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의 신앙과 전통
몬트리올은 ‘세인트 시티 (성자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졌다. 실제로 길 이름들이 경쟁하듯 너도나도 ‘세인트’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세인트폴 거리’같은. 성자의 도시에 성당이 빠질 수는 없다. 몬트리올에는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아니, 캐나다라는 나라가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성당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나도 빼놓지 않고 노트르담을 여행 계획에 넣었다.
몬트리올의 노트르담은 두 개의 탑을 자랑하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면과 쌍둥이처럼 닮은 모습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푸르스름한 빛이 천장에서 쏟아져내렸다. 높은 천장에 뚫린 넓은 장미꽃 무늬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었다. 구름 사이로 하늘에서 내리는 빛 같았다. 넓은 내부에는 넋이 나가게 화려한 금 조각상들과 스테인드글라스, 페인팅 장식들이 빼곡했다. 고딕 양식 성당의 가장 완벽한 표본이었다.
“이게 여기 있는 게 맞아?”
성당 내부를 감상하던 도중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게 성경 설화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 창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긴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소매에 깃털 장식이 달린 모피 옷을 입은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십자가를 쥔 원주민 소녀는 어떤 다짐을 하듯 입술을 꾹 다문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다, 일반 성당과는 달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성경 설화 대신 몬트리올의 선교 역사를 나타낸 그림들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당시 원주민들의 전통의상과 삶을 독특하게도 전통적인 가톨릭교의 상징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었다.
노트르담의 의외성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레이저쇼까지 볼 수 있었다. 거룩한 성당에서 레이저 쇼라니? 갸우뚱 했지만 줄지어 티켓을 예매하는 사람들을 보니 직관적으로 놓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어서 티켓을 구했다.
쇼 타임까지 가까운 펍에서 시간을 때웠다. 발코니에 자리를 잡고 프렌치프라이에 말캉한 치즈 덩어리를 찢어 올리고 그 위에 짭조름한 그레이비소스를 끼얹은 푸틴을 시켰다. 일반 프렌치프라이보다 훨씬 더 든든한 몬트리올 길거리 음식이다. 맥주와 함께 들이키니 나의 내장이 헤벌레 하고 웃었다.
해가 진 후 공연 시간에 맞추어 다시 성당을 찾았다. 이번에는 창문 밖으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안으로 들어서자 조용히 기도문을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깜깜한 실내에 수백 개의 촛불이 잔잔히 흔들렸다.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성경 설화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드러났다가 서서히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미사를 드리는 의자에 앉아 암흑 속에서 공연을 기다렸다.
성당 정면에 번쩍하고 예리한 빛이 내려쳤다. 군중들이 술렁였다. 짧은 순간 황금빛 제단이 번뜩였다가 다시 암흑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었다가 디즈니 영화처럼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황금빛 불꽃이 이 바닥에서 천장으로 아치를 그리며 솟아올랐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공연 중 성당은 자연의 모습이 되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바람에 쓸려 흔들리는 모습을 세밀히 구현하기도, 꽃이 피는 모습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천장에 평화롭게 구름이 흐르다가도 갑자기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를 맞고 온 성당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릴때는 모두 숨을 죽였다. 때로는 궁전같이 온통 눈부시게 번쩍이는 황금빛으로 변하기도 했다.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과 함께 성당의 장식물들은 더욱 빛났다. 바닥 또한 불빛을 반사해서 몽환적이었다. 낮에 봤던 성당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단언하건대 몬트리올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코스다. 내가 몬트리올 주민이라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너무 자랑스러울 것 같다.
성경 설화 대신 지역 역사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와 예상 밖의 레이저 쇼에서 성당은 성당다워야 한다는 프레임을 깨고 시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트르담의 노력을 보았다. 노트르담이 신앙과 전통을 지켜내는 방법이다. 전통을 이어나가야 할 북미 카톨릭교의 중심지에서 전통을 고집하지 않는 모습에 매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