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빅브라더 블록체인》전에서
"도슨트 선생, 내가 진짜 문외한이라 이런 무식한 말을 할 수도 있는데, 한번 내 말을 들어봐요. 도슨트 선생이 이렇게 설명해주고 이야기 해 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듣고 보면 다 알거 같아. 아! 그랬구나 하면서 말이지! 그런데 말이에요. 예술이라는 건 꼭 이렇게 설명 없인 못알아 듣게 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사람들이 재미있을리가 없잖아. 사람들이 꺼려하게 만들어 놓고선 사람들이 예술에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 우린 돈도 못벌고 가난하고 힘들다 하잖아? 난 왜 이렇게 설명없인 볼 수 없게 만드는 건지를 모르겠어. 도슨트 선생은 그 답을 알아요?"
전시 해설 시간 내내 누구보다 깊게 경청하셨던 지긋한 연세의 할아버지께서 해설이 끝난 후, 조용히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적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반말을 섞어 사용하셨을 뿐(그야 제가 한참 어리니까요) 모든 제스쳐나 에티튜드는 절 존중하시고 있음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생생한 경험대로 그대로 썼을뿐, 관람객 분에 대한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할아버지는 도저히 미술관이라는 곳은 노력해도 노력해도 발 붙이기 어려운 곳이라 하시더라고요.
다음 해설 타임까진 한 시간 정도 남았고, 할아버님도 시간이 있으시다길래(일행도 없이 혼자 오셨고요) 전시관 안 체험테이블(체험이 없는 날이었습니다)에 앉아 할아버님의 말씀을 들어보았어요. 할아버지는 일흔 다섯이며, 원래는 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미술시간을 참 좋아했는데 교직에 들어온 이후 그림 그릴 시간을 좀처럼 내기 어려우셨다고. 은퇴 후 화실에 등록을 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게 그렇게 재미있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실 원장님 그림을 보니 그렇게 사실적으로 잘 그리는 양반이 작품이라며 그려낸 것은 기괴하기 짝이없었다고. 이게 뭐냐......라는 당신의 물음에 원장님은 전시도 많이 보시고, 표현하는 방법이 참 많다는 걸 봐 보시라 했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큰 미술관 중심으로 관람을 다니는데 혼자 관람을 하면 그 큰 과천 국립현대 미술관도 다 보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체 이게 뭔가......싶은 생각만 드셨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결정적 한 마디의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도슨트 선생, 선생은 미술관에서 어떤 작품을 딱! 보면 그게 뭔 소리를 하고 싶었는지 바로 알 수 있으신가?"
"선생님(저는 보통 1:1로 뵐때면 선생님이라 상대방을 칭합니다), 그럴리가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저도 만일 제가 공부를 하나도 안한 전시장에 툭 던져 놓고 저보고 설명하라고 하면요, 한 마디도 못할 거에요. 혹시나 운이 좋아 아는 작가가 걸리면 모를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오늘 2층 전시에서 설명한 작품들은 어떻게 다 알고 그렇게 설명하는 거요?
"보통 전시가 기획이 되면 어떤 작가가 오는지, 어떤 작품을 가져오는지, 전시의 큰 주제는 무엇인지 등에 관한 자료를 받고 스터디도 하고 교육도 받습니다. 그럼 도슨트들은 그 전시의 맥락이라는 큰 틀에서 그 작품을 해석해보고 그간 작가의 히스토리도 공부하면서 관람객들에게 감상의 가장 좋은 포인트를 찾으며 일종의 대본을 씁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기에 설명 드릴 수 있는 거지, 그냥 저보고 아무거나 딱 보고 설명해라 한다면? 와우, 전 생각만 해도 그 상황이 무서운데요 선생님."
할아버지 관람객은 도슨트같은 사람들은 뭐든 보면 척! 다 아는줄 아셨다며, 공부해서 알고 설명드릴 수 있다는 것에 약간의 안도감(?) 같은 걸 느끼시는듯 했습니다. 할아버님과 할아버님 주변사람들만 모르겠다 하는 줄 아셨다고 해요.
