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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Dec 05. 2022

엄마가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엄마의 위기관리

 사람이 참 좋아서 잘 알고 지내던 대학 친구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단다. 한동안 띵 소리가 들리는 듯 멍했다. 머리가 아프다길래 단순히 감기나 두통인 줄 알고 방치했다가 급하게 병원으로 입원했지만, 뒤늦게 밝혀진 뇌종양이 악화되어 정말 입원한 지 이틀 만에 장례를 치렀다. 뭐라고 위로할 말조차 감히 꺼낼 수 없었다. 친구는 겉으로는 남은 아이와 일부러 더 태연하려 애쓰며 일상을 살아간다. 속으로는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최근에 임신한 동네 동생이 전화를 해서 펑펑 울기만 한다. 차마 이야기를 못하겠어서 그런단다. 일단은 진정시키고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홀로 남편을 키워왔던 시어머니가 엄청난 부동산 사기에 휘말려서 큰 빚을 지게 되었단다. 자식 중 아들은 자기 남편밖에 없으니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다. 저지른 일을 어느 정도 함께 수습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문제는 돈이다. 남편은 어떻게든 돈을 좀 더 벌어서 빚을 갚기 위해 직장 퇴근 이후에도 주말에도 계속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 돈이 될 수 있는 일들은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넉넉지 않은 이 집 형편에 아이를 키우며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시댁의 큰 빚은 눈물이 날 정도로 무섭고, 막막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돈처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평소에 똑 부러지게 일도 살림도 잘해서 늘 닮고 싶었던 회사 언니가 이혼을 결정했다고 했다. 남편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돈에 대한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매사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언니가 내린 결정이기에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이가 평생 받을 상처, 인생에 실패했다는 자괴감,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사회적인 시선과 편견, 여전히 남아있는 불편하고 성가신 법적 절차들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언니의 눈을 차마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결혼 후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이혼은 그 결정이 서로에게 최선임을 알지만, 살이 베이는 듯한 큰 상처와 아픔을 꽤 오랜 시간 아물기 전까지 혹은 아물지 않은 채로 부모와 아이의 마음에 안고 사는 삶처럼 보였다. 보는 나도 마음이 에리다.    




 만일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20세 때까지 혹은 대학에 갈 때까지만이라도 가정에 큰 풍파 없이 아이의 양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평범한 집이라면 그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고 감사할 일이다. 평범해 보이는 그 삶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고 특별한 것임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한 개인의 삶이나 가정에도 이런 엄청난 위기의 순간이 언젠가는 분명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모습과 색깔이 다를 뿐. 드라마나 뉴스에서나 봤던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전에 내가 고민스럽고 힘들어했던 문제들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수준의 아주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그런 일이. 가슴에 커다란 유리 조각이 박힌 것처럼 괴롭고, 정상적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고, 앞이 캄캄해지고 눈물만 나는, 내 아이와 내가 다시 이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살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일 말이다.      

   

 집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생기면 어른들은 아닌 척하고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른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왜 모르겠는가. 집안에서 들리는 어른들의 말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눈빛과 표정, 공기가 다른데. 아,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구나. 겉모습은 몸과 눈으로 공부하는 척하느라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지 몰라도 그 속은 아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불안하다. 글자가 눈으로는 보이지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집중이 될 리 없다.


 대학 전공 수업 때 기업의 ‘위기관리(Risk Management)’란 용어를 배운 적이 있다. 아무리 성공적인 기업일지라도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있는데 그 상황에 기업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존속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경영학 책에서만 나오는 기업 경영 전문용어라고 생각했는데 개인 혹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 것만 같다. 단순한 위기가 아닌 생존 자체의 문제가 나에게도 우리 가정에게도 인생을 살다 보면 온다. 이때 엄마인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는 각오해야 한다. 우리 가정에도 우리를 뿌리 째 뒤흔드는  뉴스에서 나오는 그런 엄청난 사건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잡을 수 있어야 한다. 아,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구나. 나에게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말 그대로 엄청난 ‘착각’이다.      


 엄마는 대비해야 한다. 혹시라도 그런 큰 어려움이 우리 집에 닥치면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인가를. 돈이든, 관계이든, 건강이든지 간에. 더 나아가 아이들이 그러한 위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내성과 힘, 지혜를 미리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엄마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관리하고 보호해야 한다. 엄마의 관계도 건강도, 멘탈도. 어떤 상황에도 나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 거대하고 위협적인 파도가 나와 우리 가정을 덮치려 할 때,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도록. 두렵지만 조금은 그 파도를 호기롭게 째려보면서 대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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