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테싯그룹 <Morse ㅋungㅋung>
2024년 봄, 성수 연무장길의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 전시장에선 재미있고 특별한 전시가 있었습니다. 전시 관계자들끼린 귀엽게 '때둥때반'이라고 줄여서 부르던 전시,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란 전시였죠. 기획자 분들은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성수라는 지역성과 전통 음악, 그리고 그 관계선상의 현대미술을 한 데 엮어 보여주는 재미있는 전시였습니다. 성수동이란 동네는 어떤가요? 겪으면 겪을 수록 '와 여긴 정말 특이한 동네다'싶습니다. 수 많은 팝업 스토어가 우후죽순 문을 열었다 문을 닫고, 온갖 트렌드의 중심을 다 갖다 놓은 듯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 하는 공간이 늘어나기도. 언제나 뽀얀 인테리어 공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가 가득하고 인도가 거의 없는 좁은 골목길에 사람은 넘치는 동네. 전시 기획단은 그 곳에서 빠른 트렌드를 '절대 놓치지 않으리'란 마음이 드는 동시 '나는 나의 속도대로 살어리랏다'는 마음이 공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에 빠졌다고 하죠.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그 고민 속 '나만의 의미있는 장단은 뭘까?'를 찾아가다 이 전시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전통 농악에서 기본적인 음악적 틀을 만들어 냈던 '장단'은 서양음악의 리듬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것과 완전히 같진 않죠. 또한 장단은 '호흡'으로써 들숨과 날숨이 갖는 에너지 흐름이라고도 합니다. 삶과 놀이의 일부로 연주되던 민속 음악에서 더 두드러졌던 이 장단을 주제로 잡은 이 전시에서는 김진곤(전통 장구 제작 장인), 뭎, 박지원, 서민우, 이동훈, 임선빈(전통 북 제작 장인), 태싯그룹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장단의 즉흥적인 변주와 상호작용을 통한 연결, 유연함, 다양한 속도감, 호흡을 재료 삼아 작업한 작품들을 보여줬는데요. 전통, 공예, 조각, 회화, 사운드, 미디어 등 다양한 감각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 속을 유영하며 '나만의 장단'을 '나에게 꼭 맞는 삶의 장단'을 고민하게 되는 전시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오디오 비주얼아트 그룹, 테싯그룹의 작품 <Morse ㅋungㅋung>이 있었죠.
<Morse ㅋungㅋung> 작품 앞 의자에 앉아 영상을 바라보고, 또 그 리듬을 듣다보면 누구나 묘한 기분에 빠집니다. 모스기호는 '긴소리, 짧은 소리, 침묵' 이 세 가지로 언어를 표현합니다. 한글은 '천, 지, 인'으로 이루어져있죠. 테싯그룹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서로 대치시키 새로운 사운드를, 오디오 비주얼을 만들어냈습니다. 영상에서는 '쿵'이라는 글자를 완성 시켜 나가려는듯 글자들의 요소들이 나타났다 회전되었다 획들이 하나씩 첨가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붉은 점으로 이루어진 글자들이 일정한 규칙이 있는 듯 없는듯 정확한 매커니즘을 알 수 없게 리듬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글쎄요. 전 음악에 대한 이론은 거의 전무하다 시피한 문외한이지만 음악이라기 보단 어떤 사운드, 그저 소리 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곡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작가들의 인터뷰에서 '사운드를 하나의 장르화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작가들도 역시 하나의 완결된 곡이 아닌 사운드로 인식하는 듯 합니다.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붉은 점들이 만들어 내는 글자들의 리듬과 움직임을 바라보며 사운드와 영상이 함께 만들어내는 공연에 빠져듭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11분 정도의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집니다. 몰입도가 높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시장에서 만난 두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들의 반응은 참 특별했습니다. 도슨트를 진행할 때 영상, 미디어 작품을 만나면 그 러닝타임 동안 함께 모두 보지는 않습니다. 짧게 바라보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진행한 후, 도슨트 종료 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감상해 보실 것을 권하게 되죠. 그 두 분은 도슨트를 주의깊게 다 들으신 후 테싯그룹의 작품 앞에 앉았습니다. 저도 주변에 서서 테싯그룹 작품 근처에 있었던 미석 박수근의 판화를 다시금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지척의 거리라 두 분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난 이런 소리 매일 들어. 가끔 여러대의 기계음을 공간 가운데서 듣고 있으면 음악 소리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꼭 지금이 그런 순간 같아."
