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여기 닿은 노래》
정말 좋은 전시는 한 사람의 세계를 넓혀주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주고, 세상에 대한 눈을 열어줍니다. 전 그런 전시를 2024년 3월, 대학로에서 만났습니다. 바로 아르코미술관의 <여기 닿은 노래>였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게 비단 저만이 느낀건 아니더라고요. 함께 스텝으로 참여 했던 지킴이 선생님들과 다른 도슨트 선생님들, 그리고 저의 해설을 들어주셨던 수 많은 관람객 분들까지. 모두 공통된 울림을 느꼈다고 하니 이 전시가 얼마나 우리 모두에게 가치있고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훌륭했는지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제가 만난 다른 미술관 큐레이터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전시 서문을 읽는 순간, 얼마나 많은 고민과 마음을 담았는지 그 짧은 글에서 이미 느낄 수 있었다고. 이 전시는 그런 전시였습니다.
<여기 닿은 노래>의 전시 서문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어요. 흔히 장애예술, 베리어프리 이런 단어에서 벗어나 신체의 다름에서 오는 시간과 속도의 차이를 경험하고 인정하고 인지해 보자고 말이죠. 이 전시에는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들이 모두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전시 캡션에도, 리플렛에도 그런 구분에 대한 표현은 담겨 있지 않았어요.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서문 그대로 서로 다른 몸에서 인지하는 속도와 시간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는, 그리고 전이되는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과 작가.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열린 전시가 되기 위해서 다른 어떤 전시보다 다양한 신체를 가진 모든 관람객이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전시장 바닥에는 논슬립 테이프로 동선을 표시해 지팡이나 발의 감각으로 동선으르 이해할 수 있게 했고요, 가벽 설치를 최소화 해서 휠체어 사용 관람객 분들이 넓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이동 가능하게 했습니다. 중간 중간 작품이자 실제로 앉아도 되는 의자 작품을 설치 했고, 점자 안내와 음성안내 수화안내, 쉬운 글 정보로 쓰여진 전시 설명글, 전시장 내부의 조도나 소리 등의 감각적인 내용까지 담은 안내판을 제공하기도 했고요. 이동도우미를 예약이나 전화통화를 통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그간 다른 전시장에서 보기 어렵거나 실현되지 않았던 많은 준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전시 스텝은 접근성에 대한 강의를 통해 다양한 분들이 전시장을 찾아오셨을 때 이 곳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전시장. 전시의 취지와 주제 만큼, 다양한 신체를 가진 다양한 분들이 도슨트를 이용하셨고 저도 나름의 최선을 다 했는데요. 겪으면 겪을 수록 저를 비롯한 이 전시장은 그 무엇하나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해서? 전시에 공력을 쏟아 붓지 않아서? 그건 아니었을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학예팀은 실로 다양한 전문가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감수를 받고, 실제 불편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는 등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구현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겪은 것만 제대로 알 수 있는 나약하고 모자란 존재들이 바로 사람이잖아요. 아직 우리 사회는 그 모든걸 다 포용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는 아직 여전히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우리가 지금껏 겪어온 세상이 그 '시작' 단계이기에 여기서 더 무언가를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도 '초급'단계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 '초급'단계의 전시장에서 만난 장애인 관람객들은 어떠셨을까요?
#1. 시각의 다양성이 있는 A님
어느 날 전시장 제 도슨트 타임에 A님이 오셨습니다. A님은 지팡이와 함께 이동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계셨어요. 그 날 제 도슨트 타임에 관람객은 A님이 유일했습니다. 좀 더 A님만을 위한 도슨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전 먼저 혹시 긴 시간 이용하실 수 있는지를 물었어요. 시간이 많으시다면 좀 더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별로 없으시다면 작품 수를 줄이기 위해서였지요. 배운 바에 의하면 시각장애인 분들을 위한 도슨팅을 할 때는 시각보다는 다른 감각을 이용하는 작품 위주로(<여기 닿은 노래> 전시장에는 그런 작품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시각적인 부분은 음성으로써 묘사를 하고, 이동을 할 때도 '여기', '저기' 이런 표현보다는 '오른쪽으로 열 걸음 정도' 와 같은 구체적인 지시를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일반 도슨트 진행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기에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작품 수를 다른 감각을 이용하는 작품으로 줄이려고 했었죠. 하지만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경험하고 싶다고 하셔서 도우미 분과 함께 최대한 연습한대로 도슨트를 진행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쌍거풀을 가진 눈이 큰 편이고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머리는 머리가 조금 긴 남자만큼 아주 짧은 머리를 하고 있어요. 키는 작습니다. 오늘 전시 해설을 도와드릴 도슨트 000입니다." 라는 제 외양묘사의 인사를 시작으로 도슨트를 시작했어요. 점자 설명을 읽을 시간을 드리기도 하고, 걸음수를 계산해 동선과 방향을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작품의 크기, 작품의 색 등을 말로 풀어내다보니 작품 하나하나의 설명이 약 3배 정도 시간이 길어졌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2층으로 이동하고 나니 다리가 아프시진 않을까 싶어 먼저 제안을 드렸습니다.
