹고 얼른 준비하라고, 더 늑장을 부리면 엄마도 지각이라고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면서 간신히 현관문을 나서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을. 회사에서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어 아무리 아이가 이쁜 짓을 하고 애교를 해도 웃어주고 반응해 줄 힘이 없는 나 자신이 떠오른다. 숙제 챙기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어 버릴 때도 많다는 것도. 그런데도 아직도 이런 환상을 버리지 못하다니.


돈은 어떠한가? 외벌이였다가 좀 더 월급을 받으니 당연히 가계에 보탬이 될 법도 한데, 신기하게 더 들어온 만큼 더 나간다. 배달도 외식도 잦아지고,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다른 씀씀이들이 평소보다 더 커진다.


이런 결과들을 뻔히 이미 겪었고 알면서도 이 놈의 '일하고 싶다 병(?)'은 어김없이 가끔씩 나를 찾아와서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도 나의 선택이며, 직장을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나의 결정인데. 자꾸만 이 귀여운 아이 때문에 내가 나의 선택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 그래서 그 피해의식을 본의 아니게 아이에게 말이나 감정으로 표현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본다.


만일 신이 내게 물어서 다른 선택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경험했던 이 행복감은 내가 이 땅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며 선물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성취와 기쁨이 이 아이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주는 그 행복과 기쁨은 이전에 겪었던 모든 고생과 눈물을 덮고도 남을 만큼이지 않은가.


하루가 다르게 점점 커가는 아이를 보면 아기 때의 얼굴이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아 너무 아쉽다. 언제 이렇게 컸나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서. 그렇다면 엄마의 자리를 필요로 하는 이 시간을 최고로 누려야겠다.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고 함께 그 옆자리를 지켜주면서. 다시금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하며 기다려야겠다. 언제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될 때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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