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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돌고래 Apr 20. 2021

MTL 04. 졌지만 지켜낸 도시

퀘벡 시티 당일치기: 국회 의사당

기차 여행은 역시 창가 좌석이 최고다. 새벽같이 일어나느라 무거워진 머리를 차창에 털썩 기대고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컴컴한 지평선 위로 커다란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정면에서 뜨겁게 솟아나는 빛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2 남짓한 짧은 순간에 새로운 하루가 탄생했다. 새것의 설렘이 열차 안까지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해돋이였다. 새삼  열차가 동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몬트리올과 함께 캐나다의 프랑스계 도시 양대 산맥인 퀘벡 시티로 놀러 갔다. 몬트리올 북동쪽에 위치한 퀘벡 시티의 별명은 ‘작은 프랑스’이다. 별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세계에서 가장 큰 영미 국가 안에서 프랑스 정체성을 번듯이 지켜내어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였다.


퀘벡 시티역에 도착해서 보니 몬트리올의 ‘현대적인 프랑스’와 달리 퀘벡 시티의 프랑스는 시간이 멈춰 있었다. 몬트리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고층 건물 하나 없이 모두 담쟁이덩굴이 엉켜 있거나 조그마한 유럽식 발코니가 볼록 튀어나온 빛바랜 벽돌 건물들이었다. 로맨틱한 옛 유럽 분위기를 풍기는 이 도시의 주민들이 부러운 한 편 지금까지 이곳을 지켜온 그들의 고집과 자부심은 남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퀘벡 시티 국회 의사당 외관


퀘벡 시티 대부분의 볼거리는 성곽 안에 있는데 국회 의사당만은 성곽 바깥에 위치해 있다. 중세 시대 성처럼 웅장한 외관에 끌렸다.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 먼저 퀘벡 도시에 대해 배우고 가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해서 의사당 안에 발을 딛게 되었다. 마침 무료 투어를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웰컴! 웨어 알 유 프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미묘하게 낯선 억양을 가진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대저택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혹여 바닥에 스크래치라도 날까 카펫 위를 조심히 걸어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에는 화려한 금박 액자 속에 역대 시장의 초상화가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었다. 분명히 존경심으로 걸어 놓았을 텐데 어색한 차렷 자세에 진지한 표정이 어쩐지 바보스러워 킥킥 웃음이 나왔다.


퀘벡 시티는 본디 원주민 땅이다. 유럽인 중에서는 프랑스인이 먼저, 그 후 영국인이 한발 늦게 정착을 했다고 한다.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은 잘 지낼 수 있었을까. 놉! 특히 프랑스와 영국은 개와 고양이 같은 사이가 아닌가. 이웃 간에 서로 얼마나 기싸움을 해댔을지 눈에 선했다. 대대손손 고유 문화를 지키는 싸움을 이어간 그들의 기 센 후손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어서 퀘벡 시티가 아름답게 유지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퀘벡 시티는 18세기 중반 식민지 전쟁 때 거둔 영국의 승리로 인해 공식적인 영국령이 되었다. 굴러온 영국인이 박힌 프랑스인을 빼낸 것이다. 억울하게도 프랑스계 서민은 영국계 상류층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아니, 억울함을 따지자면 원주민이 제일 억울할듯하다. 그 당시 원주민의 권리는 보나 마나 제일 뒷전이었을 테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땅에 도착한 순서와 정반대의 권력 서열이 세워졌다.


의사당 회의장 의원석에 직접 앉아서 이 설명을 들었다. 당시 퀘벡 주 국회는 엘리트 상원과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하원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푸르스름한 벽의 상원 회의장은 차분하고 건조한 토론이, 붉은색 벽의 하원 회의장은 피 끓는 열띤 토론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의원 회의장은 굉장히 밝고 화려했다


‘의사당 가이드는 프랑스계일까 아니면 영국계일까?’

그의 속마음이 궁금했지만 그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차분하고 공정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서로 다른 민족이 의사당에 모이니 재미있는 애로 사항 또한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시에 프랑스계 하원 의원이 대부분이니 토론은 프랑스어로 나누고 회의 기록은 유일한 공식어인 영어로 번역을 걸쳐서 남기는 비효율적인 일이 태반이었다고 한다.


영국인이 기를 펴고 다니는 동안 원주민들은 고유 글자가 없는 서러움을, 프랑스인은 자신의 글자를 쓰지 못하는 서러움을 겪었던 것이다 (우리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그 서러움!) 다행히 지금은 영어와 프랑스어 둘 다 캐나다 공식 언어이고 현재 캐나다는 영국령이 아닌 연방 국가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주민들의 감정은 조금 나아졌을까? 잘 모르겠다. 1995년에 퀘벡 주를 캐나다에서 분리 독립시키자는 이슈를 가지고 주민 투표가 있었을 때 반대표 50.58%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독립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나는 캐나다가 꽤 평화로운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정작 이 안에서는 분리 독립이라는 큰 이슈가 다루어진 적이 있다니 놀라웠다.


오랜 전통의 퀘벡 도시의 멋과 맛을 음미하기에 앞서 누가, 어떤 과정을 걸쳐 그것을 지켜왔는지, 그리고 이곳 주민들에게 문화유산이 어떤 의미인지 배웠다. 전쟁의 공식적인 승리자는 영국이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국 문화와 프랑스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퀘벡 시티를 보니 프랑스 또한 승리자가 아닌가 싶다. 역사를 알고 나니 평소보다 더 특별한 여행이 될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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