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몇 번 갔었습니다만

엄마의 독서 2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수아

뉴욕과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나 보다. 미국을 제 집 드나들 듯 넉넉한 형편인 것도 아님에도 살면서 세 번이나 다녀왔다. 첫 번째는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에서 단기선교 훈련차 9개월가량을 뉴욕에서 지냈고, 졸업을 하고 나서는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 참여차 뉴욕의 주요 기관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었고, 마지막은 아이를 낳고 가족들과 함께 2주간 뉴욕을 다녀오게 되었다. 어찌 그리 된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가고싶었지만 이전에 가보지 못했던 다른 나라나 도시도 많은데 뉴욕만 갈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졌다. 그곳에서 내가 집중해서 무슨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은 뉴욕 물가 앞에서 다양하고 깊은 경험을 한 것도 아니어서 남들이 먼저 묻기 전에는 뉴욕에 있었다는 사실을 자세히말하진 않았다.


대학생 시절, 어설픈 뉴요커(?)로서 나는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가 왔을 뿐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해서도 깊게 잘 알지는 못했다. 뉴욕을 생각하면 너무 춥고 지저분하고, 비싸고, 힘들고, 배고픈 나라라는 생각뿐이었다. 무엇하나 배부르게 먹을 수가 없었고, 너무 비싸서 편하게 살 수가 없었고, 그 도시의 화려한 상점들과 번쩍임은 돈 많은 부자들만을 위한 도시 같은 느낌이어서 소외감이 들었다. 나중에 뉴욕을 떠나게 될 때는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가는 나 자신이 너무 억울하고 아쉬워서 속으로 이런 기도를 했었다.


" 이대로 떠나기가 너무 억울하니 죽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꼭 다시 한번 뉴욕에 오게 해 주세요. 그때는 뉴욕이 좋은 곳도 있다는 걸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뉴욕도 살만한 도시이고,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를 저도 경험하고, 뉴욕에 대한 저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바꾸고 새롭게 해 주세요. "


유치한 기도 덕분이려나. 재작년에 나는 20년 만에 사랑하는 딸, 남편과 함께 뉴욕땅을 밟았다. 여전히 넉넉하지는 않은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호텔에서 잠을 잘 수도 있었고 돈을 내고 필요한 관광들을 하거나 뮤지컬을 볼 수도 있었다. 지인의 초대로 멋진 레스토랑도 가보고 센트럴 파크의 아름다운 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하기도 했다. 나의 어설픈 기도도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제 내게 뉴욕은 더 이상 외롭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곳만이 아님에 감사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어쨌든 뉴욕은 내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땅이다. 눈물과 기쁨,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인 브링리가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브링리가 일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의 지하철, 센트럴 파크, 퀸즈, 브루클린 지역을 언급할 때마다 그곳들이 떠올랐다. 남 이야기 같지 않았고, 나도 거기 있었어요! 라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뉴욕에 대한 공감들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뉴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 하나도 바로 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지금은 입장료가 유료로 바뀌었지만, 내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공식적인 입장료는 무료였으며, 원하는 사람들만 자발적으로 기부금처럼 돈을 내는 방식이었다. 가난한 대학생들도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서 고맙고 좋았다. 미술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 거대하고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알아볼 안목은 없었다. 그냥 큰 나라의 도시답게 박물관도 엄청나게 크고 멋진 작품들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정말 볼만하는구나 그런 느낌까지였다.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이 책 속의 브링리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 힘들었던 뉴욕에서의 삶 속에 예술이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고상한 사모님들이나 전공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네 평범한사람들도 함께 음미하고 공유하며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전에 만났던 지인이 뉴욕이 가진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고 싶었던 이유가 문화생활에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다양하게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있는 행사나 공간이 있어서 미술이든, 음악이든언제든 가서 보고 들을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다는 것이다.


예전에 유럽여행에서 만났던 여행사 가이드님도 자신이 미술을 전공했는데 크고 멋진 박물관들이 무료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은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의 삶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말하셨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거장들의 유서 깊은 예술작품들을 아무 때나 원하는 때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이방인의 삶을 이겨낼 힘과 위로를 얻는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의 '브링리'와 같은 사람들이 MET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다른 모양의 삶으로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고단한 저마다의 삶의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채로 자신만의 치유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브링리가 형을 잃은 아픔을 미술관 속 작품들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이 내게 참 인상적이었다. 예술은 삶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술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예술이 되었다. 우리의 처절하고 가슴에 사무친 상처와 아픔이 곧 작품이 되었다. 결국 예술작품이나 우리의 인생이나 삶을살아가는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가만히 존재해 있는 그 예술작품이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서 그 작가의 혹은 그 작품들 안에서 우리네의 인생을 엿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인생과 모습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브링리가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 직을 사퇴하기 직전, 자신의 마음에 품고 갈 작품 하나를 신중하게 고르는 장면도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브링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그림을 통해서 형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 지독한 상실과 슬픔에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주변 사람들, 상대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며 서로를챙기며 마음을 쓰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본다.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위로와 힘을 얻고 자신만의 보물처럼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내가 또다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 갈 기회가 살아생전에 있을까 싶다. 만일 기적적으로 내가 죽기 전에 그곳에 다시금 가게 된다면, 이번엔 나도 브링리처럼 내 마음속에 평생 품을 만한 작품 하나를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 거대하고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남들이 유명하다고 말하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그림이나 조각 말고, 내 삶을 꼭 닮은 그런 작품하나를 꼭 만나고 싶다.


생각해 보니, 꼭 MET를 가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어느 전시나 미술관을 가더라도 나도 브링리처럼 그 방식을한번 적용해 봐야겠다. '그때의 나를 꼭 닮은 작품하나를 마음속에 품는 일' 말이다.


그렇게 위로를 받고 다시금 살아갈 갈 힘을 얻고 미술관 밖을 향해 나아가는 브링리처럼, 나도 성장하며 바깥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물러설 수 없는 절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