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졸음쉼터가 필요합니다.

(나의 졸음쉼터는 어디였으며 무엇이었던가?)

by 오창균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간간이 보이는 곳 '졸음쉼터'

수년 전 처음 생겼을 때는 사실 '저게 뭐지?' 했었는데 지금은 들어가진 않아도 대략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다. 운전하다 피곤하고 졸리면 잠시 들러 잠시 잠도 자고, 스트레칭도 하고 바람도 쐬고 하면서 밀려오는 졸음과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해결하는 혹은 희석시키는 매우 간단해하고도 단순한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졸음쉼터의 효과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졸음쉼터가 처음 생긴 2011년부터 2014년의 국토교통부 역학조사 통계에 따르면 졸음쉼터가 설치된 구간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28% 감소했으며, 사망사고는 무려 55%나 감소했다. 길고 먼 고속도로의 운전길에서 잠시 들리는 그 쉼터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다.


우리 일상과 삶이라는 도로 위에서도 지치고 힘들 때, 졸음 쉼터 같은 곳과 휴게의 시간이 필요하다.

목적과 목표를 향해 우리는 우리만의 차에 올라 그 도로 위를 달린다.

때론 천천히 때론 조금 더 빠르게, 가깝거나 꽤 먼 여정을 달린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일들로 인해 누적된 시간으로 인해 피로가 몰려오고 졸음이 쏟아지듯 일상의 스트레스와 마음이 지치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쉬지 못하거나 쉴 엄두를 못 낸다. 혹은 쉬는 방법을 잘 모른다.

뒤차가 따라와서 나를 추월해 가버릴까 봐, 시간에 늦으면 성과를 못 낼 수도 있으니까, 경쟁에서 뒤처지니까, 차에 함께 탄 책임져야 할 동료 혹은 가족들이 있는데 잠시라도 쉴 수 없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멈춤과 쉼이 두려워 그저 계속 달리면 더 위험하거나 비효율적이다. 오히려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지 부디 그 순간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순간의 졸음, 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같은 공포스러운 문구처럼 극단적 비유는 적절치 않을 수 있지만, 삶과 일상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의 가벼운 무게들이 중첩되면 생각보다 무거운 사고들이 발생한다. 건강의 문제 또는 마음의 문제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쉼터에 들리고, 휴게소에 들러야 할 때를 무시하고 계속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가 안전하기 어렵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 뒷산에 올라 휴대폰 끄고 조용히 산책하는 20분 정도의 시간, 절실한 종교인은 아니지만 때론 마음과 마주하며 기도하는 5분도 안 되는 시간, 이렇게 글을 쓰며 최근의 마음과 생각들을 마주하고 적어보는 30분가량의 시간, 산도 종교도 글쓰기가 아니어도 내 마음의 바쁨과 지침을 잠시라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공간과 만남이 우리의 소중한 졸음쉼터가 된다.


삶의 졸음쉼터와 휴게소를 찾기 첫 번째 조건은

'꾸미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나 일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과의 만남이건, 장소에 가건 그곳에서 또 내 감정을 꾸며야 하고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에너지가 들어간다면 그건 쉬는 시간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내 지금, 내 욕망, 생각 등 힘 빼고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만남과 시간일 때, 비로소 몸도 생각도 이완된다. 억지로 웃어야 하거나 불편함이 있는 만남은 겉모습만 쉬고 노는 것일 뿐 본질은 계속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시작도 좋고 끝도 좋아야 한다'

술자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술자리를 가지기전과 돌아오는 길, 다음날까지 좋은 경우는 드물다. 콜라를 마시기 전과 마시면서는 좋지만 나중은 계속 목마르거나 속이 편하지 않다.

제대로 쉬고 싶고 충전하고 싶다면 시작과 과정도 좋아야 하지만 하고 나서 끝도 좋은 것을 채워야 한다. 등산이나 운동을 하기 전에는 사실 좀 귀찮지만 돌아오는 길의 대부분은 개운하고 보람된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은 먹을 때도 좋지만 먹고 나서 속이 편하다.

끝나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의 일상과 삶을 탐색해 보자.

오늘도 어김없이 삶의 도로 위에 일과 일상의 자동차에 올라탄다. 참을 땐 참고 버틸 땐 버티며 살아가는 게 분명 필요하겠지만, 때가 되면 나만의 졸음쉼터에 들러, 때론 비우고 가끔 잘 채우며 그렇게 나만의 도로를 안전하고 아름답게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