"2층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지금 2층 입구에 도착했는데요, 앞으로 스무 걸음쯤 이동하면 1층에서 소개드렸던 파란색 길고 높이가 50센티 쯤에 등받이가 있는 파란 의자 피네건 샤넌의 <우리 여기서 환영 받는 거 맞죠? 아닌가요?>가 있습니다. 함께 가서 앉아 잠시 공간을 느껴볼까요?"
함께 의자에 앉은 A님은 자기 혼자인데 도슨트를 하는게 불편하진 않은지, 친절하게 응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등의 말씀을 전하셨어요. 저는 오히려 제가 불편하게 해드리는 점은 없는지, 전시장이 불편한건 없으신지 여쭤봤어요. A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셨습니다.
"음, 시각장애인을 한데 묶어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양쪽 시력이 거의 다 소실 된 사람이라 오늘 해설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감사했는데요, 사실 많은 시각장애인분들이 아예 안보이지는 않아요. 시각이 약한 거에요. 그런 분들 중에도 지팡이 쓰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아무래도 전체 공간을 파악하긴 어려우니까. 그런데 그런 분들이 오면 이렇게 걸음 수, 작품 색, 크기 이런걸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것 같아요. 그리고 점자 있는 부분을 알려드려도 소용없는 경우가 많을거에요. 시각장애인들 중에 점자 읽을 수 있는 사람 생각보다 몇 없어요. 시력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으면 왠만하면 눈으로 일반 글자를 배우는게 낫다보니까 점자를 익히진 않거든요(실제 시각장애인분들의 점자 해독률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는 건 저 같은 경우 많이 불편해요. 오늘 높이도 말씀해주시고 형태도 말씀해 주시고 도와주니 앉을 수 있었는데요, 의자가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생긴게 있는 건지 감이 잘 안오니까 잘못 앉다가 부딪히고 다치고 해요. 이건 권하지 마세요.(웃음)"
전시 해설을 마친 뒤, A님의 어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이동 도우미분이라 생각했던 분이 어머니셨더라고요. A님은 원래 정상시력을 가진 분이었다고. 시각장애인이 된지 7년 정도 되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시각적인 묘사를 해주면 어느정도 다 이해할 수 있는데 타고난 분들은 그 부분이 어렵다는 점도, 그리고 일생에서 정상 시력이었던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하셨어요. 주변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보통 그냥 괜찮다 하며 지나가실거라고. 워낙 그런 무기력한 시간을 오래 겪었기에.(실제로 알고 지내는 복지사분께 이 경험을 전했더니 이렇게 처음 본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라 하시더라고요) A님은 악착같이 시각이 없는 세상에서 잘 살아가고 싶어하셨대요. 그래서 점자도 엄청나게 빠른 시간에 노력으로 습득했고 열심히 적응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셨다고. 잠시 후 그 대화 속으로 돌아온 A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어요.
그런데요 전 참 00000. 000000. 그것만으로도 00했어요.
