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속 세계 3대 식물원
화창한 햇빛 아래 분수 물줄기가 크리스털 조각처럼 부서졌다. 길 양옆에 핀 붉은 꽃송이들이 나를 입구로 안내했다. 싱그러운 기분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은 몬트리올 정원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몬트리올 정원은 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에 맞춰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푹 숙인 반면 이제 막 계절의 바통을 이어받은 호박 덩굴은 복스럽게 주렁주렁 달린 주황빛 열매를 자랑했다. 얼마 전 밴쿠버 원주민 식당에서 맛보았던 야생 베리도 발견했다. 대견하게도 철 막바지까지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누가 캐나다 정원 아니랄까 봐 터줏대감 메이플 나무도 보였다. 정원에서 볶은 해바라기씨의 고소한 냄새와 메이플 시럽을 넣고 구운 호박파이의 달달한 냄새가 나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곳곳에 산책을 잠시 멈추고 안락한 피크닉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보드랍고 따스한 오후 세 시의 햇살이 그들을 담요처럼 포근하게 덮어주었다. 마치 정원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마냥 그들의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금방이라도 빨강 머리 앤을 만날 것 같은 따스한 정원도 있는 반면 기이한 판타지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정원도 있었다. 거대한 버드나무 가지 조형물이 전시된 정원이었는데 조형물이 굉장히 특이했다. 굳이 따지자면 집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는데, 풍겨 나오는 기운은 집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체의 그것이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의외로 안은 꽤 아늑했다. 웬 꼬맹이 하나가 나를 따라 아장아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안녕? 너는 이 집이 마음에 드니?” 눈짓을 보내니 꼬마는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도망갔다. 동의하지 않은 숨바꼭질 놀이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몇 번이고 까꿍하고 왔다가 미로 사이로 뒤뚱뒤뚱 숨으러 갔다. 이 아이에게 이 작품은 그저 숨바꼭질하기 좋은 놀이터였다.
구석구석 걷다 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정원 뒤편까지는 감히 가보지도 못했다. 그만큼 몬트리올 정원은 방대하고 예술적이었다. 정원은 사람의 관심과 지원이 사라지면 금세 황폐해지고 음침해진다. 그래서 정원을 가꾸려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건강도 허락되어야 한다. 집에 들여놓는 미니 허브 화분들과도 매번 강제 이별을 해야 했던 나로서는 이 정도 규모의 정원을 가꾸려면 얼마나 큰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눈에 봐도 거금이 들었을 듯한 이 정원은 사실 20세기 중 가장 길고 깊은 경제 위기였던 대공황의 밑바닥 시절에 완공되었다 한다. 그때 이 정원은 주민들에게 팍팍한 삶 속에서 ‘그나마 숨 쉴 구멍'이라고 환영받았을까 아니면 '예술이 밥 먹여주냐'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까. 다행히 대공황이라는 어둠과 혼돈의 시기에도 정원을 만들고 유지해온 몬트리올의 주민들은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듯하다. 이제 몬트리올 정원은 세계 3대 식물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몬트리올 주민들이 여유롭게 책도 읽고 아이와 놀러 오는 최고의 휴식처가 아닐까 싶다.
이 사실에 잔잔한 위로를 받았다. 삶이 팍팍하고 힘들 때면 정원 따위에 쏟을 여유는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때 일 수록 나에게 정원이란 무엇인지 알고 사는 것이 관건인듯싶다. 몬트리올 주민들이 힘든 시기에도 정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내가 힘든 시기에도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위해서 나는 이곳에 여행을 왔나 보다. 몬트리올 주민들이 힘든 시기에도 정원을 가꾸어나갈 수 있었다면 나도 내 인생에서 무언가 하나쯤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자, 이제 정원을 가꾸는 용기를 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