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못 만났더니, 나를 만나게 되더라

혼자 있는 시간의 힘

by 오창균

올해로 마흔넷, 예전엔 연말이면 이런저런 모임들이 참 많았는데, 친구들을 만나 술자리나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는 시간도 언제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간 그런 만남이 거의 없었다.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말하고 듣고, 때론 의미 있는 말, 가끔은 이런저런 수다 나누는 걸 참 좋아했는데, 그게 한편으론 일상의 낙이었는데 그런 시간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었다.


처음 든 생각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인스타그램부터 유튜브, 온라인상의 사람들을 보면 참 다양하고 활기차게 만나고 이런저런 소통을 하며 살아가는데 나만 왜 일상이 조용한 것 같지? 나도 모르게 대인관계를 잘 못하거나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은근히 심각해졌다.


헌데, 나중에 보니 다들 그랬다. 다들 바빴다. 각자의 가정을 챙기고 충실해야 하는 친구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거나, 다시 창업 준비하는 사람들, 회사 다니던 친구들은 슬슬 퇴사를 준비했고, 투자로 크게 손실을 보고 심각하게 낙심하고 있는 친구, 다들 자신의 삶을 챙기고 나름의 재건축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 와중에 서로 기분내면서 만나기엔 삶의 틈이 너무 없어진 상태가 된 것이다. 중간중간 서운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건 서운할 것도 서글플 것도 아니다. 삶의 흐름이 계절처럼 그때만의 시기를 만난 것이다.

여름날 그토록 뜨거웠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다가 그새 한없이 추운 겨울이 온다. 겨울의 산속 개울물을 보면 그 위는 매우 단단하게 꽁꽁 얼어 있는데 밑의 속으로는 여전히 졸졸졸 예쁘게도 흐르고 있다. 얼어있지만 분명 흐르고 있고, 눈 덮인 겨울의 바닥들 안에선 봄에 올라갈 싹을 품고 준비하며 조용히 그렇게 우리처럼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렇다. 춥고 꽁꽁 얼고 나뭇가지에는 열매와 꽃은커녕 말라비틀어진 나뭇잎 하나 없어 보여 그 사이로 찬바람만 휭휭 부는 것 같지만, 그 시간에도 흐르고 있고 봄이 준비되고 있다.


혼자 있다 보니 글을 더 쓰게 된다. 지금으로선 이렇게 글 쓰는 게 만남이고 대화다. 글을 쓰려다 보니 소위 글감을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를 들여다본다, 시끌벅적했던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조용한 시간을 차분히 들여다 보고 가끔은 물어본다. 물어보는 나와 대답하는 나, 둘이서 참 차분히 잘도 대화한다. 이른 아침 혼자 산책길을 걸으며, 혼자 차 한잔 하며 책상 앞에 앉아 빈 노트를 보고 가만히 바라보며, 어제 먹다 남은 포테이토칩과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며 이런저런 마음을 만난다. 그간 못 봤던 엄연히 말하면 안 봤던.. 짧게는 1년 전 길게는 13년 전 책장에 꽂아 두기만 했던 책들도 꺼내본다. 가만 보니 책을 보는 것도 조용하고 정적인 행동 같지만 가만 보면 꽤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작가와의 대화였다. 책은 종이 위의 활자 묶음만이 아니라 책을 쓴 사람의 또 다른 존재였다. 머털도사가 머리털로 분신술을 부린 것처럼 수백수천수만의 책에 담겨 세상 여기저기 꽂혀있다.

그렇다. 나를 만나는 시간은,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나서 말하고,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과는 또 다른 오묘하지만 오히려 깊은 나를 만나게 해 준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더 나다운 시간, 눈치 안 봐도 되는 시간, 놓치고 있거나 몰랐던 나를 만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혼자 뭔가를 한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온전히 나 일 수 있으니, 힘을 뺄 수 있으니 그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렇게 온전히 혼자의 시간을 잘 살아갈 수 있을 때 사람과의 만남도 더 유연하고 즐거울 수 있다. 우리는 목마르기에 사람을 만나고 불안하기에 너무 많은 말을 한다. 만나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만남과 대화 혹은 수다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공유한다. 좋다. 그것만의 시원한 해소와 즐거움이 분명 있다. 다만 거기엔 함정이 있다. 혼자 있을 수 없기에 혼자 있기 불안하기에 누구라도 만나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억지로 맞추고 눈치 보고 끌려가고 진짜가 아닌 무언가 연기해야 하는 그런 시간은 생각과 몸에 계속 힘을 주게 한다.


혼자 있을 줄 아는 사람은 더불어가 더욱 건강하다. 내가 바로 설 수 있고 자신의 시간을 사랑해야 함께 하는 시간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이 모인 삶과 만남은 결코 허약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못 만나는 요즘의 시간이, 그간 못 만났던 낯설지만 반가운 몰랐던 나를 만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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