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온은 영하 10.5도였다. 영상 아니고, 아침저녁으로는 5도 이상 더 떨어져 대충 껴입고 나갔다가는 차가운 칼바람이 작은 옷틈들 사이사이로 들어와 온몸을 떨게 한다. 이렇게 추울 때는 감기도 감기지만 매년 신경 써야 할게 바로 ‘동파방지’다. 겨울‘동’冬 깨질 ‘파’破 ‘얼어서 깨진다’는 뜻으로 보통은 겨울 수도관이나 물탱크 같은 것들이 얼어 터지는 것을 말한다.
몇 년 전 외출했다 집에 들어와 보니 거실 천장 벽지가 다 뜯겨 밑으로 축 쳐져있고 물이 줄줄 흘러 바닥이 물로 가득했다. 그때는 그저 ‘이게 무슨 일이지?’ ‘공사 하자 부분인가?’ 정도만 생각했지만 나중에야 극심한 한파로 수도관이 터져 동파된 것이었다.
동파 방지를 위한 몇 가지 대표적 방법이 있다. 우선, 수도관이나 수도계량기를 헌 옷이나 담요로 감싸주거나 열풍기를 옆에 두는 것이고,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방법은 물을 완전히 잠그지 말고 아주 조금은 흐르게 유지해 주는 것이다.
수도관이나 수도계량기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은 온도를 조금이라도 높여 얼지 않게 함이며, 물을 완전히 잠그지 않고 조금씩 소량의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은 그 흐르는 물로 인해 물이 한자리에서 얼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상으론 최저기온 0도에서 영하 10도 사이라면 45초 안에 종이컵 안에 물이 가득 찰 정도로 틀어놓으면 되고, 영하 10도에서 영하 15도 사이라면 33초 안에 종이컵이 가득 찰만한 속도로 물을 틀어 놓으면 동파 방지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거기에 찬물보다는 온수나 미온수를 틀어 놓으면 효과는 훨씬 좋다.
사람 마음과 삶에도 겨울 같은 시기가 있고 특히나 강한 한파처럼 얼어붙는 것처럼 마음이 얼어붙는 겨울의 시기에는 보통 그냥 그저 혼자 있고 싶고 움직이기도 싫고 아무 말고 하고 싶지 않다. 사람에게 상처받았거나 각자만의 다양한 이유로 크고 작게 혹은 깊게 마음과 삶이 얼어붙는 날들이 있다. 사실 그럴 땐 한동안은 그저 그렇게 있는 것도 좋다. 마음이 얼어붙었는데 그 무엇도 하기 싫은데 그런 상황에 뭔가를 하라고 권하기도 강요하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 생각한다.
다만, 마치 겨울 한파에 동파되는 수도관처럼 계속 그 마음의 겨울과 꽁꽁 얼어붙은 채로만 머문다면 나중엔 더 깊은 무거움과 어두움으로 들어가거나 결국 동파되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 위험하고 아픈 일이다.
‘동파 방지를 위해, 물을 완전히 잠그지 말고 조금씩 흐르게 하는 것처럼 마음도 흐르도록'
내 마음의 상태를 한 번에 많이 말하거나 감정을 모두 쏟아내거나 혹은 크게 나타내는 것보다,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에게 작게 조금씩 마음을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할 대상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주변사람이나 친인척보다 전문심리상담사나 정신의학과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정신과 마음상담은 매우 필요한 분야임에도 부담스럽거나 왠지 모르게 몰래몰래 가는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분명 다르다. 이유는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으로나 정신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시기를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때에 따라 필요한 부분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종교지도자에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가족에게 마을이 얼어붙지 않도록 흘려보내보자.
나 역시 그런 시기를 만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기는 직업을 바꾸는 걸 넘어 캄캄하고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당시, 8살 아들과 6살 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야 하는 앞날이 정말 막막했다. 솔직히 그때 느꼈다. 정말 막막하고 힘들면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고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함께 등산했던 후배와의 대화에서 조금씩 답답한 속마음을 말하고 나눈 것, 가장 친한 친구에게 솔직한 마음을 나누었던 것은 대단한 해결책을 받진 않았지만 그 흘려보냄 자체가 삶을 얼어붙지 않게 하는 동파방지의 방법이 되었다.
행여 말이나 대화의 방법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다른 방법 중의 하나로 이렇게 글쓰기를 추천한다. 글쓰기에도 마음을 흘려보내는 힘과 효과가 있다. 혼자만 아는 기록의 장소도 좋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공개된 글쓰기 공간도 괜찮다. 중요한 건 혼자 움켜쥐고 품고만 있다가 동파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잘 쓰고 못쓰고 쓸 줄 알고 모르고를 넘어 그저 적어나가 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나 기준이 아닌 내 마음이 솔직함이 중심 되어 그저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담요나 열풍기로 따뜻함으로 감싸 주는 것처럼'
사람 마음에 그러한 효과가 있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이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 상황이 그랬던 거야. 너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정성을 다했잖아’ ‘그래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아픈 건 아픈 거야.. 다만, 네 인생의 이야기와 삶의 페이지는 결코 끝나지 않았어, 작게 차근차근 다시 해 나가 보자’ 나를 탓하거나 잘 못 된 것의 수렁에서 어둡게 무겁게 해석하는 것이 아닌, 그 와중에도 분명 잘한 것들 노력한 것들을 스스로 알아주고 인정해 주자. 그것은 내 인생의 주체인 자신만의 특권이다. 내가 나를 먼저 따뜻하게 인정해 주자.
마음이 얼어붙지 않도록 조금씩 흐르도록 해주는 것, 스스로를 인정해 주고 위로하며 작은 따뜻함으로 다시금 얼어있음이 물이 되어 흐르도록 해주는 것이다. 부디 내 마음과 삶의 동파를 그냥 방치해두지 말고, 서서히 조심스레 움직여 보자. 그저 동파시키기엔 우리의 남은 시간은 매우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