#2. 이동의 다양성이 있는 B님
B님은 도슨트를 들을 생각은 없으셨대요. 장애인 관련 활동가 분과 유튜브를 촬영하러 미술관에 들어왔는데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마침 해설 시작하시다고 해서 오게 되었다고 해 맑게 웃으셨어요.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와 여긴 휠체어 다니기 정말 좋네요. 넓어서 좋아요."하시며 전동 휠체어를 운전하며 작품 설명 동선을 따르셨습니다. B님과 동료 분께 도슨트를 해 드리는 건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 전시장에서는 좁은 공간이 없었고 대부분 작품 가까이 휠체어가 다가가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거든요. 저는 제가 혹여나 실수 할지도 모르는 표현을 조심하는 것 하나에만 신경을 썼어요. 그게 뭐냐면요, 이건 독자 분들도 꼭 마음에 새기셨으면 좋겠어요. 바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장애는 소유가 아니잖아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런 표현을 쓸 때가 있는데 "장애가 있다"가 바른 표현입니다. 사실 저도 이 표현을 알게 모르게 연습 때도 쓰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그 표현을 주의하며 도슨트를 진행했고, 그 외에는 사실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B관람객 분은 너무나도 밝은 분이셨고 작품을 만지거나 체험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셨어요.
문제는 김은설 작가의 <진동하는 몸의 대화>라는 작품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김은설 작가는 소리는 진동이라는 것에서 착안해 우리가 진동을 느끼는 지점들을 두 명의 퍼포머가 퍼포먼스를 진행하게 한 후 그것을 영상에 담았어요. 그리고 그 영상을 관람객이 볼 때, 진동 스피커가 장착된 의자 위에 앉아서 관람하게 합니다. 그러면 영상에서 소리가 들려올 때 마다 관람객들은 의자를 통해 엉덩이에 진동을 느끼게 되요. 이를 통해 진동이라는 소리로 대화하는 지점을 경험해 보는 것이죠. 그 진동스피커가 장착된 의자는 눕혀진 직육면체였는데 그 진동을 느껴보기 위해 B님은 가능한 한 팔을 옆으로 쭉 뻗으셔야 했어요. 관람을 위해 휠체어에서 내리고 타는 건 너무 번거로웠으니까요. 그래도 손이 의자에 잘 닿아서 "어! 어! 진짜네요. 와 신기하다! 와 저 진동 느꼈어요."하며 경험하고 즐거워하셨는데요. 문제는 그 다음 작품이었습니다.
김채린 작가의 3개의 작품이 이어졌는데요 그 중 마지막 <끌어 안는 조각>이 B님껜 어려웠어요. 김채린 작가는 <안아서 어르는 조각>, <쓰다듬는 조각>, <끌어 안는 조각> 이렇게 세 작품을 전시했는데요 모두 제목 그대로 조각에 관람객이 수행하면 되는 조각작품 이었습니다. <안아서 어르는 조각>은 B님의 팔에 제가 안겨 드렸고요, <쓰다듬는 조각>은 좌대에 휠체어를 옆으로 붙인 다음 팔을 뻗어 쓰다듬었어요. 마지막 <끌어 안는 조각>은 조각의 머리 부분즈음에 관람객이 볼을 대고 끌어 안으며 조각을 경험해야 하는데, 좌대가 식탁형(다리가 있고 아래가 비어 있는)이 아니었어요. 휠체어가 들어갈 수가 없었고 높이도 휠체어에 앉은채로 안기에는 높았습니다. 그 조각에서는 볼을 대고 체온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 부분이 불가능 했던거죠. "어? 어? 아 이건 못하겠네요. 도슨트님 이거 안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주변 눈치를 보았습니다. 지킴이 선생님도 웃으며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한 번 기울여 보라는 제스쳐를 취하시더라고요. 관람객 분들이 별로 없던 시간이라 우리는 조심스럽게, 지킴이 선생님이 조각 좌대를 아래에서 붙잡고 저는 좌대를 기울여서 안겨 드렸어요. 완벽하게 끌어 안기는 어려웠지만 B님은 조각의 체온과 다양한 촉감은 느끼실 수 있었습니다. 못내 아쉬웠어요. 이렇게 널찍하게 공간을 마련하고, 왠만한 좌대들은 다 식탁형이었는데 왜 이 조각만 일체형 좌대였을까. '이건 못하겠네요.'라며 멋쩍어 하며 설명을 부탁하셨던 순간도 없앨 수 있었다면 얼마나 만족스런 미술관 경험을 하셨을까. 전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습니다. 마지막 작품 해설 후 전시장 출구 쪽에 도착했고 B님은 저에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제가 해 본 000 000 경험이었어요. 미안해 하지 마세요. 전 정말 00하고 00한데.
