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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돌고래 Apr 01. 2021

Van 06. 아무도 모르는 국민 칵테일

캐나다인은 무엇을 마실까

‘시저(Caesar)’를 처음 만난 건 시큼한 효모 냄새를 풀풀 풍기는 맥줏집에서였다. 맥주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코스터로 어지럽혀진 우든 바.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생맥주 디스펜서. 앉고 나서 보니 왠지 시저를 만나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우리의 만남을 다른 날로 미뤄야 하는 걸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전형적인 펍에서 맥주의 유혹을  참고 시저를 찾았다. 다행히도 바텐더는 시저를  알고 있었다.  외에도 시저를 찾는 이가  되는 걸까 아니면 캐나다 바텐더라면 시저 정도는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걸까.


"Enjoy!"


바텐더는 샐러리 스틱 하나가 꽂힌 선명한 붉은색 음료를 내밀었다. 짭짤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땡큐..."


입으로는 자동적으로 땡큐를 외쳤지만 눈으로는 음료를 미심쩍게 노려봤다. 이거 칵테일이 맞기는 한거야? 확인차 샐러리로 음료를 휙 한번 휘저었다. 그러고는 바로 한 모금 쓰읍 들이켰다. 오만상이 찌푸려지는 맛이었다. 이런 음료를 "enjoy"하라고요? 시저는 갈리아를 제패하고 정권까지 장악한 로마의 장군처럼 인생의 짠맛, 매운맛, 쓴맛을 보여주려 태어난 독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첫 한 모금의 강렬한 쇼크가 가시고 나니 또다시 한 모금이 당겼다. 그러고는 다시 또 한 모금. 수년간 매운 떡볶이로 단련된 나의 혀는 이미 입안의 고통을 즐기는 경지에 올라있었다. 시저 또한 떡볶이처럼 중독성이 강한 독한 맛이었다. 마시면 마실수록 재료의 향이 겹겹이 느껴졌다.


먼저 주재료인 싱싱한 토마토의 시큼한 향과 보드카의 강한 쓴맛, 그리고 조개즙의 맛이 느껴졌다. 조개즙이 비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바지락 국물과 소주처럼 어울렸다. 그다음으로는 우스터소스의 감칠맛과 후추와 타바스코 소스의 톡 쏘는 매운맛이 입안을 감쌌다. 자극적인데 계속 먹고 싶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으로는 레몬즙의 상큼함이 뒷맛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다. 자칫 잘못하면 망치기 쉬울 것 같은 이 비율을 완벽하게 맞춘 바텐더가 다시 보였다. 맥줏집에서 칵테일을 찾다니 중국집에서 김밥을 시킨 격이 아닌가 하고 후회했는데,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시저는 해장술로도 인기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간 재료들이 하나같이 식사에 어울릴법한 것들이다. 칵테일이 아니라 차갑게 식은 국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봉골레 파스타에서 영감을 받아서 조개즙과 토마토를 넣고 만든 칵테일이라고 한다. 오늘처럼 간단하게 샐러리 스틱이나 올리브를 장식으로 곁들인 시저도 있지만 닭 날개, 미니 햄버거, 튀김 안주 등 여러 종류의 안주가 푸짐하게 술잔 위에 올라 나오는 시저도 있다고 한다. 기름진 음식이 잔뜩 올라간 술잔을 홀짝이면 분식집에서 오징어튀김, 김말이, 야채튀김 등을 종류별로 시켜놓고 하나씩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 못지않게 뿌듯할 듯하다.


이 생소한 칵테일을 주문한 이유는 시저가 사실 '캐나다 국민 칵테일'이라 불릴 만큼 인기가 대단한 음료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밖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술을 캐나다 국민들은 매년 4억 잔 이상이나 마셔댄다. 나에게 시저를 만들어준 바텐더도 아마 시저를 즐기는 '시저파'가 아닐까.


친절한 이미지의 캐나다 국민의 국민 칵테일이 어째서 이런 독한 맛인지 궁금했었는데 사실 별다른 이유 없이 캐나다 국민들도 나처럼 어쩌다가 시저를 맛보고는 그 깊은 매력에 빠져서 끊임없이 먹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자기네들끼리만! 이쯤 되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단지 시저의 맛이 독한 것인지 아니면 시고 매운맛을 즐겨 찾는 그들이 더 독한 것인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캐나다 여행이 끝나고서 돌아와서  메뉴의 '시저' 가끔 눈에 띄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먹은 시저의 맛이 생각나서 한두  시켜 먹은 적도 있지만  후에는 시저를 아예 주문하지 않게 되었다. 강렬한 색과 향은 비슷할지 몰라도 맛은 시저를 국민 칵테일로 마시는 캐나다 본토인이 만들어준 시저와는 견줄만한  못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저를 먹으려면 다음 캐나다 여행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다음에 또 만나요, 시저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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