"우리 일어날래? 난 이거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안좋아. 눈물 날 거 같아."
"아......니 기분 왜 안좋은지 알거 같아. 그래 너 전에 그런 말 했었네. 일어나자. 오랜만에 놀러 나온건데 우울해지지 말고. 일어나."
"어 나갈래. 나가자."
대체 무슨 일을 하시길래 한 분은 이런 생경한 소리를 매일 듣는거며, 한 분은 이 작품이 왜 눈물이 나게 싫으신건지. 이건 대체 무슨 소린지. 궁금한건 또 못참는 성격이라 붙잡아 묻고는 싶은데 우울해질까봐 빨리 나가시겠다는데 그런 두 분을 잡는 것도 아닌거 같고. 그래서 전시장 밖을 나가시는 두 분 뒷모습만 우두커니 바라봤었죠. 그러다 저도 곧 로비로 나갔는데 두 분이 로비에 앉아 구비된 전시 관련 자료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전통 북을 메우는(가죽을 나무 통에 씌우는 과정)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계셨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두 분이 뒤를 돌아보셨을 때 "저기......"말을 걸며 두 분을 세웠습니다.
"제가 아까 우연히 두 분이 테싯그룹 작품 보시며 나눴던 말씀을 들었는데요, 혹시 작품 관람에 불편하신 부분이 있으셨을까요? 뭔가 전시물이나 디스플레이에 불편함이 있으셨을까요?"
"아, 아니에요. 전시 재미있게 봤어요. 그냥 저희가 저런 영상이나 소리에 좀 불편한 경험이 있어서."
불편한 경험이 있다는데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에 더 사연을 여쭈면 안되겠다 생각하곤 대화를 정리하려는데, 작품을 보고 눈물이 날 거 같았단 관람객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슨트님, 우리가 이상한건가요? 아니면 남들이 이상한 건가요. 도슨트님이 설명하실 때, 대부분 관람객 분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며 보신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전 되게 불편했던 게. 꼭 심전도 기계 소리나 영상 같잖아요. 다른 분들은 그런 생각이 안드실까요?"
"심장...심전도 기계가 생각나셨다고요? 아, 말씀 듣고 나니 그런 이미지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전 그런 생각을 못했었네요."
그 때, 옆에 계신 친구분이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전 간호사에요. 중환자실 근무를 오래했는데, 중환자실에서 환자분들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기계들이 다 일정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그래프 같은 이미지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전 그걸 가운데 데스크에서 듣고 보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렇고. 말해도 돼?(친구가 고개를 끄덕임) 이 친구는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임종실에 마지막에 계셨었는데, 그 때 저 기계 소리가 이 친군 무서웠대요. 아마 그게 떠올랐나봐요. 야, 그런걸 떠올리는 사람은 너랑 나 밖에 없어. 우리가 이상한거지 왜 남들이 이상한거니?"
당연히 누구나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감상이나 느낌을 가지실 수 있다고. 저 또한 남들과 전혀 다르게 경험하는 작품이 있다고 말씀드리며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테싯그룹의 <Morse ㅋungㅋung>으로 가 보았습니다. 11분을 온전히 앉아서 바라봤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그래픽 게임이나, 테싯그룹의 예전 작 <훈민정악>과 같은 작품이 연상되며 보았던 <Morse ㅋungㅋung>이었는데. 관람객 분들의 그 말씀을 듣고 난 직후여서 인지 엄마가 수술을 막 마치고 입원실로 돌아오셨을 때의 모습, 하얀거탑 슬의생과 같은 메디컬 드라마에서 본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치더라고요. 그리고 저 또한 재미있고 흥미롭게 바라봤던 작품이 그 후 일 주일 정도는 두렵고 불편한 작품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곧 돌아왔지만요.