"아까 <은신처>같은 작품 말이에요, 정말 인상깊었거든. 정말 맞다 싶었어. 그렇지, 왜 요새 TV보면 그렇잖아. 인터넷 세상이 된 이후로는 비밀이라는 것도 없고, 과거라는 것도 없고, 과거청산이라는게 안되고 말이지. 아 그런걸 연결되고 싶어하면서도, 또 노출되는게 꺼려질 수 있겠구나. 설명듣고 보니 참 잘 표현한거야 그걸. 그런데 왜 이걸 우리는 그냥 보면 이해를 못할까. 그리고 그냥 그렇다. 말하면 될걸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어렵게 푸냔 말이지 내 말은."
"설명을 들으시고 그 표현을 이해하신것도 너무나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그런데 이건 짧은 제 소견입니다만 맞습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처럼 '현대인들은 ~~~~ 그런 모습이 있다.'라고 말로 설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직관적이고 좋은 방식인데요, 우리는 때론 시를 읽잖아요. 그런 팩트가 그대로 쓰여져 있는 신문기사가 아니라 은유적으로 이야기 하는 시의 방식처럼 은유적으로 시각화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은신처>와 같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러네요. 모든 글이 논문 같을 순 없는 것 처럼. 모든 시각예술이 다 사진 같을 수는 없는 거겠네요. 그런데 도슨트 선생, 그러면 말이야. 이런 전시장 올 때 도슨트 설명을 안듣고 감상하려면 미리 다 작가랑 작품 공부하고 와야 하나?"
할아버님의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저도 참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이 지점이 전시 도슨트를 준비하면서 제가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지점이거든요. 작가에 대한 어디까지를 이야기 하고 말씀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지점과도 겹치는 문제였습니다.
"네, 선생님 이게 참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저도 제가 도슨트로서 동시대 미술을 다룰 때 저는 무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늘 고민하는데요. 전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가끔 드라마 보다보면 중간부터 관심이 가는 드라마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앞의 회차를 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저 내용은 대체 뭐지?' 싶은 지점들이 생기고요. 그래서 전 도슨트를 할 때, 제가 드라마 앞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전달한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앞의 이야기 요약본을 듣고 나면 다음 회차 드라마를 볼 때 의문 없이 보게 되는것 처럼 말이죠. 그래서 가급적 그 작가의 전작이나 흐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때는 전달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을 만나고 혹시 다른 전시장에서 그 작가의 다른 신작을 또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땐 '아 이 작가가 이 선상에서 이번에는 이런 이야길 이런 방식으로 하는구나'라고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예를 들어 오늘 홍민키 작가의 작품의 경우, 그간 홍민키 작가는 영상매체를 사용해서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도 하고, 그걸 또 공론화 시키는 작업들을 하는 작가였음을 말씀드리면 다음에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 이번에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져왔을까를 유심히 살펴보고 언어 유희(이번 작품에서는 '깜소'라는 팬의 애칭으로 '호구'를 표현했습니다. 깜소는 까만 소입니다. 까만 소는 한자로 흑우, 흑우를 여러번 빠르게 말하면 호구가 됩니다) 를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전시를 보러 갈 때마다 모든 작가를 공부하고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잖아요. 다니시면서 유독 마음이 간다, 알고 싶다 하는 작가가 있다면 히스토리도 한번 살펴 보시고 예전 작품들을 보시고 직접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아주 생소한 작가일 경우라면 오늘처럼 도슨트를 이용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볼 수록 재미는 있어서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고 하셨던 할아버님의 말씀에 엄지척을 보내며 이제 곧 멋진 비평까지 하시게 될 것이라고, 많이 찾아와 달라 말씀드리며 인사 했습니다. 할아버님은 모자를 벗으며 멋지게 인사하신 후 미술관 문을 나서셨고요. 애호가 한분이 더 탄생할 것 같은 두근거림이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작은 탄식도 나왔지요. 미대 입시를 준비했었고, 대학시절 제도권 안에서 아카데믹한 교육을 듣고 감상을 할 기회를 가지며 전시장을 익숙하게 오고 갔던 전 어쩌면 이 사회 안에서 소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럼에도 사실, 저 또한 여전히 어렵습니다) 소수에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세계'가 다수에게는 '꼭 이렇게 못알아 듣게 해야 해?'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들만의 리그'로 가려져 있는 이미지였을 거란 걱정.