#3. 신경학적 다양성이 있는 C님
대 여섯 분 정도의 관람객 분들을 모시고 도슨트를 진행하던 어느 늦은 오후, 저 쪽에 한 무리의 관람객 분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이 있던 작품까지 다다르자 자연스럽게 그분들도 도슨트에 참여하셨습니다. 도슨트와 작품, 관람객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유지됩니다. 왜냐면 그래야 작품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날 몇몇 관람객 분들은 제 코앞 까지 다가오시거나, 작품 바로 앞에 다가오시기도 했어요. 그러면 선생님들이 팔을 잡고 친절히 "뒤로 이동해요 00씨. "하시며 이끄셨어요. 신경학적 다양성이 있는 관람객 분들이셨죠.
이렇게 신경학적 다양성이 있는 관람객분들을 만나게 되면 일반 관람객 분들의 반응은 대부분 둘로 나뉩니다. 듣던 도슨트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피하시는 분들이 있고, 끝까지 함께 들으며 그 분들에게 말도 걸어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 날 함께했던 분들은 후자에 해당하시는 관람객 분들이셨어요. 말을 걸면 대답도 잘 해주시고 눈도 마주쳐 주시면서요. 인솔 교사 분들도 관람객 분들께 고마워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함께 전시 도슨트를 들으며 이동 중이었는데 눈 앞에 <아르코 미술관 감각지도>가 나타났어요. 그 작품을 만난 그 시점, 이걸 어떻게 도슨트를 해야 하나 순간적인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아르코 미술관 감각지도>에는 신경학적 다양성이 있는 분들을 위한 정보를 담고 있었습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분들 중에는 감각이 예민한 분들이 있어서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거나 큰 소리가 날 때 등의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감각지도에 담긴 '어두운 곳', '큰 소리가 나는 곳' 등의 정보를 알아두고 그 공간에 가기 전에 미리 예고를 드리면 조금 더 수월하게 그 공간에 적응하실 수 있다고 해요. 이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데 신경학적 다양성이 있는 관람객 분들 앞에서 어떻게 이를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는 누구나 그럴거에요. 저도 그런데요, 갑자기 어디에 들어갔는데 깜깜해진다던지, 쾅 하는 소리가 난다던지 하면 무섭고 놀라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가끔 어떤 관람객 분들은 유독 더 놀라고 무서움을 느낀다고 해요. 그래서 이 지도에서는 이곳을 가면 어두워집니다, 이곳에 가면 큰 소리가 날 수도 있어요, 저곳은 지금 아주 밝아요.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공간이 어떤 상태인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지도 입니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 전시장을 즐길 수 있습니다."
라고 도슨팅을 했습니다. 맨 앞에서 경청해 주시던 관람객 C님이 말씀하셨어요. "어? 나도 그런데. 난 깜깜한걸 되게 싫어해요." "관람객 분도요? 저도 그래요. 그래서 이 지도를 보면 아 여긴 깜깜하구나, 그럼 여기 지나갈 땐 조심해야지. 그래요." 그렇게 대화한 후 실제로 2층에 올라가기 전 관람객 분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우리 아까 함께 본 지도에서 2층은 어둡다고 했었잖아요. 2층 올라가는 계단부터 조금 어두워지는데요, 우리 같이 천천히 올라가볼께요. 2층은 어둡습니다. " 미리 예고를 해드렸기에 관람객분들은 모두 어렵지 않게 이동하셨어요. 그리고 2층 전시물도 꼼꼼히 다 함께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도슨트를 마친 후에 출구에서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일반 관람객 분이 다가오셨어요. 대화하다보니 특수교육교사를 준비중인 대학원생들이었어요. 이런 전시가 있다는 걸 알고 꼭 와바야겠다고 생각해 친구들과 함께 오셨다고. 그분들은 <아르코미술관 감각지도>가 가장 인상깊었다고해요. 도슨트님이 쉽게 설명하셨지만 특수교육을 배우고 있기에 어떤 경우를 위한 지도인지 알고 있었다며 실제 다양한 시설에 넣으면 참 좋을 것 같다며 이번 전시가 끝나고도 아르코 미술관에 영구 설치가 되는지 등을 물어 보셨어요. (실제 설치 되진 않았지만 계획이 아마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 C님이 다가오셨어요.
