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던 글쓰기 루틴 잡기: 방해하는 요소들
브런치에 신나게 글을 쓰며, 글쓰기 예찬을 펼쳐놓던 나의 소감과는 무색하게 한 동안 또 글쓰기를 못했다.
아이가 한동안 아팠고, 연말이라 분주했으며, 연말이 되면서 해가 끝나기 전에 자잘한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느라 스스로 변명을 해 본다. 이 정도 사유들을 나열하면 머리도 끄덕여지고 이해할 법도 한데, 무언가 마음속 깊이 찝찝한 그 무엇이 남는다. 그 모든 변명과 사정을 넘어서 무언가 내가 더 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히 있지는 않은가 라며 스스로를 살펴본다. 나의 어렵게 세운 글쓰기 루틴들을 무너뜨린 이 녀석들의 정체를 한번쯤짚고 가야겠다.
역시나 가장 큰 적은 바쁜 일상(분주함)이다. 특히나 연말은 개인적인 관계나 속한 공동체가 마무리되면서 크고 작은 모임들이 계속되었다. 모임 하나하나는 큰 의미가 있었고 참으로 좋았지만, 분주한 모임들에 참여하고 역할들을 감당하면서 글쓰기는 늘 후순위에 밀리곤 했다. 글을 써야 하는데 라는 부담감과 마음은 있었지만 연말이니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핑계에 늘 밀리고 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말 아니라도 바쁘지 않은 날이 있었는가 싶다. 결국 우리의 삶 속에서 바쁘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연말에 아이가 계속 아파서 몇 주 동안 동네 소아과, 달빛 병원, 주변 대학 병원 등 병원을 거의 7-8곳은 간 것 같다. 계속되는 아이의 원인 불명의 복통 원인을 찾느라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걱정도 되었다가, 지치기도 했다가, 희망도 가졌다가의 무한 반복을 몇 주 가까이한 것 같다. 그러던 중 남편이 회사에서 담당했던 폭풍 같은 업무가 끝나고 연말에 휴가를 가지게 되면서 덩달아 마음이 느슨해졌다. 한 동안 아이가 아프고 남편 없이 오롯이 육아를 담당했던 보상심리 때문인지 마냥 늘어져있고만 싶었다.
평소에 보지 않던 유튜브, 숏츠, 낮잠 등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시간 때우기들을 많이 한 것 같다. 왜 그리 아까운 시간들을 보내버렸을까. 나를 온전히 쉬게 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그 시간들을 말이다. 그 순간에만 주는 단기적인 흥미와 쾌락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고 남는 것은 자책과 후회 뿐.
학기 중과 달리 크리스마스 연휴와 새해 연휴, 아이의 이른 방학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일상이 무너지니 기존에 잘해오던 글쓰기 루틴도 같이 무너져버렸다. 관리되지 않고 목적의식 없는 시간은 결국 내 것이 아니었다. 결국 지나고 보니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쓰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있어도 글은 못쓰는게 아니라 안쓰고 있었다. 뭐가 문제일까? 이제 글쓰기의 중요성도 효과도 알았고 쓰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왜 안될까?
무질서하고 분주하며 게으른 나의 일상 속에서 나는 깨어있기보다는 순간의 시간의 크고 작은 일들 속에 휩쓸려갔다.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즉각적이고 소비적인 것들로 내 삶을 채우니 글을 쓰면서까지 나누고 싶은 거리가 없었다. 글을 쓸 목적도 내용이 없었다.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만 남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쓰기가 멈췄다.
과거에 나의 실수, 연약함, 게으름은 이제 25년도의 지난 간 시간과 함께 같이 흘려보내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세운 목표와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과거에 미숙하고 집중하지 못했던 나를 이해해 주고 놓아주자. 계속 내 안에 드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자책, 무력감이 나를 흔들어 댈 때도 일단은 그냥 꾸준히 써보자. 간절하게, 꾸준하게, 진실하게!
놓쳐버렸던 새벽 시간(혹은 꼭 새벽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고요한 시간)을 다시금 찾고 세팅해 보자. 글이 써지든 그렇지 않든 앉아서 써 보자. 정 안되면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듯 하다.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해서 상황이 좀 더 평안하고 안정적일 때, 글이 잘 써질 때는 좀 더 여유분을 써 놓자. 내 상황과 마음이 글을 쓰기에 너무 벅차고, 마음이 부칠 때에 미리 대비한 글들로 한 두 번쯤은 넘어가 보자.(우리에게는 예약 발행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새벽시간이 매력적인 것은 우리 삶의 여러 변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만날 수 있고 보장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삶이 글과 영감이 충만해지기 위한 노력들을 다시금 시작해 보자.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책을 집어 들고 읽어가는 일인듯하다. 동네 서점을 가든, 도서관을 가든, 집안에 쌓아두었던 책을 집어 들던지 간에 다시금 내 안에 영감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시작해 보자. 확실히 내 안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고픈 말도 없을 때 나는 글을 쓸 동력을 잃게 된다. 무언가가 내 안에 채워지고, 글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비로소 앉아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글쓰기 위해 취업한 사람처럼 행동해야겠다. 직장인처럼 9 to 6까지는 아니어도 내 본업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정체성을 박아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하게 써보는 것이다. 때로는 내키지 않을지라도. 그토록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지금 이 일이 직장에서 주어진 기회처럼 최선을 다해보자. 지금 내가 매일 하는 이 글쓰기를 통해 길을 열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언제 열릴지도 모른다. 묵묵히 글을 쓰는 이 삶을 간절하고 성실하게 감당해 보고, 언제가 열릴게 될 수 있는 일할 기회들을 하나씩 준비해 가보자. 꼭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종류의 일이 아닐지라도 글을 쓰는 이 행위 자체가 내 삶과 내면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을 글을 써보니 알겠다. 글쓰기를 통한 이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나의 삶과 커리어에 반드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부족하지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글을 쓰기 이전의 나와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다른 '나'라는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나의 에너지와 말투,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과 환경은 동일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역동과 성장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었고, 주변의 말이나 환경의 흐름에 이전보다 덜 동요하였으며, 글을 쓰는 공간을 통해서 내가 나누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 언제나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밑바닥까지 공감해 주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더 이상 어떤 사람이 크게 부럽지도 않고, 홀로 외롭지도 않다. 시간이 남았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안절부절못하지도 않으며, 나 혼자 도태되는 것인가 싶어 나를 몰아치지도 않는다. 일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도 덜하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렇게 글을 써 가는 것이 귀하고 감사하다. 글쓰기가 나를 더 성숙하고 안정적인 사람으로 키워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새해에는 다시 같이 글 좀 써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