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팀 사역
교내에 이런 조직(?)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보이지 않게 부지런히 섬기는 곳이다.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학생이든, 선생님이든, 학부모이든)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모아 가장 먼저 분주하게 움직이고 행동하는 조직이었다.
눈에 띄는 많은 행동을 하지도 않고, 누가 소속되어 있는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사역을 과거에 한 적이 있는 혹은 하고 있는 사람만 아는 팀이다. 이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일을 하지만 앞에서는 티(?)가 나지 않는 그런 사역을 감당하는 곳이었다. 알고 보면 그 어느 조직보다 감당하고 있는 일은 정말 많아서 실체를 알면 깜짝 놀라는 팀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많은 일을 뒤에서 그토록 소리소문 없이 감당해가고 있었다니. 이들의 크고 작은 헌신을 오직 하나님만 아셨구나 싶었다. 이렇게 힘든 곳이었다니. 멋모르고 들어온다고 말한 것이 후회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를 이곳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이 맞나? 자꾸 의심하고 싶었다. 몸을 사리고 싶었다.
새벽기도에 대한 사모함은 있었지만 애 키우면서 새벽기도까지 어떻게 하지? 누구라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애 키우랴 사역하랴 이 정도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은 계속 타협해 갔다. 그런데 일 년 간 매일을 새벽제단을 쌓으며 기도를 하고 하나님 주신 은혜와 마음을 따라 매일 새벽 기도문구를 적어 공유해 주시는 어린 자녀 둘을 키우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것을 보았다.
안 믿는 불신가족에 대해 기도는 해 왔지만, 더 이상 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고 믿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점점 그 마음이 희미해질 무렵, 오로지 영혼을 위한 기도만 하는 한 분을 만났다. 믿지 않는 부모님을 위해, 가르치는 학생의 영혼을 위해, 불신자 동생을 위해 그분의 기도제목은 오직 영혼 구원이다. 중보 하는 영혼의 대상만 바뀔 뿐. 어쩌면 그렇게 기도의 제목이 한결같을 수 있을까. 영혼을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가장 깊게 느끼는 가장 귀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기도 모임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지만 졸기도 잘하고, 금방 기도가 끝나버리는 나와는 달리 깊은 기도를 하는 어머님도 만났다. 기도문의 문구 하나하나를 읽으시면서 마음을 담아 전심으로 끝까지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의 소리가 마음 깊이 남는다. 기도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그분의 언어는 늘 긍정적이며 소망을 주는 언어이다. 그럼에도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분의 진심과 사랑이 담겨서 인 것 같다. 나도 저분처럼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해 주시는 닮고 싶은 분이다.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사역을 몇 개씩 감당하시는 분들도 많다. 섬기는 사역의 수가 그분들의 신앙의 지표 자체는 아니지만, 동일하게 자녀 양육을 하고 가정의 여러 가지 역할을 해내면서도 교회와 학교 내에서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시는 그분들의 열정과 헌신은 정말 대단하다. 주님 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에 부치게 사역을 감당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 그 많은 일을 하고도 생기가 넘친다.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주신 사랑과 은혜가 크다고 고백하시며 수많은 일들과 모임들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마음을 쓰면서 늘 기도하시는 팀장님의 모습은 헌신과 은혜 그 자체이다. 남모르게 중보 대상자들에게 심방을 하고 기도를 하고 내 일처럼 챙기시는 모습은 주님이 가장 잘 아실 것이다.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요, 의무감도 아닌,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그 마음으로 섬기는 모습이 은혜다. 그 자리의 헌신과 눈물, 수고와 섬김,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크고 뜨거웠을까. 나 같은 사람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요일 기도회 때 매주 새로운 기도문을 낸다.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 나라와 교회를 위해, 학교 공동체를 위해, 선생님, 자녀, 학부모를 위해, 개인과 과정을 위해. 각 주제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한 자 한 자 기도문의 내용을 A4용지로 몇 장을 적어 내려 간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은혜의 영감대로 써 내려가는 것이지만, 부족한 자를 통해 한 글자씩 표현해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내가 쓴 기도문의 문구대로 학교 전체 구성원이 함께 기도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그 부담감과 책임감은 참으로 크다. 누가 그 기도문을 쓰는지는 중보기도팀을 제외하고는 잘 알지도 못한다. 그만큼 철저히 뒤에서 고민하고 수고하는 가려진 사역이다. 몇 명의 어머님들께서 이름도 빛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그 수고를 감당해 가신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나는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급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뢰었다. (느 1:3-5)
남부러울 것 없이 왕의 애정을 받는 술관원이라는 높은 자리에서 편히 살 수 있었던 느헤미야가 아닌가. 느헤미야는 자신이 누렸던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민족의 무너진 성벽을 쌓으러 갔다는 사실이 참으로 도전이 된다. 약간 마음은 찔리고 아프겠지만, 안정적이고 편안한 그 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적당히 기도하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무엇이 느헤미야로 하여금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으러 가게 만든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무너진 공동체의 기초를 세우고 헌신하고 싶은 마음.
중보팀에서 만난 그 사람들이 이런 작은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이었다. 성경에서나 볼 법한 사람들을 나는 실제로 내가 사는 삶의 현장 속에서 만났다. 그들은 느헤미야처럼 무너진 공동체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사역에 전심으로 쏟으며,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공동체 속에서 그 무너진 성벽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쌓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고 있는 모든 현실의 핑계와 변명을 넘어서서 실제로 헌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내게 보여주신 은혜이고 감사이다. 나도 그들의 삶을 통해 배웠고 조금이나마 그런 삶을 도전하게 되었다. 나도 그들처럼 무너진 공동체의 성벽을 작게나마 쌓아가고 그런 내 모습을 통해 마음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을 불러주셔서 함께 이 사역을 감당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