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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돌고래 Apr 27. 2021

MTL 06. 알면 보이고 모르면 느낄수 없는

퀘벡 시티의 숨겨진 감성

따그 따그리드믹컬한 말발굽 소리가 나를 지나쳐 사라졌다. 소리의 주인공인 전통 사륜마차를 쫓아 두터운 성곽문을 통과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퀘벡 시티 도심이다. 퀘벡 시티는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 열풍  본격적으로 한국인에게 인기를 얻은 관광지이다.  역시 종영 후에 책까지 사서 봤을 정도로  빠졌던 기억이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명장면 배경을 직접 감상할  있다니, 기대에 들떠 걸음이 빨라졌다.


관광객들을 위한 사륜마차 체험

 

걸음을 옮기다 보니 사라진 말발굽 소리의 빈자리를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와 채웠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멜로디였다. 프랑스 탐험가 '사뮈엘 드 샹쁠랭' 기념비 뒤에 모습을 반쯤 숨긴 현지인 버스커가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연주 중이었다.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왠지 모르게 처음부터 익숙했던 이 멜로디는 바로 드라마 <도깨비>의 주제곡인 <Beautiful Life>였다! 색소폰 연주로는 처음 듣는데 이 노래에 담긴 감정을 표현하는데 색소폰은 완벽한 악기였다. 퀘벡 시티의 분위기에도 위화감 없는 이국적인 멜로디라는 걸 새삼 느꼈다.

 

주위 관광객들도 비슷한 감동을 느꼈는지 동상 주변에 앉아 연주를 감상했다. 다들 이 곡이 한국 드라마 주제곡이라는 건 꿈에도 모를 거다. 이 노래를 <도깨비> 특유의 몽글몽글한 감성에 연결해서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듯해 흐뭇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나와 눈이 마주친 버스커 아저씨만이 나에게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상 바로 뒤편에 웅장한 샤토 프롱트낙 호텔(Chateau Frontenac)이 보였다. 이 호텔의 이름을 풀어 보자면 프랑스어로 ‘샤토’는 성, ‘프롱트낙’은 17세기 말 퀘벡 시티의 프롱트낙 백작의 이름, 하여 ‘프롱트낙 백작의 성’이다. 호텔은 이름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동화 속 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5성급 호텔의 두텁고 빛바랜 벽돌에는 무게감이, 청록색의 구리 지붕에는 옛 유럽의 멋스러움이 담겨있었다. 중세 시대 귀족이 살았을 것만 같은 이 호텔도 물론 도깨비 촬영지였다.

 

왕과 왕비가 머물 것 같은 샤토 프롱트낙


그다음으로 극 중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 지은탁이 함께 방문했던 '라 부티크 드 노엘' (La Boutique de Noel de Quebec) 크리스마스 장식품 가게에 들렀다. 미리 경고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깨비보다는 지름신을 더 조심해야 할 가게이다. 금칠을 한 유리공예 장식품뿐만 아니라 스누피와 스타워즈 등 캐릭터 장식품까지 남녀노소 취향을 골고루 고려한 장식품들이 입구부터 구석까지 빈틈없이 진열되어 있는데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라 부띠끄 드 노엘 내부. 이곳에서는 '헬로' 대신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인사한다


마지막으로 아기자기한 유럽풍 건물과 은근한 색채감으로 유명한 '쁘띠 샹플랭' (Petit Champlain) 거리에 들렸다. 이 골목은 아기자기한 편집숍, 레스토랑, 노천카페와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숍들이 즐비하다. 세련된 간판과 문 앞에 걸어둔 화분들을 보면 특별히 살게 없더라도 안에 뭐가 있는지 괜스레 기웃거려보고 싶어진다.

영화 속 장면 같은 쁘띠 샹쁠랭 거리

 

샹쁠랭 거리 중간 중간에는 정교한 벽화도 보였다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웬 대형버스 하나가 앞에 나타났다. 안에 사람을 찍어내는 기계라도 있는 걸까. 빨간 깃발을 든 가이드를 선두로 버스는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뱉어 내었다. 아담해서 매력이 있다는 '쁘띠 (작은)' 골목이 한순간에 시장 골목이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은근한 수채화 색감으로 유명한 이 거리를 하필이면 형광색 등산복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퀘벡은 원래 관광도시라지만 ‘혹시 <도깨비>의 한류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이 더 많아진 거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우리나라가 퀘벡시티의 경제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들 덕을 좀 보기도 했다. <도깨비>에서 한국에서 퀘벡시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마법의 문이 있는데 그 문이 바로 이 거리에 있다. 형광색 등산복 그들이 '어 여기다!' 하고 돌 담에 콕 박힌 빨간 문의 문고리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던 탓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모르고 지나가면 놓칠 만한 이 작은 문을 귀신같이 찾아 사진을 찍는 이들은 죄다 공유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한, 중, 일 관광객들이었다.


바로 이 문. 문과 창문을 원색으로 칠해놓은 가게들이 많아서 바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사진: TvN)


반면 지나가는 서양인 관광객들은 도대체 '이 문이 뭐길래'하고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건축물과 풍경, 그리고 한국 멜로드라마 특유의 말랑말랑한 서정적 감성. 같은 여행을 하고 있지만 이 둘의 조합이 만들어낸 독특하고 몽환적인 퀘벡 시티의 분위기를 그들은 느낄 수 없다는 것을. 퀘벡 시티만의 감성이지만 정작 현지인은 느낄 수 없는 한국의 정서가 이곳에 있었다. 


알면 보이고 모르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이 감정은 내가 말로 전달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눈에는 퀘벡 시티 랜드마크마다 도깨비 속 장면이 보였는데 그들에게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K-드라마를 즐기는데 ‘여행 갔을때 현지인은 모르는 숨겨진 감성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뭔가 그럴싸한 멋진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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