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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철용은 왜 고니를 믿었을까? - 경영판단의 원칙

#PSH독서브런치232

by PSH
사진 = 다음 영화 <타짜> 스틸컷


※ 영화 <타짜(2006)>의 내용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영화 <타짜>에서 열일곱에 건달 생활을 시작해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배신하는 놈 다 죽이며' 현재의 지위를 달성한 곽철용(김응수 분)은 '2년 동안 곽철용 밑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며 찾아온 고니(조승우 분)의 속임에 덥석 넘어갑니다. 평소 '목숨 걸고 베팅'하는 고니의 배포를 눈여겨보았던 곽철용은 이전에도 고니에게 먼저 본인 밑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지 묻기도 했었죠. 그때 곽철용은 '늑대 새끼(고니)가 어떻게 개(곽철용) 밑으로 들어갑니까?'라는 다소 모욕적인 말로 거절을 당했지만, 곽철용은 고니를 자기 사람으로 포용하려는 마음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곽철용 밑에서 일하겠다는 고니의 제안을 믿지 못하는 부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곽철용은 고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얼마 후에 고니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2.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은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조조와 황개와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삼국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조조는 함대와 함께 투항하겠다는 황개의 거짓 항복에 속아 넘어갑니다. 뛰어난 전략가로 알려진 조조는 고심 끝에 자신의 본진에 황개와 그의 군대를 무장해제 시키지 않고 들였고, 곧 조조의 진영은 황개의 공격으로 불바다가 되었다고 하죠. 임용한 소장은 조조가 황개를 자신의 편으로 확실히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무장해제를 요구한다는 등의 추가 검증 절차를 거치려 했다면 황개 입장에서 '조조는 나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고, 때가 되면 또 다른 장수에게 항복할 사람이라 판단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니 확실한 믿음을 보여줌으로써 황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1+2. 곽철용과 조조의 판단은 비록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로 이어졌지만 그들의 판단이 본인 혹은 본인의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악의에서 비롯되었다 하기에는 힘듭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판단이긴 하지만 고니, 황개를 자신의 사람으로 확실히 만들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현대 사회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의미합니다. 즉 곽철용과 조조를 현재의 기준에서 봤을 때 그들에게 경영상 책임을 물을 순 있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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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상법이 시행되며 재계에서는 기업 경영상 판단에 따른 투자 실패 또한 고소 및 고발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따른 모험적인 투자 의사 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한국에서 기업 경영을 하다가 잘못하면 감옥 간다, 이러면서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최근 이러한 이슈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독자 여러분들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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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영상]

삼프로TV 3PROTV, <왜 역사적 명장들은 손자병법을 사랑할까? |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신과대화]>, 2025년 3월 8일


[참고 기사]

매일경제, 임용한, <조조가 황개의 가짜 항복에 속았다고?>, 2021년 11월 12일

연합인포맥스, 정지서, <李대통령 "한국서 기업하면 감옥간다더라…배임죄 제도 개선 모색"(종합)>, 2025년 7월 30일

연합인포맥스, 정수인, <"35년 전 잣대 여전한 배임죄…경영판단 원칙 법제화 시급">, 2025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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