"우리 작품을 사찰 처마에 걸려 있는 풍경으로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철로 만들어졌고 흔들리면 소리를 내는 구조물까지 만드는 게 저희의 영역이죠. 그리고 바람이 불어 얼마큼 흔들릴지, 어떤 소리를 낼지를 만드는 건 바람의 영역. 즉 우리가 첨가한 무질서의 영역입니다."
테싯그룹이 그들의 작업을 설명한 인터뷰 영상 속에서 했던 말입니다. 일정한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관중들과 호흡하면서 변주가 가능했던 우리의 장단, 바람으로 비유되는 무질서의 영역을 작품의 내부로 받아들이며 사운드와 영상의 시스템을 구축한 알고리듬을 선사하는 테싯그룹의 작품은 분명 그 모습이 닿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람객 분들이 그 장단의 일면을 작품 속에서 경험했다면 이 두 분은 의료 기기의 단면을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된 것이겠죠. 그 분들도 이상하지 않고 당연히 다른 관람객 분들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에게 당연히 다양한 심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이니까요. 다만, 관람객 분이 아버지의 임종의 장면에서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이 세월의 흐름 앞에 무뎌지고 일면 잊혀져서 테싯그룹의 작품 앞에서도 곧 즐기실 수 있는 때가 오시기를, 너무 오랫동안 마음앓이를 앓진 않으셨으면.......하는 작은 바람이 마음 속에 일렁였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2024년 3월 13일 - 2024년 6월 2일 / 우란문회재단 우란1경
*우란문화재단 전시 소개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인도는 적지만 사람은 많은, 어수선하고 또 들뜸이 있는 동네, 성수동. 이곳이 만들어내는 트렌드의 빠른 속도를 놓치지 않겠다는 욕망과 본인의 속도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공존하게 만들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하는 곳.
동네 자체가 거대한 알고리즘이 되어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선택권이 없는 세상의 축소판과 같은 성수동의 한복판에서, 우란문화재단은 자신만의 속도로 다른 이들과 호흡하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2024년 첫 전시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를 개최한다.
우리나라 전통음악에서 중요한 개념이자 역할을 하는 ‘장단’은 장구나 북과 같은 타악기로 주로 연주되며 일반적으로 일정한 리듬꼴(rhythmic pattern)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강약 주기, 고유한 빠르기를 내포하여 한 번에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장단의 흥미로운 지점은 기본형의 빠르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음악과 연주자의 흐름에 따라 즉흥적인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에 장단의 변주 안에서 연주자와 관객은 호흡을 맞추며 서로가 하나 되는 몰아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변주되는 장단에 호흡을 맞추고 지금 여기의 속도감을 유연하게 인지하며, 상호작용 속 연결의 감각 느끼는 것. 전시장 곳곳에 자신의 리듬, 강약, 그리고 속도를 드러내는 일곱 작가, 김진곤, 뭎, 박지원, 서민우, 이동훈, 임선빈, 태싯그룹의 작품은 전시를 관람하는 당신의 움직임과 동행하며 호흡 맞추기를 기다리고 있다. 빠르고 강하게 휘몰아치는 성수동의 연주 속에서 자신만의 장단으로 그 연주와 호흡 맞추는 이 전시처럼, 당신도 주변과 눈 맞추며,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발걸음을 느껴보는 경험을 하길 기대한다.
(Breathe in, Breathe out 하며)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말이다.
* 이번 전시 제목은 장단의 부호에서 따왔다. 장단을 둥글고 반듯한 기호에서 주고받는 호흡으로 바라보고 지었다. 작은 소박이 1박을 이루고 한 장단을 만들어내듯이 각자의 호흡(속도) 또는 장단으로 풀어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상대의 호흡을 느껴보고 나의 속도를 찾아가보는 전시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