고민들의 지점이 방점처럼 딱딱 찍히던 할아버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물 한 잔을 마시고 숨을 돌렸을 때, 시계는 오후 3시 45분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곧 4시 도슨트 타임이 시작되는 시간이었어요. 마이크를 장착하고 이미지를 담은 패드를 들고 전시장 입구로 내려갔습니다. "잠시 후 4시 부터~" 안내 방송이 들려옵니다. 한 명의 애호가를 더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기대감, 영화처럼 누구나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길 바라는 기도를 담아 전시 서문 앞에 섰습니다. 제가 그 접점이 과연 될 수 있을지. 저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일지. 정답없고 어렵고 애매모호한 저의 일은 동시대미술을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 마저도요.
《빅브라더 블록체인》
2024.03.21 - 2024.08.18 백남준아트센터 2전시실
참여작가 : 권희수, 삼손 영, 상희, 이양희, 장서영, 조승호, 휘, 홍민키, 히토 슈타이얼
*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소개글을 가져왔습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를 예언하며 감시와 통제로 얼룩진 암울한 근 미래를 묘사했다. 35년 후 백남준은 1984년의 새해 첫날을 오웰에게 응답할 최적의 기회로 보았다. 백남준은 미래에 대한 경고와 화려한 쇼를 오가며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는 위성 쇼를 전 세계에 선물하며 “굿모닝 미스터 오웰, 당신은 절반만 맞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24년, 우리도 백남준을 따라 동시대 기술 환경으로부터 어떠한 미래를 읽을 수 있을지 답을 찾고자 한다. 《빅브라더 블록체인》은 블록체인으로 상징되는 다가올 기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블록체인은 분산된 원장 시스템에 기반하여, 중앙 서버나 중개자를 거칠 필요없이 정보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빅브라더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블록체인은 공동체 안에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기록하고 공유하는 기술을 지향한다.
《빅브라더 블록체인》에 참여한 작가들-권희수, 삼손 영, 상희, 이양희, 장서영, 조승호, 홍민키, HWI(휘), 히토 슈타이얼은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섭외했던 뉴욕과 파리의 사회자들, 로리 앤더슨과 피터 가브리엘, 존 케이지, 오잉고 보잉고, 머스 커닝햄과 같은 작가들의 미래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들의 작업은 이미 본듯한 미래가 반복되는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한편, 각각 춤, 노래, 사운드, 미디어, 기술, 게임, 노동에 대한 전망을 그리고 있다. 참여작가들은 미래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최초의 블록을 형성하며 이 블록은 네트워크에 있는 또 다른 블록에게 전송된다. 새로운 블록들은 데이터를 직접 주고받는 P2P 동료 즉 전시를 경험하고 공유하는 관객이다. 이들은 최초의 블록에 담긴 정보를 공유하고 분산하는 역할을 하며 여기에는 공동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위성으로 시공간이 압축되어 버린 새로운 인터넷 시대였다. 나아가 기술의 용도변경이 가능하다는 희망이었다. 우리는 백남준이 위성을 축제와 예술의 도구로 사용하며 정해진 길을 벗어나 기술 미래의 다른 경로를 상상했다는 것을 돌아보아야 한다. 미래에 대한 현명한 답을 구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 여전히 유효한 예술이 지닌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