재미있었어요. 00, 00000
C님께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웃으며 꾸벅 인사를 드렸습니다. C님은 일행 속으로 사라지셨고 특수교육을 전공한다던 관람객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아까 2층 계단으로 올라갈 때 C님이 "올라가면 어두워질거야. 올라가면 어두워질거야."라고 반복해 말하셨다고. 그러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신 것 같다고요.
사람이 귀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귀함은 내가 알던 것 보다 훨씬 그 깊이가 깊은 것이었구나, 사람이 아름다운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넓은 아름다움이 있구나. 마음이 하는 일이 진심인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마음을 푹 담그듯 진심을 전하고 싶을 수도 있구나. 그렇게 나와 나의 세상을 바꿔주었던 전시, 《여기 닿은 노래》그 변화 속에는 A님, B님, C님을 비롯한 다수의 관람객 분들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숨겨 두었던 그 분들의 한마디씩을 공개해드리자면
A님 : 그런데요 전 참 고마웠어요. 노력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B님 : 제가 해 본 최고의 미술관 경험이었어요. 미안해 하지 마세요. 전 정말 만족하고 충분한데.
C님 : 재미있었었어요. 진짜, 고맙습니다
장애인분들이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해주고, 부족하지만 노력해준것, 그리고 함께해준 것.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충분하고 고맙다 해주신 저의 소중한 관람객 분들. 전시는 2024.6.30. 종료되었습니다. 사실 도슨트로서 매주 같은 전시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무던해지고, 식상해집니다. 하지만 이 전시는 관람객 분들 덕분에 매주 한 번씩 다시 돌아보며 그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였고, 안보였던게 보였고, 느끼지 못했던게 들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 닿은 노래"로 시작했지만 "그리고 계속 될 노래"가 되길. 그리고 머지 않을 날에 "우리가 함께 부를 노래"가 되길 기도합니다.
2024 아르코미술관x지역문화재단 협력기획전 《여기 닿은 노래》
장소 : 아르코미술관 제1,2전시실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 광주문화재단, 부산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작가 : 고권금, 꿈꾸는베프, 김선환, 김은설, 김채린, 라움콘, 신수항x신현채, 오로민경, 유다영, 아키타입(이지원), 전동민, 피네건 샤논(Finnegan Shannon), 한영현
기간 : 2024년 4월 5일(금)-2024년 6월 30일(일)
*전시 서문을 가져왔습니다.
아르코미술관이 위치한 혜화역과 마로니에공원에서는 항상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알리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들이 울린다. 소위 ‘정상성’의 규범에 벗어난 듯 보이는 이 목소리들은 때로는 노래로, 그리고 합창이 되어 미술관에 그리고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닿는다.
그 노래들에서 시작된 《여기 닿은 노래》는 서로 다른 몸이 가진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보고 그리고 말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려는 전시다. 모두를 포용하겠다는 성급한 다짐을 잠시 미루고 서로가 보유한 각자 다른 시간과 속도를 느껴본다.
전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분하거나 ‘다른 몸’에 연민이나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아울러 장애예술, 배리어프리(Barrier–free) 등의 단어에 의지하는 대신 자신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언어를 지지체로 삼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들여다본다. 그렇게 서로의 삶의 속도와 시간, 그 교차의 가능성을 인지하는 장이 되고자 한다.
또한 ‘미술관’이 어떻게 접근성을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 실행 과정에서의 충돌을 드러내면서, 매끈한 결론으로 귀결되는 전시의 형식을 지양한다. 그렇게 본 전시는 작품을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전복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더불어 마로니에공원에서 춤과 노래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던 그들이 미술관의 사용자이자 주체적인 창작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미술관은 다양한 음성과 발화가 혼재되는 장소가 되려 한다.
‘다름’에 대한 혐오와 비판이 오가는 시대 안에서 접근성 그리고 모두를 위한다는 결심은 서로의 속도와 시간의 교차성을 정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기 닿은 노래》는 미술관에 기대하는 단정한 구성 혹은 주제와 작품이 명확히 맞물리는 결론을 상정하지 않는다. 소란하고 떠들썩하더라도 창작자가 찾아낸 자신만의 주체적이고 독특한 언어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과 매개하고 돌보는 이들을 비추어 보기도 한다. 다름을 인정하기를 강박하기 전에 먼저 제각각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승인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함을, 전시는 말하고자 한다.
모두를 위해 조용히 대화하며 관람해 주세요.
하지만 약간의 이동과 소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서로의 언어와 움직임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