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스스로를 자기 자신에게, 타인에게 단절시키지 마세요.
나는 상담 일을 하면서 “세상이 내게 적대적이다, 모두가 나를 괴롭히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는 청년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해코지할까 봐 되도록이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집에서도 가족들이 자기 흉을 볼까 봐 방 안에 꼼짝 않고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여기서 정신의학적 또는 신경과학적 소견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그럴 만도 했겠네” 또는 “네 말이 옳아”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 어느 날 맞닥뜨리게 된 무섭고도 슬픈 결과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너 이상해. 문제가 있다” 또는 “그건 아니지. 이렇게 해라”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면 비웃음을 받거나 혼이 났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부정당해온 사람이 과연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사람들한테 매일같이 “네가 틀렸다. 이상하다”며 궁지에 몰린 사람은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세상이 틀렸다,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고 믿어야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시카고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존 카치오포John Cacioppo는 왜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인지, 왜 관계 안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지를 신경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설명하는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카치오포의 연구팀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수십 년 간 연구해왔죠.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립된 사람들은 타인의 얼굴을 더 위협적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타인과 교류하기 어려워지는, 이른바 ‘고독이 고독을 낳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카치오포 박사는 고립감의 문제를 ‘굶주림’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배가 고프면 우리는 뭔가를 좀 먹어야겠다고 느낍니다.
굶주림으로 쓰러지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어요.
굶주림이라는 느낌이 ‘물리적인 몸physical body’을 돌보기 위해 있는 거라면, 외로움은 ‘사회적인 몸social body’을 돌보기 위한 것이라고 카치오포 박사는 말합니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독버섯처럼 독이 있는 것을 먹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독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쓴맛’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도 쓴맛이 입술에 닿으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립니다.
‘사회적인 몸’ 역시 사람을 무조건 많이 만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내 생존에 불리하지 않게 ‘안전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내게 해를 끼치거나 위협이 되는 사람을 피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죠. 독이 아닌 것을 독으로 오인해 피하는 것은 크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 즉 독인 것을 모르고 먹는 것이 위험하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위협이 되는 ‘적’인 줄 알고 피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였다,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친구를 빨리 사귀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생존은 가능하지요. 하지만 ‘적’을 ‘친구’로 오인해 가까이 했다가는 뼈아픈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산이나 평판을 잃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 도 있죠.
진화를 거치면서 우리 뇌는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편견을 갖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예상하는 것, 기대하는 것에 따라 지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 또는 믿음이 현실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니 나를 싫어한다고 느껴지는 사람과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같은 것을 부탁해올 때 우리는 똑같이 반응하지 않죠.
인간은 모두 연결되고 싶어하고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아무나 만났다가 피해를 보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에 따라 우리 뇌는 타인에 대해 일단 의심하고 안전한지 확인하려는 신경기제를 발달시켜왔습니다.
뇌가 사회적 고립을 싫어한다는 직접적인 신경과학적 근거가 발견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실험은 아니지만, 쥐와 인간의 신경계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카치오포 박사는 이것을 우리가 왜 고립을 싫어하는지 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해낸 연구 결과라고 봅니다.
사회문화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은 단절되는 것, 혼자 고립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외로움에 대한 민감성은 차이가 큽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언제 어디서고 친구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요.
카치오포 박사에 따르면 혼자 있는 것이 곧 외로움이나 고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누군가와 함께 있어 도 고립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의 절반이 유전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전되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단절의 고통이다.”
결코 스스로를 자기 자신에게, 타인에게 단절시키지 마세요.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 뿐입니다.
"이유도 모르고 속상했던 당신에게 심리학 공부를 권합니다."