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응원의 힘)
새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해발 1709m의 대청봉을 보고픈 마음으로 후배와 함께 새벽 3시에 일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생에 첫 설악산 등산길에 올랐다. 1박 2일 일정이었기에 우리들의 가방은 침낭과 먹을 것, 갈아입을 옷으로 가득 채웠고 마치 3~4살 어린아이 한 명씩 등에 맨 것 같은 무게였지만 멋진 풍경을 볼 마음에 시작부터 즐거웠다. 두 시간쯤 올랐을 때였을까? 그때서야 소위 현타가 왔다. 빽빽한 눈과 사이사이 얼음으로 채워진 가파른 설악산 산행길에 그것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편도 7시간을 가야 했다. 3시간쯤 지나니 한파 속에 땀이 흘렀고, 걸을수록 허벅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몸도 놀란 모양이다. 경련이 일어났다. 급기야, 괜히 왔나? 이렇게 오를 수 있을까? 이 정도하고 집으로 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등산에 능숙한 후배는 훨씬 양호해 보였고 조금씩 앞서가며 완급조절을 해줬다. 그리고 사이사이 말했다.
‘형~ 조금만 더 가면 공룡능선이 보여, 풍경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거야, 한 10분 남은 것 같아’
후배가 말한 위치에 도착했고, 처음 보는 장관이 펼쳐졌다. 잠시 다리 아픈 게 잊혔고 다시 걸었다.
‘앉아서 쉬다 가자 형, 간식도 좀 먹고’ 그렇게 잠시 앉았다. 다시 걸었고 이제는 정말 한계다 싶을 때, 후배는 다시 한마디 했다.
‘거의 다 온 거 같아, 진짜 대단한 경험하는 거야 형, 조금만 더 힘내자’ 사실 거의 다 온 게 아니었다. 한 시간은 더 남았는데 15분만 가면 도착한다고 세 번을 얘기했다.
턱끝까지 차는 숨은 둘째 치고, 자꾸 다리 힘이 풀려서 정신력이고 뭐고 걷기가 힘들었다. 내 하체가 약한 걸까 보통은 다 이런 걸까? 몸에 대한 의심 반복하며, 쉬다 걷다 쉬다 걷다 하다 보니 결국 7시간 만에 대청봉에 도착했다.
순간 입이 딱 벌어지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후덜 거리던 다리도 마술처럼 멀쩡해졌다. 광활하게 펼쳐진 하얗고 드넓은 설산의 풍경은 경이로웠다. 이내 마음도 바뀌었다.
‘오길 잘했다..’ 후배에게도 말했다.
‘너 덕분에 올랐다야.. 고마워’
그리고 후배가 말했다.
‘나는 몇 마디 말만 했는데 뭐, 형이 오른 거야 그리고 형은 이 정도 산은 거뜬히 오를 사람인데 처음 올라봐서 그런 거지 뭐’
등산으로 큰 운동하고 아름다운 설악산 풍경이 잠시 잊혔다. 그렇게 말하는 후배에게 감동했다.
정말 그냥 여기 까지만 하고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수십 번 들 때마다 지금까지 잘하고 있고 중간중간 보이는 풍경을 소개하며 다시 걷게 해 줬고, 사이사이 잘 쉬고 힘을 내게 해준 건 후배의 말들 덕분이었다.
대청봉 정상에 올랐을 때는 자신의 도움으로 올랐다며, 스스로 뽐내는 게 아닌 끝까지 ‘형이 오른 거지, 원래 오를 사람이었어’라는 말로 자신이 도와줬다기 보단, 정상에 오른 보람과 기쁨의 영광을 다시 상대에게 돌렸다.
한편으론 나 힘나게 하려고 응원해주려고 해주는 말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말과 동시에 후배의 그 마음과 진심이 수혈됐다. 본인도 힘들고 숨찰 텐데 더 힘든 나를 위해 말만 한 것이 아리나, 결국 계속해서 상대를 위한 마음을 쓴 것이다. 그리고 결국 본인이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상대인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다. 최고의 대화법을 후배는 기술이 아닌 진심과 본능으로 그저 했다. 그러니 더 부담 없이 자연스러웠고 나는 감동했다.
우리 삶 속에도 다양한 등산들이 있다. 취업이라는 등산, 입시라는 등산, 직업을 가지고, 분야를 소망하고 각자 다양하게 새로운 무엇을 시작하고 도전하는 등산을 살아간다.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설악산 등산에서 후배가 말한 것처럼 말해주자. 상대가 지치고 어려워할 때는 '지금까지도 잘 해왔어, 힘들면 조금 쉬면서 가자' 그리고 뭔가를 해냈을 때는 ‘결국 네가 한 거야, 넌 결국 해낼 힘이 있던 사람이었어! 대단해. 축하해’라는 말을.
턱끝까지 땀이 뚝뚝 떨어지고 호흡곤란이 올 것처럼 숨이 차고 때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중단하고 처음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소망이 크고 가고픈 목적지가 높을수록 그 길이 험난할수록 다리가 후덜거리듯 마음이 후덜 거리고 멘털도 흔들린다. 현실적은 조건과 대안들이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걸 인정하지만 사람이 사람이 얽히고설켜 사는 삶 속에서, 결국 앞으로 또 나아갈 수 있게 다시 한걸음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건, 말 한마디와 그 말에 담긴 마음의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그런 말 한마디의 힘으로 그 마음의 고마움과 감동으로 못 오를 것 같은 순간순간을 지나 지금의 산에 오르고 또 오르고 있다.
설악산 정상에서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